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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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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원칙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독자들의 일시적인 생각이나 상상에 따라 해석된다고 믿는다. 그러한 생각에서 성경적인 해석을 신용하지 않으며,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해도 된다고 말하게 된다. 이러한 추론을 한 해석은 다른 해석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의 최종적인 정당성은 신학자들조차도 일치되고 있지 않다 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사단의 목적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6:9).

성경 전체를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마일즈 카브데일은 그의 대성서(Great Bible) 서문에서 무엇이 앞에 오고 무엇이 뒤에 오는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기록했는지 뿐 아니라 누구에 대하여, 누구에게, 무슨 말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의도로, 어떤 환경이었는지를 주목한다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썼다. 이 말은 성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현명한 충고이다.

성경은 그 안에 이해의 열쇠가 포함되어 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며, 성경을 초월하는 어떤 해석의 조직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성령의 인도 하심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로 우리들이 모든 성경에 적용할 어떤 해석의 원칙들이 드러났다. 이러한 원칙들은 자의적인 방법으로 성경 원문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바로 그 방법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으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방법 속에 우리들은 많은 실례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보통 성경적 해석학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원칙들 중에 몇몇은 신약성경 안에 있는 우리들의 교회 진리 연구에 적용될 것이다. 이것은 성경해석학에서 하는 연구가 아니므로 우리들의 주제에 직접 적용되는 해석의 원칙들만을 설명할 것이며, 각각의 해석의 원칙들이 타당함을 믿는 간단한 이유들을 말할 것이다.

 

(1)문맥의 원칙

성경해석 원리의 그 첫째는 문맥의 원칙이다. 그 해석에서 그 문맥을 벗어나는 성경의 말씀은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에서 쓰이는 것을 때때로 보는 것처럼, 저자인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에 대하여 확대해석 할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건하게 배우는 자들은 누구나 성경으로부터 분명한 권위가 주어지지 않으면 고의적으로 확대해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고전14:33).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질서를 세워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우리들에게 주셨다. 이 문맥의 원칙들은 모든 기록된 것들을 이해하는 규칙이며, 수세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가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부분에서 이 원칙을 굳게 지키는 것이 큰 지혜임이 증명되었다.

이 원칙으로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많은 예들이, 히브리서26-9절이 시편84-6절을 해석하거나 히브리서105-10절이 시편406-8절을 설명하는 것처럼, 발견된다.

 

(2)적절함의 원칙

첫째 원리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둘째 원리는 성경은 늘 적절하다는 것이다. 단번에(1:3) 계시된 바로 그 진리는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것을 우리들이 믿을 것을 요구한다. 모든 믿는 자는 침례를 받고 지역 모임(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라고 신약성경은 가르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들이 발견하는 것처럼 기독교계에서 믿는 자들이 나누어져 있는 지금 우리들은 약간의 다른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고 때때로 다툰다. 어떤 기준을 우리들은 써야 할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다른 기준이 없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말씀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적절할 뿐 아니라 필요가 생길 때는 언제든지 그 필요에 충분하다.

성경이 언제나 적절하다는 사실은, 성경을 해석하는 한 도구로써 현재에 있는 기독교계의 혼란으로부터 우리들을 건져줄 것이다. 우리들은 결코 우리들의 환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맞추려 해서는 안되며, 늘 하나님의 가르침에 우리들의 행위를 따르게 해야 한다.

 

(3)명확한 원형의 원칙

모임의 실제적인 실행이라는 주제에 직접 적용되는 세번째의 원칙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한 완전한 청사진인 한 원형을 가지고 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논한다는 것은 성경이 모든 면에서 충분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비성경적인 도입을 정당화하려는 어떤 시도에서 의자, 찬송가 책, 제본된 성경, 건물조차 성경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분명히 모임의 영적인 필요에 따른 영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다. 모임이 하나님의 건물(고전3:9)이라는 바로 그 사실은 그 설계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가르친다. 찬송가 책에 대한 성구는 없지만 찬송(고전14:15)에 분명한 인도하심이 있다. 성경을 어떻게 제본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은 없지만 모임에 있어서 성경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은 있다.

