언어생활
-제임스 비티 -
얼마 전에 저는 글을 저는 중에 다음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표현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혀의 무게는 실제로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말의 진리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어려움을 겪던 자기 마음에 평안을 갖다 준 귀한 말씀들을 기억할 때 주님 앞에서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허리를 굽힐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용서를 받게 된다는 멧세지와 그 멧세지를 전하는 일군에 관한 기억은 지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해 오면서, 우리가 위태로운 순간에 있을 때에 적시(適時)에 우리 귀에 들려짐으로써 우리의 심령을 격려하고 위험한 길로부터 우리의 발걸음을 돌리게 해준 때에 맞는 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의 가치를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영원의 길이를 측정할 수만 있다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의 광채를 볼 수만 있다면(롬
슬프게도, 또 우리는 칼날 같이 찌르는 말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찬송의 옷'을 "근심"으로 바꾸었던 때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사 61:3). 또 개중에는. 관심을 가졌던 영혼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함으로써 그들을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했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어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말과 생각을 결코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의 동일한 단락에서 우리의 언어가 어떠한 결과를 받게 될지를 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빌립보서
그 사도는 모든 의사 소통에 있어서 무엇이 근본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먼저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에든지 참되며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풍문에 관한 예리한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실한 사실이 아닌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꼭 완벽한 보고서가 되겠지만 정보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습관을 늘 갖는 게 좋습니다. 이와같은 습관이 일단 확립되기만 하면 이것은 믿는 자로 하여금 소문을 실제로 확인하지 않는, 좋지 않은 습관에 빠지는 일을 방지해 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에 관하여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을 때 그것이 확실히 입증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을 때가 있으며, 때로는 우리가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 관하여 어떤 소문을 들었을 매 그것이 확실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좋지 않은 태도들 입니다. 주님 "내가····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더욱 닮아가게 되도록 저희에게 간절한 소원을 주시옵소서!
그 다음에는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경건하며" 라는 단어의 배후에 있는 개념 속에는 존경(respect)을 요구하는 어떤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 속에는 또 심각한 숙고, 또는 명예를 받을 만한 것이라는 개념도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소모하기에 전혀 합당치 않은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지 모릅니다! 합당치 않은 일에 시간을 소모한 후에 자기와 다른 사림들에게 낙담만을 갖다 준 일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해 후회할 때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에든지 옳으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불의한 생활로 점유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흔한 결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상황들을 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와 같은 불평에 대해 불만을 터뜨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로 이와같은 일들로 인해 기쁨에 넘쳐 있던 많은 성도들이 냉소적이고 신랄한 영혼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 옳은 것에 집중되기를 원하시며 이 문제에 있어서 본이 되는 사람을 바로 빌립보서 안에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사도 바울인데 그는 이 서신서를 기록할 때 로마의 토굴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라는 표현은 그 속에 더럽히지 않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염시키는 생각들을 집어넣으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타락과 실패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면 이것은 자연히 우리를 꾀어 다른 그리스도인의 결점들을 퍼뜨리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던 질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킨 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합니다(롬
그 다음에 나오는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라는 표현은 그 속에 보기에 좋고, 매력적이며, 공감할 수 있다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쾌한 것들로부터 다른 사람의 주의를 돌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짐을 많이 덜어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라는 표현은 그 속에 환영의 밝은 면을 본다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면에 있어서 특히 두드러진 사람이었는데 빌립보서 1장에서 그는 어떤 사람들의 시기심에도 불구하고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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