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지역교회의 찬송
성경은 많은 아름다운 찬송과 노래를 포함하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음악적인 악기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세상의 인기 있는 노래들은 빨리 사라지고 잊혀졌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한 새 노래를 가지고 있다. 비록 회개 할 때 한 새 노래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주어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새 노래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늘 새롭고 결코 낡아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새롭다. 우리들이 땅 위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늘의 노래를 배웠다. 그것은 영원히 새로운 것이다(계
비록 신약성경이 음악적인 악기 사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노래에 수반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 않다. 많은 수반되는 것들이 기술되어 있다.
1) 즐거움으로 노래함 - 야고보서
“너희 중에····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그들의 노래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이 알려진다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알 수 있게 되고, 일상 생활의 사실이기도 하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노예상태로 있는 동안에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홍해 옆 광야에 그들의 발을 옮겨놓자마자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 안에 있는 성도들의 증거(간증)의 가치를 충분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간수와 그 간수의 가족에게 그러한 증거(간증)였던 것은 빌립보의 깊은 감옥으로부터 나온 그 노래였다. 노래가 나을 수 없는 상황 아래서, 바울과 실라는 등이 터지고 잔혹하게 발이 묶인 채로, 한밤중에 하나님께 찬미의 송가를 노래했다(행
모든 것이 선하고 거룩한 것처럼, 노래에 있어서도 주 예수님은 위대한 모본(모범)이셨다. 마태복음 26장 30절은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라고 말한다. 겟세마네로 나아가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믿는 모든 이유를 나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차가운 마음도 감동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주님은 또한 십자가 이후에도 노래하셨다(히
세상 노래들은 매우 다르다 음악적인 경향은 사회로부터 느껴지는 압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와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주어진 그 시대의 음악으로부터 도덕적인 풍조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운다. 과거 20년간의 유행가 가사를 남으로부터 들어 보거나 대충 보기만 해도 그 경향을 알 것이다. “당신이 막다른 길에 가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있는 것 전부인가?”라는 가사는 지금 시대에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마음에 허무함을 남기는 것이라는 것을 보일 것이다. 비극적이지 않은 가사는 도덕적으로 퇴폐적이며, 결혼과 가정의 기초, 그리고 오랫동안 인간에게 있어서 풍성한 은혜였던 모든 것을 훼손하고 있다. 마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선전으로 말미암는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영향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기록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젊은이들에게 매혹적인 높은 맥동음에 오래 노출되는 최면 효과의 결과는 그 음악 효과에 그 의지를 굴복하는 것이다. 이 효과들은 철저하게 기록되었으며, 그 증거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도할지도 모르는 육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범이 필요하다. 그들의 모범은 그들이 동경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어떤 젊은이가 록(rock) 음악 소리에 끌린다면, 그 음악하는 가수와 그 그룹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연주자들의 팬들은 그들의 생활의 세세한 것에 대하여 방대한 축적된 지식을 갖는다. 각성제, 음행, 간음 그리고 동성애가 그들의 생활의 주요 요소이다. 스타들의 인기를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출판업자들에 의하여 이 요소들이 종종 이용된다. 사단(마귀)이, 죄의 종이 되는 것이 영광스러운 자유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바울과 실라는, 이 불쌍한 영혼들의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보다, 빌립보 감옥에서 더 자유로웠다.
‘거룩한 음악’은 아주 다른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이 헨델의 (메시아) 혹은 바흐의 (마리아 송가)를 즐기기 위하여 성령의 내주(內住)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으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향하여 노래할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이 지역교회에서 찬송할 때, 이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기쁨’의 정의 중의 하나는 ‘마음이 노래할 때’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오! 주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아옵나니
아무리 그 노래가 감미롭다 할지라도
성령의 가르치신 심령이 아니라면
주님의 선율을 토해낼 수 없는 것을
2) 은혜로 노래함 – 골로새서
기뻐하는 마음은 노래에 대한 한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골로새서 3장은 평화로운 마음 또한 노래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쁨이 있는 것이 마음이 노래할 때라면, 평화는 마음이 차분한 때인 것으로 기술된다. 골로새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중재하고(15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거하여(16절), 주 예수님의 이름이 억제하며 제지하는 것이다. 15-16절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나 17절은 주 예수라는 이름(칭호)으로 되어 있는 것에 주의하는 것은 유익하다. 우리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면,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으며, 주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의 판정자이다. 그 때 우리는 마음에 은혜(감사함)로 하나님께 노래(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16절).
3) 감사로 노래함 - 에베소서
감사라는 말은 축복에 대한 사의(謝意)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일 때, 그것들은 그냥 자유롭게 주어진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노력함 없이 일어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에베소서
이것은 성령 충만한 위대한 진리를 말하는 자리가 아니지만, 17절에서 이것이 모든 믿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18절의 정확한 동사의 시제는 ‘너희는 계속 충만되어 있어라(Being filled, be ye filled)”이다. 이것은 영적인 상태이다. 카리스마적인 사람들이 보통 성령이 충만된 것으로 가르치는 격앙되고 감정적인 상태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골로새서
성령이 전체적으로 지배하게 될 때 ‘서로 말함’ 즉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할 것이라는 것이다. 19절에는 이 점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다시 우리는 ‘서로 화답하며(speaking to one another)(엡
수년 전에 주의 깊은 성경 해설로 잘 알려진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잡지에 ‘찬양집회(음악에 의한 전도)’에 관한 연재기사가 있었다. 이 잘 쓴 연재기사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일은 평상시에는 가르침의 모든 점에 대하여 성경적인 권위를 추구한 데 비하여, 그 기사에는 권위로서 사용된 성경이 한 구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저자들은 성경에 너무나도 정통했기 때문에 성경을 잘못 적용할 리가 없었다.
에베소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따로따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영감을 받으며, 찬미는 하나님께 찬송하며, 신령한 노래는 하나님께 찬송을 이끌어내는 영적인 역사(歷史)에서 일들을 자세히 말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여전히 이 세 가지 형태의 찬양을 노래한다.
4) 인도하심으로 노래함 - 고린도전서
우리는 기쁘고, 평화롭고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이해하는 마음을 보려고 한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종종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봉사에서 음악적인 악기 사용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다. 구약성경은 또한 동물희생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그 쓰임에 대한 논쟁거리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유대인의 모든 의식들은 없어질 그림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림자와 실체 사이를 대비한 이 책 6장을 보라.
레위적인 체제에서 악기들이 사용되는 가운데서도 그것들이 지성소 안에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지역교회에 대하여 쓰인 성소에 대한 것이 이 말씀이다(고전
노래하는 것에 대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구절들은 참된 노래의 하나님 쪽을 강조하며, 그것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음악적인 악기 사용은 반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가는 참된 노래(melody)는 악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에 중요성이 놓이며, 이것은 마땅히 놓여야 할 자리이다.
5) 영광 가운데서 노래함 - 요한계시록
어린 양이 보좌 한가운데에 계실 때에(계
지역교회 안에는 악기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교회집회(모임)에서 악기 사용은 17세기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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