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12. 2. 09:14 횃불/1995년

사람을 낚는 지혜로운 어부

- 이 춘 원 -

어느 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들을 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렇게 주님께서 부르시자 그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처럼 그 즉시 그물과 배와 아버지까지 버려두고 주님을 붙좇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계속 온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자들과 약한 것들을 다 고치시니 그 소문이 여러 지방까지 두루 퍼져 허다한 무리가 주님을 좇았습니다( 4:18~25).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에 들어오시기 전 30년간을 가정에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데리고 열심히 목수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빈둥빈둥 노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근면히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 쓰십니다. 모든 선진들과 선지자들과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에 나오는 제자들도 여전히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생업에 주력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전도하거나 말씀을 가르치거나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이 성역에 뛰어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일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도 성실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치시기 전에 계속적인 기도 생활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시면서 마귀의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4:1~17).

복음 사역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세상적인 욕망과 계획들을 다 버려야 합당히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온갖 정욕들 곧 식욕, 물욕, 성욕, 명예욕, 이기주의, 우상, 교만심, 지배욕 등등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즉시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된 제자들과 성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하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간에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말씀으로 응답을 받음으로 범사에 대처했습니다.

전도자의 자격과 무기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과 기도와 말씀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이 살고 마귀가 물러가고 세상을 이기며 영혼들이 구원받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님은 전도자로서의 온전한 자격을 갖추시고 신령하고 지혜롭게 분명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로서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멧세지는 회개하라!”이었습니다. 죄인들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면 모두 비웃고 욕을 하면서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죄 무흠하신 하나님의 아드님의 실재적인 권위를 가지고 전파하실 때 죄인들이 참회하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으며, 각종 병약한 자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전도인들은 그 심령과 생활과 인격이 깨끗해야 계속 쓰임을 받을 수 있고 그 전도의 진실성을 의심받지 않게 됩니다. 전도인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복음사역을 할 때 영혼들이 참으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위엄이고, 그를 통해서만이 모든 권세와 능력이 나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큰 권세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8:18, 9:1, 10:19).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특히 전도의 은사를 받은 모든 사역자들은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 주님께서 각 지방, 각 동네, 각 집, 각 사람에게 접근하셔서 복음을 전파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항상 어디로나 찾아간다는 것은 멸망할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우리에 있는 99마리의 양보다 잃었던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온갖 고난을 다 당하신 우리 주님은 너무나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19:10, 18:12, 9:13). 주님은 불쌍한 양들을 위하여 종종 눈물을 흘리셨고 사도 바울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상한 마음으로 자기 목숨이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최후까지 심혈을 다 기울였습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등불을 켜고 잃은 동전 하나를 계속 찾듯이, 문을 열어놓고 밤낮으로 탕자의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죄인들이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 전도자의 상한 태도입니다. 복음은 이론적인 성경 구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 마음을 주고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죄인의 영혼을 구원시킨다는 사실은 마치 새 생명이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은데 그 자연적 육체적 출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전도자들은 오직 영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그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도록, 보도록, 상고하도록 돌보아줄 뿐입니다.

나도 믿기 전 옛날에는 그와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더러운 죄인이었음을 돌이켜 볼 때 어떤 완고하게 대적하는 불신자가 있더라도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항상 사랑을 베풀고 기도해 주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언제나 기다려 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의 구원을 위하여 노심초사 눈물로 간구하던 성도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 구도자가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도 있습니다 거룩한 사랑의 기도, 인내하는 믿음은 영혼들을 구원시키는 능력입니다.

 

전도에 관한 교회적인 기도

(1) 하나님께서 추수하는 일꾼들을 많이 계속 모임 안에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보내주소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달리 70인을 뽑아 둘씩 짝지어서 친히 가시고자 하는 각 도시와 각 마을로 앞서 보내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1~11).

밭은 이미 누렇다 못해 희어져 추수할 시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일하는 일꾼들이 없어서 쓰러져 망해 가고 있으니 이 어찌 가슴을 치면서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할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하여 간구할 것입니다.

