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성경공부를 통해 얻는 보배로운 교훈들
해롤드 베리
우리는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 공부를 통하여 지극히 보배로운 교훈들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중에는 헬라어의 시제 공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동사의 시제가 오직 행동의 시간(the time of the action)과만 관계 있는데에 반해 (과거, 현재, 미래) 헬라어에서는 각 시제마다 행동의 시간과 행동의 종류라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인자(因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행동의 종류(the kind of action)가 행동의 시간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헬라어의 시제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계속적인 행동(present continuous action), 과거의 계속적인 행동(past complete action), 과거에 완료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계속 영향을 미칠 행동(past complete action with a continuing effect, 연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거완료 행동), 행동의 한계들과는 무관하면서도 단 하나의 시각으로 본 과거의 행동(past action viewed in a single perspective without reference to the limits of the action), 계속적인 미래 행동이거나 혹은 단 하나의 시각으로 본 미래 행동(future action that is either continuous or viewed in a single perspective).
이 모든 시제들과 그 미묘한 의미의 차이들은 중요하며, 이것은 현재시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합니다. 사실, 현재시제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신약성경의 어떤 문단들을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특히 요한일서
헬라어의 현재시제는 현재의 계속적인 행동을 강조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요한일서
그러므로 요한일서
요한은 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절은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여기에서 “죄를 짓는다”는 표현과 “범죄한다”는 표현은 둘 다 계속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현재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6절에서 우리는 범죄하는 자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8절에서는 그런 사람은 마귀에게 그 혈통을 두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결코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이런 사람은 가끔씩 죄를 범할 수는 있을지라도 이미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났기 때문에 그 혈통을 사단에게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부터 사단의 본성으로 계속 죄를 범해 왔습니다. 하지만 8절의 하반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절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들 중의 하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헬라어의 현재시제-현재의 계속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구절을 적절히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생애에 걸쳐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이 때 당연히 일어나는 의문은, ‘그리스도인에 관해서 어떻게 이처럼 확실한 말을 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9절의 나머지 부분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거함이요”라는 동사 역시 현재시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참된 신자는 습관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계속적으로 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같은 율법을 그 신자에게 주지 않고서도 그 신자가 생활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지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점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혹시 죄를 짓게 되면 성령님께서는 그에게 죄를 자각시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중대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곧, 구원받은 사람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자각하게 되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고후
(198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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