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치료
야고보서
윌리암 맥도날드
기도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임
우리는 모든 환경 가운데서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 간절한 탄원을 드려야 하며, 기쁠 때에도 우리는 찬송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분에게 들어 올려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의 모든 변화 가운데로 초대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첫째 원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의 제물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용납하는 것이나, 또는 환경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은 패배를 초래합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손만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질병과 기도(약
이 부분은 야고보서에서, 아니 아마도 신약 전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 부분은 질병의 치료가 오늘날의 믿는 자들의 삶 가운데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이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질병과 그 치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재고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1)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질병이라는 게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2) 질병은 어떤 사람의 삶 가운데 있는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3)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질병이 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욥은 매우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습니다(욥
4) 때때로 질병은 사단의 활동의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욥의 몸을 악창으로 덮은 것은 사단이었습니다(욥
5) 하나님께서는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실제적인 의미로 볼 때 모든 치료는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들 중에서 한 가지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입니다(출
성경을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하여 치료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분은 신체의 자연 과정들을 통해서 치료하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신체 안에 엄청난 회복력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때때로 그분은 의약을 통해서도 치료하십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디모데보고 그의 위장병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충고했습니다(딤전
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기적적인 치료도 행하십니다. 복음서들은 이것에 대한 예화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치료하신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분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치료하실 수 있다고 믿지 못하게 하는 말씀은 성경 어느 곳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7) 또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항상 치료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병든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남겨 두었으며(딤후
8) 참된 의미로 볼 때 치료는 “대속”(atonement)안에 포함된 것이 사실이지만 대속 안에 포함된 모든 축복들이 우리에게 다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몸의 구속(救贖)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위하여 다시 오실 때까지 그것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롬
10) 치료를 받지 못한 원인이 믿음의 결핍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 무한정으로 살 수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과 드로비모와 가이오는 치료를 받지 못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강하고 활동적이었습니다.
자, 이제 야고보서의 본문으로 돌아가 그것이 치료에 관한, 성경의 다른 가르침들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만약 이 구절들이 치료에 관하여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말씀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들 안에 나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만 한다면 모든 질병에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항상 치료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야고보가 모든 종류의 질병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특정 종류의 질병, 다시 말해서 어떤 특정 환경들에 기인하는 질병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는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이 단락에 나오는 치료는 죄 사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죄, 아마도 지역 교회의 간증과 관련되는 어떤 죄를 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즉시 질병으로 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질병이 자기 죄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교제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를 징계하고 계십니다. 그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자백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와같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어떤 질병이 죄의 직접적인 결과일 때, 그리고 그 죄가 이 부분에서 제시된 대로 자백되고 버려질 때, 주님께서 그 질병을 치료하시리라는 것은 분명한 약속입니다.
어떤이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것과 그가 그것을 회개하고 자백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15절의 끝 부분이 그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아는 대로 성도들은 죄 용서를 오직 자백의 결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요일
또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본문은 그가 죄를 범했다고 말하지 않고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맥 전체가 죄의 자백 및 범죄자의 회복과 관계 있습니다.
그 다음 구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16절). 17절과 18절에 언급된 가뭄은 죄의 결과로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분을 참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온 후에 철수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고자 하는대로 19절과 20절은 분명히 범죄자의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어떤 사람들은 기름을 의식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은혜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릅니다(은혜 시대는 의식들과 예식들을 덜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남자들에 대한 순복의 표시로 머리에 너울을 쓰고 있습니다. 그럴진대 왜 우리가 기름을 의식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겠습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라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대한응답으로 병든 자를 치료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이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병든 자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장로들은 온전한 확신과 더불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시된 조건들만 만족된다면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일으키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 표현은 병든 자가 죄를 범했다고 명백히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 죄를 자백하는 것도 역시 암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용서 받는 것은 자백에 의거하기 때문입니다(잠 28:13). 이제 지금까지의 사항들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14절과 15절이, 어떤 사람이 어떤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병을 얻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믿습니다. 그가 이것을 깨닫고 회개했을 때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그것을 모두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의 믿음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 사람을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98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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