 

(2) 복음을 들고 구원을 받을 불신 영혼들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할 것입니다. 지옥으로 직행하고 있는 죄인들이 태반이지만(그들이 다 돌아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 중에서 정말 구원을 받기로 작정된 영혼들을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릴 필요성이 있습니다. 강냉이를 한꺼번에 튀겨내듯이 많은 죄인들을 한번에 다 구원시킬 수 없는 것이니 그 중에서 정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 13:40)들이 와서 믿고 구원받는 것이 전도의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 빌립 집사는 자기 생각대로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광야 길로 나아가 구도자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전도하고 침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그를 이끌어 갔습니다( 8:26~39).

우리 전도자들은 오늘날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주님께 간구를 드리고 영혼들을 분별케 해주시고 꼭 필요한 구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의탁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불신 영혼들에게 우리가 구원의 결과를 다 따져본 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혀 믿지 않기로 되어 있는 사람(?)을 놓고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허비하는 것 보다는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구도자를 찾아내 교제하는 것도 전도자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3) 전도자에게 합당한 구원의 복음을 주셔서 권능으로 전케 하시고 구도자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그의 심령을 깨우쳐 달라고 간절히 주님께 빌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불신자 자신이 전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전도자가 그에게 합당히 깨달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접전(뚫린)을 벌리고 있는 전도자와 구도자를 위하여 주위 성도들이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경우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단과의 치열한 전투입니다. 그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 천국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 판국에 성도 전우들이 기도로 도와주지 않는다면 승리의 구원을 쟁취하기가 어렵습니다.

필자가 어느 지역 교회의 특별 전도집회에 가서 복음을 며칠 증거하고 난 후에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이 형제가 능력 있는 말씀을 유창하게 잘 전도한 결과가 아니라, 자세히 알아보니 그 모임에서 전도집회를 앞두고 3개월 동안 개인적으로 계속 기도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 새벽과 낮으로 함께 모여 계속 간구와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결과였습니다.

이 형제가 녹초가 된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여 보니 필자의 온 가족들이 저녁마다 복음 전하는 그 시간에 맞추어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속해 있는 모임 성도들도 신실하게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집회 때 말씀 전파가 다 끝나고 난 후 구도자들과의 개인 교제 시간 때도 그 모임 식구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고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몇 명씩 이곳 저곳에 모여 무릎을 꿇고 간절히 구도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 구원의 역사는 기도로부터 시작하고 기도로 말미암아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와 간구가 참으로 중요하고 기도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사역이고 기도로 인하여 지옥 갈 죄인들이 새 생명을 얻고 성도들이 윤택한 영적인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쉬고 안 드리고 그것을 인식하면서도 실천 안 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 이제부터 이론을 폐하고 사상을 버리고 무조건 은혜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자! 몸으로 기도하고, 영혼으로 기도하며, 성령님으로 기도하기를 배우자! 만일 누구든지 구원받은 신자로서 기도하지 않거든 징계와 멸망을 받게 될지어다. 기도를 드리지 않는 무지함과 게으름으로 깊이 잠든 그리스도인이 어찌 높은 난간에서 떨어지지 않으리요. -간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여!

 

영혼을 낚는 어부의 지혜와 기술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고 구원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부가 그냥 그물을 던지기만 하면 금방 고기가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지혜와 기술과 경험이 없는 미련한 어부는 풍랑으로 길을 잃고 고기밥이 되기 싶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11:30). 요한복음 4 3절에서 42절까지 보면, 우리 주님께서 수가성에 사는 죄 많은 여인에게 지혜스럽게 접근하셔서 전도하시는 모습이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봅시다!

