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계속 전진할 수 있을까요?
데이비드 뉴얼
최근에 다수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저에게, 과연 그리스도인의 삶이 계속 영위해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자기들은 삶에 있어서 실패감에 젖어 있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들의 말을 정확하게 인용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그들의 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실족했기 때문에 더 시도를 하는 것이 무가치하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끔씩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회의에 빠질 때가 있어요.”
이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애굽에서 구출받은 지 얼마 안된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사람들은 순례길을 떠난 후 첫 장애물을 만났을 때, 곧 그들이 추격해 오는 애굽인들의 소문을 들었을 때 낙담에 빠져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낙담과 회의에 대한 해결책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과 동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의 놀라운 징표인 그 유월절 어린양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놀라운 힘으로 자기백성들을 구출하신 후에 그들을 저버린다고 누가 믿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자기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지표(指標)로써 갈보리를 뒤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하지만 이스라엘은 또 위를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진영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그 인도의 구름이 위엄있게 떠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구름이 재난처럼 보이는 바로 그 막다른 골목으로 그들을 인도했던 것입니다(출
한 가지 더 부언하고 싶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았더라면 그들은 큰 격려를 얻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출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 빌립보서
이제 잠에서 깨어난 성도들이 밟아야 할 단계는 뒤돌아보지 말고 위를 쳐다보고, 앞을 내다봄으로써 올바른 전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하나님을 위해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 버릴 것(1절)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순전치 못한 습관에 계속 젖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습관들이 성경의 탐조등(探照燈)으로 드러날 때마다 그것을 자백하고 버려야 합니다(시 139:23~24).
물론 이와 같이 좁은 시각은 어떠한 죄악이라도 너그러이 용납해 주는 세상의 넓은 마음에게 전혀 이질적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모든 오류를 배척할 만큼 좁은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용감한 사람이란 온 세상이 “예”라고 말한 때라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실패라는 차꼬에 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아직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자라갈 것(2절)
생명의 유일한 증거는 성장입니다. D. L. 무디는,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게를 재야지 그 숫자를 세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결신자들”과 “제자들”을 지혜롭게 구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장의 수단이 말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유병 속의 내용물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결코 성장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우리는 병 속의 우유를 마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분석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것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진리를 알고, 또 그것을 가르치기까지 할 수도 있지만 실천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니”(렘
[3] 세울 것(5절)
여기에서 베드로는 몸된 교회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만 그의 말을, 지역교회를 세우라는 격려사로 취급한다고 해서 틀린 적용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무언가 자기 교회를 위해 건축하고 있습니다(고전
오늘날 젊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불만스럽고 비참한 모습들은 게으름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교회의 활동에 전심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담당해야 합니다.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백성들을 섬김으로 이름을 남긴 뵈뵈나 브리스길라, 도르가처럼 경건한 여자들의 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계속 동행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기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4] 드릴 것(5절)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의 종류로서는 자기 몸을 드리는 제사(롬
우리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여러분은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어디에선가 미끄러져서 떨어졌다면 자기 연민 속에 누워 있지 말기 바랍니다. 어떤 소년은, 어떻게 그처럼 스케이트를 잘 타게 되었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넘어질 때마다 일어났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도 일어나서 계속 전진하십시오! ♠
(199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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