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과 둠밈의 의미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출 28:30)
에봇의 주머니 안에다 우림과 둠밈을 넣었다. 이것들에 대하여는 많은 고찰이 행해졌다. 이것들은 하얀 돌과 검은 돌로 이루어졌을까? 이것들은 두 개의 보석이었을까? 에봇의 바깥 주머니 속에 두 개의 귀중한 금속을 넣어두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찾아낼 수 없다. 이 우림과 둠밈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우림(224)의 뜻이 ‘빛들’이며 둠밈(8550)의 뜻이 ‘완전’이라는 사실이다. 케일과 델리취는 더 나아가 우림에 대하여 ‘밝혀줌’이라는 뜻을, 둠밈에 대하여 ‘신성’이라는 뜻을 추가한다. 이것들이 지닌 목적을 알고자 할 때 우리는 흉패가 “판결 흉패”(15절)로 알려졌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만 한다. 또한 여호와 앞에서 섬길 때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두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민수기 27:21절을 참고해보면 우림과 둠밈이 지닌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안내하는 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완전히 계시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 백성은 자신들의 삶과 행동을 안내해줄 빛이 필요했다. 이러한 밝혀줌이 요구될 때마다 대제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었다. 대답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틀림없이 우림과 둠밈은 여호와의 뜻을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확인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계승하도록 임명받았을 때 이런 일이 행해졌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민 27: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우림을 통해서 명하실 터였다. 나중에 가서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러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삼상 28:6). 다윗도 두 번에 걸쳐서 우림과 둠밈으로 그분의 뜻을 물었다. 첫 번째 경우는 사울이 자신에 대하여 음모를 꾸몄을 때였다. 이때에 다윗은 그일라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지를 알고 싶어했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삼상
우림과 둠밈의 믜미
오늘날에 이 우림과 둠밈의 의미를 이해하는 기초는 무엇인가? 그것들이 물어오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안내를 구해올 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또는 그분의 진리를 숨기시지 않고 자세히 알려주실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계시된 시대이다. 따라서 현재에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그분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계시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고 자신의 말씀을 부인하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아직 더 남아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가까워야 한다. 그분의 사랑과 애정의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 그분의 뜻이 알려진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목적들은 그분의 사랑과 애정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그분의 가슴에 있다. 하나님의 종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항이 있다. 우리는 그분이 자기 백성을 위해 계획하신 모든 것은 우리의 이로움과 영원한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계획들은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그분의 위대한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동기는 악하지 않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랑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냉랭하지 않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신다. 그리고 그분의 뜻은 이 필적할 수 없는 사랑의 중심부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막 안에서 이끌림 받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그들은 그분의 가슴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들은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이 더 있다. 무엇 때문에 그분의 계시가 나타나는 방식이 감추어져 있을까? 다윗이 에봇의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때 그분께서 대답해 주신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대답하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정해진 단 하나의 “공식”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악용이 발생할 것이다. 자신이 선호하는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그분은 환경으로 말씀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종의 마음에 소원을 심어주심으로써 말씀하신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서 그분의 뜻을 알려준다. 즉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다. 이 중에서 근본적인 요소 한 가지를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하나님의 말씀이다. 환경이나 다른 요소들올 고려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것들이 성경과 일치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성경의 빛 안에서 보아야 하며 절대로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성경을 찾아보는 일 없이 다른 요소들을 별개로 고려하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은 게으른 신자나 무관심한 신자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열망하는가? 그렇다면 필히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그분의 말씀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내라.
또 한 가지의 참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계시는 지극히 귀하여 이를 받은 복된 자가 그분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될 때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누어줄 수 없다. 이것은 개인적인 즐거움과 만족이 된다. 이것은 참으로 보배로워서 마음에 새겨둘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섬김에 대한 그분의 뜻을 계시하신 경우는 어떠한가? 이후에 가서 그 길이 거칠다는 것을 알게 되고 포기하라는 사단의 속삭임이 들려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주님의 종은 받은바 부르심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와 같은 확실한 길로 가도록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그것을 말씀해주셨다는 사실로 인해 격려를 얻어야 한다.
- 출애굽기 주석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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