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
큰 분열
윌리암 로저스
르호보암의 통치 기간에 발생한 후로 결코 치유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분열은 주의깊게 공부해야 할 가치를 지닌 주제인데 그 이유는 이것이 비단 오늘날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하여 중요한 교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사건을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훑어 내려가는 독자들은 그 원인과 과정과 견과에 관하여 많은 것을 놓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독자들은 본문의 서술에 약간 비추인 빛에 의해서나 때로는 거의 예기치 않게 주어진 약간의 힌트, 또는 본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관구절들에 의해서는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열왕기상 12장과 역대하 10장에 기술(記述)된 분열은 적어도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쏠 수 있으며, 그 각각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표면상 그것은 열 지파가 다윗의 집에 반역을 일으킨 것이었지만 실상은 요아스(대하
하지만 이 문제의 다른 양상이 우리의 눈에 즉시 들어오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다윗의 집에 대한 반역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하나님과 그 율법에 대한 배교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로보암이 새로 만든 송아지 종교로 대다수의 백성들을 용이하게 유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었음을 보여주며, 그 후에는 우상숭배로부터 국가적인 규모로 회복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것을 더욱 확증합니다.
그리고 어떤 지파들의 갑작스럽고도 광범위한 반역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 이미 분열의 씨가 싹트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여러 번 그 흥한 머리를 치켜들었던 적이 있었지만(수
우리는 이 슬픈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면서 다 파악하기엔 쉽지 않은 사항을 다루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에 관해서나 혹은 다른 모든 죄에 관해서 간파하기 어려운 점들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것들이 어디에서 시작하느냐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과 그 영향들이 어디에서 끝나느냐 하는 점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우리는 흔히 얄팍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기가 유혹을 받고 넘어졌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아마 더 생각을 진행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지점에 이를 것입니다. 곧, 내가 그것을 주님께 자백했고 용서를 받았으니까 이제 그걸로 끝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명칭으로 불리는 죄를 실제로 행하고 나서 그것을 주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받았다면 이것으로 그 죄가 다 처리되었습니까?
일례(一例)로 다윗의 간음을 생각해보겠는데 아마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성도의 범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일 것입니다. 이 죄는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다윗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저(밧세바)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했을 때였습니까(삼하
하지만 이것으로 다윗의 죄과가 다 처리되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단이 사무엘하 12장 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 진리 자체에 있어서나 그 적용에 있어서 우리 시대에까지 전해져 내려와 주님과 그 백성들에게 많은 훼방거리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열왕기상 12장 등등에 묘사된 죄악의 뿌리들 중에서 적어도 몇 가지를 추적해 보고 또한 그것으로 말미암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울러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0년 4월호)
'횃불 > 199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하면 계속 전진할 수 있을까요? (0) | 2013.02.18 |
---|---|
낮은 곳에서의 찬송 (0) | 2013.02.13 |
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법 (0) | 2013.02.13 |
거룩한 시련 (0) | 2013.02.13 |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스코필드 (0) | 2013.02.13 |
믿는 자들의 적(2)-육신 (0) | 2013.02.13 |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할 수 있을까요?(2) (0) | 2013.02.13 |
믿어도 죄인인가? (0) | 2013.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