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중심 성경공부
요 나
W. W. 페러데이
니느웨의 멸망
이 공부는 요나가 전파한, 그리고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결말을 본 큰 성 니느웨 이후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지 않고서는 끝났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니느웨는 아마도 니므롯이 세운 바벨론(창 10,11장)의 경쟁 상대로 홍수가 있은지 얼마 후에 앗수르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니므롯의 바벨론은 유브라데에 건설되었고 앗수르의 니느웨는 티그리스강(아니면 힛데겔강) 위에 건설되었는데 두 강 모두 에덴동산을 적신 강의 지류입니다(창
그러나 오늘날 니느웨는 어디일까요? 모술(Mosul)이란 마을 맞은 편에는 수마일에 걸친 폐허가 있는데 거기서 많은 흥미로운 유물들이 발굴되어 현재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도시는 BC 625년 메대군에 의해 함락되어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 후로 아무런 재건노력이 없었는데 그것이 재건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 도시의 멸망은 요나처럼 갈릴리 선지자인 나훔에 의해 상세히 예언되었습니다. 나훔서는 요나의 사역이 있은 지 약 1백년 후에 기록되었으며 거기에 예언된 파멸은 또 1백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누가 나훔에게 그 큰 재난에 대해 얘기해 주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실진대 그분에게는 장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현재 일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그분은 이방신들에 대해 이렇게 도전하셨습니다.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사 41:22).
나훔서는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란 말로 시작됩니다. “중한 경고”란 표현은 구약 예언서에 자주 나오는 말로서 중한 멧세지, 즉 그것을 전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심판의 멧세지를 의미합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나훔서에서 책망을 받은 대상은 나라라기보다는 도시입니다. 반면에 이사야서에서는 그 수도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이 나라가 책망을 받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앗수르는 왕국시대에 회복되어 축복을 받을 것이나(사 19: 23~25) 그 오만한 수도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까닭은 니느웨는 그 당시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특별한 사역을 위해 요나를 그곳에 보내셨으며 그 모든 백성이 요나의 멧세지를 듣고 두려워 떨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니느웨 사람들로, 요나와 함께 탄 선원들이 큰 폭풍으로 인해 경험한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창조주께서는 어느 때든 국가적인 회개를 경시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오늘날 오만한 열국 중 어느 하나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겸비한다면 어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는지요! 그분의 의로운 통치 가운데 그분은 오늘날 많은 나라들을 징치하고 계신데 이는 그 모든 나라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징벌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왕이나 대통령, 혹은 수상이 그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여 모두가 겸손히 무릎 꿇었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나훔은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말합니다(나
정탐꾼들에게 한 라합의 말에서 우리는 범죄한 나라들이 하나님의 집행자들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수
니느웨는 40일간 유예기간을 허락 받았으며 그 결과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곧 그들의 죄악 된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나훔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도 그것을 멸시할 때는 하나님께로부터 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혹자는 니느웨가 메대에 함락된 것은 강물의 범람에 힘입은바 컸다고 주장합니다. 나훔
죄악된 도성에 대한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보인 요나의 행동은 매우 비난 받을 만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니느웨성 거리를 지나면서 임박한 멸망을 선포할 때 분명 자만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백성들의 회개에 대한 응답으로 선고가 철회되었을 때 요나는 마땅히 기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쾌해했습니다! 그의 위엄이 손상된 것입니다! 오, 가련한 육신의 비열함이여!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과 관련해서도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나타내려 하는지! 만일 요나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었다면 그는 그분이 은혜롭고 자비하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그분께 잘못을 고하기를 기뻐했을 것입니다(욘
요나의 동족은 한결같이 불충성한 가운데 요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보다 덜 은 총을 입고 따라서 덜 책임이 있는 다른 백성들은 왜 용서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면 안될까요? 이 복음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요! 우리 모두 다음과 같은 우리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199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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