선민 유대인들이 천민 이방인들이 사는 사마리아 지방에 들어가기를 꺼렸으나 우리 주님께서는 전도 여행 중 피곤한 몸을 이끄시고 제자들과 함께 그곳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전도의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이방을 찾아가셨고 죄인을 멀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라고 할지라도 발로 걷어차신 일이 없는 주님이십니다. 비록 사마리아가 이방이고 앗수르 왕의 침략으로 인하여 혈통이 잡종처럼 뒤섞이고 종교가 불순화 우상화 되어버린 지 오랜 곳이었지만 주님은 접근하셨습니다.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인 관습에 있어서 서로 상종하지 않는 그 시대 상황이었으나 주님께서는 그곳에 자연스럽게 거쳐 지나가시면서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빵 조각을 먹는 개도 사랑하시고 세밀하고 친절하게 보살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내가 만난 어떤 종교계의 포교자는 자기가 가서 선교하는 나라 백성들을 민족성이 나쁘고 문화 수준이 형편없이 뒤떨어진 곳이라고 악평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무지하다 못해 돌대가리 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그런 사람은 선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 나라에 갈필요도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전도라는 것은 모름지기 그 나라, 그 지방, 그 백성, 그 언어, 그 풍습, 그 역사, 그 문화, 그 사회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민족과 그 시민들이 우상을 섬기고 도덕적 이성적으로 타락되어 있더라도 그 죄악을 같이 지을 필요는 없으나 그것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만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자의 지혜이며 겸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속하시려고 사람의 아들 곧 인자로 이 죄악세상에 오셨고, 사도 바울이 율법적인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자세를 낮추었고 이방인 헬라인들 앞에서는 그 문화를 따라 수준 높게 능변을 토하고 때로는 토인들을 만나서는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복음을 전파했던 이유는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행했던 것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코자 함이라”(고전 9:22,23).

고기를 잡으려면 물가로 가야 되고 신발을 적시기도 합니다. 깡패나 창녀나 술주정뱅이와 같은 죄인들을 만나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더러운 무리들로 간주해 버리고 멀리만 한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이 저들에게 전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때로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그가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구원받기 어려운 죄인이라거나,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문벌과 학벌과 지식이 많거나, 교만하거나, 너무 천해 보여 즉시 교제하지 않고 미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의사가 환자를 죽으라고 내버려 두는 직무 유기의 죄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성에 죄많은 여인이 우물로 물 길러왔을 때 즉시 전도할 기회를 포착하시고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개역 성경에는 무뚝뚝한 반말처럼 번역을 해놓았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주님께서 아주 친절하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아주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물을 좀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미국식으로 사역한다면 실례합니다. 내게 물을 좀 주시면 고맙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하고,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전개하고,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시인케 하고, 어떻게 결론을 내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취하셨던 원리와 방법과 그 태도를 상고하고 그 본을 따라 실행하는 것이 지혜롭겠습니다.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사물과 사람의 관심사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전도를 시작하는 대화의 문을 여셨습니다. 죄인여자부터 문제 삼지 않으시고 그 여자가물을 길러온 것과 주님이 행로에 곤하여 마실 물이 필요한 것을 가지고 대화의 첫 실마리를 푸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디서나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무슨 말부터 하면서 접근할 수 있을까를 망설일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의 인상이나 성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을 시는 더욱 더 사람과의 첫 대화가 어렵고 접근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태도와 예의 있고 정중한 자세로서 친절히 인사를 한 후 그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우선 가벼운 이야기부터 나누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날씨나 계절에 대하여, 병자나 그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고생과 수고가 많겠느냐 투약과 치료 등등에 관하여, 새 집을 지은데 가서는 건축과 새집 새 기쁨에 대하여,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자녀 교육이나 벽에 걸린 상장을 보며 칭찬하기도 하면서 성실하게 전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사상과 형편을 통하여 대화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론적인 영혼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잠시 마음의 문을 부드럽게 열고 서로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 피조물인 여인에 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인사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형편을 물어보고 하는 중에 서서히 전도의 말씀으로 진입합니다.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또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하는 중에 어렸을 때 교회당에 나가본 일이 있느냐, 학교 다닐 때는 어떠했느냐, 하나님과 내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에 평안이 있느냐, 인생이 행복하냐, 성경에서 하나님께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자신의 상태는 선하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식으로 인생과 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이유와 구속과 영생에 관하여 진지하게 교제를 이끌어 갑니다.

