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받는 기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한 때는 정죄당한 채로 죽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던 가련한 죄인이었다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救贖)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기만 하면 들으실 줄 알고 성령님이 마음에 지워주시는 간구를 가지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으로 감히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담대하겠습니까! 이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담대함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힐문합니다. “당신의 시시한 기도, 당신의 간구가 전능자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무한하신 하나님이 당신처럼 가련하고 유한한 존재, 하나님 보시기에 저울 위의 티끌만도 못한 피조물의 간청을 주의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브라함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티끌과 같은 나(我)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창
여러분은 이렇게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그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설혹 내가 기도할지라도, 또 간절히 기도할지라도 그 간구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다면 응답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살고 있지 않다면 그 기도는 여전히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시 66:18). 우리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우리의 간구에 대하여 우리는 즉각적으로 응답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며, 우리의 기도가 즉시 응답되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만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간구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것과 언젠가 후일, 어디에선가 그 응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무엇이 슬기로운 일인지, 무엇이 최선인지 항상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응답이 때때로 거의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경험했던 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파선된 배에서 목숨을 건진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조그만 섬 위에 던져진 자신을 발견한 그는 갖은 고생 끝에 자재를 모아 적도의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조그만 오두막을 가까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구조해 줄 배를 보내주시도록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면서 지나가는 배가 보이기만 하면 멀리서 해안으로 내려가 자기 옷조각으로 신호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다가 멀리서 지나가는 배를 보고, 이번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꼭 발견하여 구조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해안으로 급히 뛰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미친듯이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는 그냥 지나갔고, 마침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기 오두막을 향해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왔을 때, 그 오두막이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잔불을 남기고 갔었는데 바람이 그만 화재를 일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불에 타버렸고, 그는 낙심천만하여 도대체 어디에서 또 자재를 모아 새 오두막을 지어야 될지 난감한 심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아까 그 배가 자기 섬을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배가 해안에 인접했을 때 사람들은 보트를 보내어 그를 배 위로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제 신호를 보셨던가요?” “신호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피운 연기를 보고 당신을 구조하러 왔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지만, 그러나 그가 예상했던 방법으로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훗날 우리가 하늘 집에 갔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셨다고 생각했던 많은 기도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방범으로 응답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와 연관하여 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치료는 어찌되는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해도 치료를 받지 못할까?”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치료를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히
(199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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