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17)
히스기야
-윌리암 로저스
이제 우리는 아하스와 므낫세의 불행한 기록으로부터 눈을 돌려서 이 두 왕들 사이에 통치했던 위대하고 선한 왕에 관한 기록으로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히스기야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의 유다 상태는 그 이전의 어떤 경우보다도 더 나았습니다. 아하스와 그의 백성들은 대군주 앗수르 왕의 지배를 받았었으며(왕하
그래서(이미 여호와의 율법을 읽고 어느 정도 유익을 얻었던 것으로 보이는) 히스기야 왕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 개인을 위해 마련된 민수기 9장 10,11절의 교훈, 즉 부정함이나 다른 이유 때문에 유월절을 제 때에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 달 후에 그 절기를 지키도록 허락된 교훈을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적용하여 활용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이 조정(調整)은 그의 부친 아하스의, 그렇지 못했던 개악(改惡)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며, 한 절기를 8월에 지키도록 정한 여로보암의 조정(調整)과도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8월에 지킨 절기는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규례에 불과했습니다(왕상
이 유월절을 공표함에 있어서 히스기야가 취한 단계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의 성격 중에서 흥미로운 특성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대하 30:1) 물론 이것은 29장의 이미 드린 제사들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온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열성과 이 일에 하나님의 온 백성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겸하여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왜냐하면 29장 24절에서 그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도록 명하였고, 이제 30장 1절에서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유월절 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6~9절에 제시된 편지 내용대로 그가 에브라임 형제들을 초청한 것은 그저 우연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8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귀순하여···· 전(殿)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렇다고 그가 바리새인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며, 우리는 29장 6-9절에서 그가 유다와 자기 자신에 관하여 자백할 때 사용했던 아주 비슷한 표현과 비교해 봄으로써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왕의 초청은 뒤섞인 반응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북쪽 왕국에 남아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왕의 사자(使者)들을 조롱하고 비웃었지만 11절에서 우리는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으며, 8절에서는 잇사갈 중 얼마와 심지어 교만한 지파 에브라임 중에서도 얼마가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참석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가 관계되는 한 그들은 왕의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했으며, 12절의 “여호와의 말씀대로”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틀림없이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적인 확증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히스기야는 이것을 실천할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북쪽 지파들로부터 온 사람들 중에서 유월절을 지키기에 합당하도록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히스기야가 드린 기도는 그들의 처지가 어떠했었는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올바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들에게 있었으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깨끗케 하는 행동이 한 가지 있었는데 모인 회중은 이 가능한 행동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성을 돌아다니면서, 아하스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세워놓은 제단들을 “구석에서 “ 끌어내어(28:24) 기드론 시내에 던졌습니다(30:14).
모인 무리들은 7일 동안 크게 즐거워하였고, 행사기간을 7일 더 연장하자고 결의하였으며, 그들에 관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26절). ♠ -다음 호에 계속-
(199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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