필자는 개인 전도시나 대중 전도시나 간에 항상 심령으로 간구를 드리면서 그의 상태를 살펴보고 그에게 필요한 성경말씀 구절을 찾아 전해주고 때때로 그가 직접 읽고 생각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나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여 그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안에서 보여주고 그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옥에 갈 큰 죄인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영원한 속죄의 첫 공로를 깨닫도록 인도해 준 후 함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가 끝난 후 간단히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영원한 속죄를 깨달았는가를 물어보고 그가 확실히 믿는다고 말하면서 기뻐하며 거듭나는 태도가 보이면 다시 그로 하여금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거나 내가 기도를 드린 후 마칩니다. 더 교제가 필요하다고 분별이 되면 그리스도인의 자백할 죄의 문제와 육신의 문제나 한 몸을 이룬 교회의 진리나 교회당 출석이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기 등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깨달아지지 않고 못 믿겠다거나 의심하거나 대적하는 구도자들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붙잡고 교제하기보다는 형편을 봐서 끝을 내고 또 기회를 갖도록 약속하거나 그런 기회를 만들어서 그 영혼과 계속적인 교제를 나눕니다. 또 다시 만날 수 없는 경우에는 시간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마는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있는 사람을 계속 붙잡아 두는 것은 어떤 경우 역효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으로, 피로, 성령님으로, 믿음으로,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구도자나 전도자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결코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심스러운 일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감동하심이 없이 구도자를 계속적으로 못살게 만들어서(?) 다시는 복음을 듣지 않게 하는 전도자의 우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도자들이 주입식으로 구원의 도리를 외워 형식적으로 믿게 되는 거짓 믿음을 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분별하는 것입니다. 강요된 믿음, 입으로만 믿는 믿음, 성령님의 내재하심이 없는 믿음,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 죽어 살아 움직이지 않는 믿음은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전도자가 구도자에게 어떻게 만나서, 어떤 방법으로, 무슨 말씀으로, 시간을 어느 정도로 사용해서 복음을 전하느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절 관계나 시간이 길고 짧거나 지식의 유무나 환경 형편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감동하시고 역사하심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구도자의 구원문제와 교회의 부흥 문제가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시간 관계나 말 잘하는 지식이나 능변관계나 구도자가 죄를 많이 지었느냐 적게 지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구도자가 믿으면 그게 바로 거듭나는 확실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사랑으로 친절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지만, 어떤 영혼은 무례하고 무지한 것 같은 전도자가 화난음성으로 당신은 오늘 밤에 죽으면 틀림없이 지옥 불 속에 들어가요!”, “하나님을 대적하면 당신은 저주 받소!” 이렇게 방망이 전도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며칠을 두고 괴로워하다가 주님께로 다시 나와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경우도 때로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에도 열차 안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도지 한 장을 옆 사람에게 주었는데 그 후 그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한번은 시장 통을 지나가다가 장사하는 아주머니에게 예수님을 믿으세요하고 한마디의 전도를 했는데 그가 그것이 동기가 되어 교회당에 나와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계속 술 먹고 음란하고 노름을 하고 깡패짓을 하던 남자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가 필자의 멱살을 잡고 나에게 구타를 가했습니다. 나는 참다못해 화가 나서 지옥 갈 마귀 짓 그만해!”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내가 자기에게 마귀라고 했다고 그 후에 나를 만나면 죽이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공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 자기 양심을 괴롭혀 견디다 못해 나에게 찾아와 그때의 잘못을 고백하고 지금은 교회에 열심히 나아가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전도자나 성도들은 전도할 때에 인간의 방법으로 요령 있게 구도자들을 대하기 보다는 그것 이전에 먼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심령으로 복음을 전하고 내가 구도자를 힘껏 돕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그 구도자를 주님께 부탁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구도자들을 주님의 구속의 피에 씻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주님의 말씀에서 확인될 수 있도록 맡기고 주의 성령님으로 믿어지고 시인하도록 의지할 뿐입니다. 우리 사람이 볼 때에 어떤 사람은 발리 구원받을 것 같고 어떤 성도는 주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이 보여도 그 결과는 하나님만이 아시고 성령께서만이 그의 믿음을 따라 그것을 좌우하십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5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