 

(4)전체 언급 양()의 원칙

전체 언급 양의 원칙은 거의 이미 언급한 원칙들 만큼이나 중요하다. 한 주제가 하나님께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매우 중요하다면, 성경에서 넓게 주어진다. 교회의 진리에 주어진 두드러짐은 그 중요성을 증명한다. 이 원칙의 증거는 성경이 영적으로 중요한 진리에 많은 부분 할애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하다. 우주 창조 언급에 21개 절을 할애하고 있으나, 성령은 광야에 있는 성막과 그 하나님께 대한 섬김을 언급함에는 38개의 장()들을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기쁨을 발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하여 모두 말하기 때문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주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모든 성경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함(24:27,44)의 중요성을 보였다. 주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그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언급에서 함께 엮으셨다.

 

(5)명백한 의미의 원칙

명백한 의미의 원칙은 성경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간결하고 명확한 것을 해석함에 있어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애매한 문장을 쓰지 않는다. 명백하고 자주 반복되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더 어려운 것을 해석하는 원칙을 우리들은 늘 써야 한다. 마태복음123절은 우리들에게 이사야714절에 대한 분명한 의미의 해석을 준다. 영감으로 마태는, 그저 한 젊은 처녀가 한 아들을 낳은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처녀 출생에 관한 예언임을 말한다. 마태복음26절에서 미가52절의 예언이 문자적인 한 해석으로 주어졌다. 유대 언덕에 있는 20가족으로 되어있는 베들레헴이 영원한 주님의 출생 장소이다.

 

(6)문법의 원칙

만약 언어가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진다면, 우리들은 그 문법을 이해함에 주의해야 한다. 성령은 갈라디아서316-18절에서 바울이 창세기177절에서 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라는 사실로 올바른 해석과 잘못된 해석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긋게 함에 있어 매우 주의 깊었다.

성경이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며 우리 자신들의 모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축복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주로 사용된 두 언어(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주의 깊게 성경을 배우는 자들에게 틀림없는 성경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많은 언어들이 있다. 문법은 첫번째 규칙은 아니나 중요한 것이다.

 

(7)최초 언급의 원칙

우리는 최초 언급의 규칙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몸 된 교회의 최초 언급은 마태복음161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고, 지역교회의 최초 언급은 마태복음1815-20절에서 주님께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진리의 최초 언급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 나머지를 통하여 드러나는 것처럼, 더 풍성히 발전할 그 진리의 중요한 요소의 몇몇을 포함하는 것이 성경의 일반적인 규칙임을 보일 수 있다. 진리의 처음 언급은 그것에 속하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할 수는 없으나, 성경을 통하여 원리들이 진행됨으로 발전할 초기단계 싹으로서의 진리일 수 있다.

 

(8)점진 언급의 원칙

신약성경에서 원칙의 점진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완성으로 나아감으로 하나님께서 그 진리의 계시를 점점 분명하게 하시는 원리가 이것이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77절에 기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그것이 신약성경 마지막(요일5:14-15)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가 전개되고 있다.

이 원칙이 증명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초기 증거에서 뛰어난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의 사역은 터이었고, 그들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일시적인 표적 은사는 초기 서신서들에서는 뛰어난 위치를 차지했으나, 후기 서신서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바울 서신들에서, 초기 서신들에서는 장로직이 매우 작은 위치를 갖지만, 후기의 글들에서는 매우 두드러지게 된다.

 

(9)구별의 원칙

이것은 문맥의 원칙에 가까우나,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경륜의 전체적인 구분을 하지 않더라도, 성경 독자들이 보통 율법과 은혜를 구분하기는 쉽다. 자칭 언약 신학자들조차도 이 원칙에 대해서는 거의 의문을 달지 않는다. 모두가 우리들이 이미 마일즈 카버데일이나 그와 유사한 체제에서 언급된 것을 따라 우리들이 읽고 있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은혜와 율법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가르침과 위치적인 진리, 구원과 상급, 이스라엘과 교회, 두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믿는 자들의 지역적인 모임인 지역교회(모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회와 교회들에 대하여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면서 이 해석의 원칙들을 지속적으로 적용할 것이다. 이것들은 자의적으로 강요하는 원칙들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의 이해를 위하여 성경 자체가 요구하는 바로 그 법칙들인 것이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