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6)
그리스도의 신성
-노르만 크로포드 -
Ⅲ. 바울 서신서에서
사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처럼 유일신 하나님 중심의 뿌리깊은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 한 인간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열정적인 바리새인으로서 랍비 교육에 정통했으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1. 그의 초기 전도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진 사울에게 “나는 예수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이 계시는 “주여 뉘시오니이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그의 눈을 멀게 한 그 빛이 그의 마음을 밝게 했습니다. 오랜 후 그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다”고 써야 했습니다(빌
그는 즉시로 다메섹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행
2. 그의 초기 서신
일반적으로 데살로니가서가 바울 서신서 가운데 가장 일찍 씌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게 서신을 띄웠습니다(살전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주”란 칭호를 사용한 중요한 동기를 간과하고 있는듯 합니다. 고린도인들에게 그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썼습니다(고전
신약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성경구절 가운데 하나는 로마서 10장 9절입니다. 새로 태어난 신자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데(9절), 그분은 동시에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며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십니다(12절)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한 증거로 바울은 요엘 2장 32절의 “누구든지 추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는 말씀에 호소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울이 밝히고 있는 바, 즉 신약성경에서 그 이름이 예수인 주는 구약성경에서 그 이름이 여호와인 바로 그 주이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바울이 밝히고 있는 여러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고전
이 초기 서신들에는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진술들이 풍부합니다. 구약성경은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말합니다. 그것은 복수 형태와 관련되어 나타납니다(창
고린도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축도로 끝을 맺는데(고후
3. 후기 옥중 서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바울의 가장 심오한 진술들은 의미심장하게도 이들 후기 서신들에 속해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처음 만난 그날의 그 영광의 광채 속에서 그에게 계시된 진리에 대한 그의 보다 깊은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구원과 부활의주이며(로마서), 지역 교회의 주라고(고린도전서)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이제 그는 몸(the Body, 몸된 교회를 가리킴 -역주)에 대한 그분의 주되심(에베소서)과, 끝으로 우주에 대한 그분의 주되심(골로새서)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구세주는 끝이 부러진 다리입니다”(H.C.G. 모울). 옥중 서신 및 목회 서신에서 바울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 자신이 이미 가르쳐온, 그리스도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진리를 펼쳐 보입니다.
빌립보서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하는 서신입니다. 이타적인 섬김에 관한 이 매우 실제적인 가르침 속에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교리 중 하나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는데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영원하고 본질적인 존재(being)를 지니셨기 때문이었습니다(빌
에베소서의 위대한 주제는 모든 하늘 위로 높이 올리우사 우주를 그분의 임재(presence)로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천사와 모든 세상과 모든 하늘 위에 뛰어나신 그분은 본질상 신성의 충만 그 자체이십니다(엡
대표한다는 것은 정도 차이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가령 주한(駐韓) 미국 대사는 한국에서 미국의 관심사를 대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그를 만나보거나 그에게서 미국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의 완전한 나타남을 보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 바울의 표현의 부분적인 의미입니다(골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라는 칭호가 “제국 종교” 속에서 종종 표현되곤 했습니다. 가이사를 하나님으로 선언한 자들은 끊임없이 그를 가리켜 주와 구주라고 일컬었습니다. 혹자는 “바울은 가이사와 그리스도 사이에 세계의 주권을 둘러싼 싸움이 전개된 것을 보고 담대히 가이사 종교에게 도전을 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한 디도서 2장 13절과 같은 표현들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여기에 골로새서 1장 16~19절에 대한 J. B. 라이트푸트의 주목할 만한 해설을 인용합니다.
“그분의 뛰어남은 절대적이고 우주적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분께 복종합니다. 이 복종은 가장 뛰어난 영물(靈物)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십니다. 중보의 말씀되신 그분을 통해서 세상은 창조되었으며, 그 최종적인 목표인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만물 이전에 선재(先在)해 계시며 스스로 존재해 계십니다. 그리고 결속해 주고 지지해 주는 능력되신 그분 안에서 우주는 형태를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진리는 바울에게 있어 차가운 논리나 교리를 훨씬 뛰어 넘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자원하여 속박된 노예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의 주”라고 부른 그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에 대해 어떠한 고백을 하고 있는지요? ♠
-다음 호에 계속-
(199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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