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지역교회의 징계(Ⅱ)
⇒ 도덕적인 죄에 대한 징계: 고린도전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의 매우 포괄적인 구절을 다루고 있다. 고린도전서 5장은 매우 상세한 방법으로 도덕적인 죄를 처리하는 주제를 다룬다.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에 있는 그 사람이 지역교회로부터 출교된 것은 그가 회개하지 않은 태도를 취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가르쳤다. 그는 행동 때문이 아니고 태도 때문에 ‘출교’ 되었다는 이 가르침은 잘못되었다. 그것은 음행죄를 범했어도 그 죄지은 사람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그 죄를 고백하는 한 출교되지 아니하며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오늘날 많은 곳(북미)에서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일을 한 번도 직면해 본 적이 없는 분들 가운데서 이것을 읽으실지도 모를 분들에게 관용을 구하는 바이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고 반복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 가르침은 한 문제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한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고, 공적으로 버리는 것은 몇 번이나 가능한가? 모든 믿는 자들은, 소위 ‘자질구레한 죄’를 거듭거듭 고백하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을 자신들의 경험으로 안다. 참된 회개와 고백이 있었다. 그러나 교만, 죄 된 분노, 혹은 악한 생각 같은 죄의 경우에서처럼 우리가 고백한 바로 그 죄를 거듭거듭 범했다. 그리고 그 죄는 용서를 받았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했고, 참으로 고백했고, 참으로 용서받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것이 도덕적인 죄가 다루어져야 하는 방법이라면, 같은 용서하는 은혜가 적용되어야 하며, 음행의 많은 행동들이 고백되어질 수 있으며, 어떤 지역교회의 조치도 없이 은밀히 용서될 수 있다. 그러한 가르침은, 우리들이 여러 해 동안 지역교회들 가운데서 조치를 직접 보았던 것처럼, 한 지역교회에서 죄에 대하여 문을 넓게 열게 한다.
나의 두 번째 문제는 죄지은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것을 문책받음 없이 허용될 수 있는 행동의 횟수와 관련된다. 만일 한 번 한 범죄는 출교되지 않으나 다섯 번은 충분하다고 주장된다면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지역교회가 조치하기에 충분한 햇수는 도대체 몇 번인가? 그리고 기간은 어떠한가? 만일 두 가지 범죄 사이에, 3개월처럼, 기간이 있다면 차별을 두어야 하는가? 이것은 쓸데없는 억측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 가운데 거한다’는 바로 그 원리가 포함되며, 한 번인지 죄 가운데 계속 있는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지은 사람이 독신인지 결혼했는지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인지, 독신이라면 그들이 장래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지 어떤지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지를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이다. 그 질문은 대답을 하고자 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한 번의 음행은 출교를 요한다고 간단하게 말함으로 대답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키케로는 로마사회에서는 고린도전서 5장에 있는 사람의 죄는 결코 언급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 죄가 성도들 사이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통한이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교만에 차 있었다. 2절은 만약 지역교회가 그 죄를 합당하게 통한이 여겼다면 하나님께서 그 범죄한 자를 제거하셨을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제거는 고린도전서
아비(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자의 행위에 대한 죄는 두 번 언급되는데, 두 경우 다(고전
지역교회가 범죄자를 다를 특별한 목적으로 모여야 했다(고전
고린도에 있는 지역교회는, 충분히 인정된 주님의 권위를 가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 덩어리에 퍼지게 하는 누룩을 지역교회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모였다(고전
지역교회에서 누룩을 제거하는 징계를 행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악(죄)이 지역교회 전체로 퍼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고전
우리는 아비의 아내를 취한 자가 11절에 언급된 다른 도덕적인 죄가 또 있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바울은 이 경우를 들어서 그들 중에 있는 죄를 판단할 필요를 고린도 지역교회가 통감하게 했다.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전
1) 음행에 대한 징계
음행의 한 행동이 음행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음란한 자가 되게 한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그 쓰임에 넓은 의미를 갖는 용어인데,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성적인 범죄를 말한다. 우리는 그 용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명백하고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종류의 죄들과 직면하게 된다. 음행은, 범죄한 사람이 결혼했건 하지 않았건 서로 결혼 관계가 아닌 사람 사이에 있는 성교는 물론 동성애 행위, 수간(獸姦) 그리고 죄악된 오늘날에 예사인 입을 사용하는 성적인 행위를 포함한다. 결혼만이 침소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며(히
나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2) 탐람(탐욕)에 대한 징계
탐욕스러운 사람은 남의 것을 탐내는 가운데 행동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동기나 내면의 생각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성경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훔치거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아니한 재물을 취하는 것이 포함될 때, 그는 탐람의 행위에 대한 죄가 있다. 그 행위는 출교를 요구한다.
아마 여기서 한마디의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지혜로운 형제들은 책임의 정도를 결정하는데 그들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죄와 관련된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복권 같은 합법적인 도박을 하는 이 시대에, 이러한 종류의 행위에 관여하고 있는 지역교회에 속한 믿는 자는 탐람의 죄가 있으며, 고린도전서
3) 우상 숭배에 대한 징계
우상 숭배자는 이방세계 우상에 절하는 사람이었다. 우상의 신전과 관련된 많은 종류의 부도덕이 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구원 받고(고전
4) 후욕에 대한 징계
후욕은 다른 사람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갖는 중상(中傷)이다. 후욕은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에 대항하여 행한다는 점에서 욕설과는 다르다. 이것은 유다서
그리나 그 실례를 보인 신약성경 두 곳(유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말하면 그것은 욕설이고, 큰 소리와 화난 목소리로 말하면 그것은 후욕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말로 욕설과 후욕을 구별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게 주관적인 판단이다. 왜냐하면 말의 높이나 목소리의 세기는 말하는 자의 성품에 의존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욕과 욕설을 구별하는 더 좋은 방법은 후욕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역교회 안에서 성령의 세우신 영적인 통치권을 전복시키거나 적어도 약화시킬 목적을 가진 지속적인 활동의 태도와 대항하여 말하는 것이다.
5) 술 취함에 대한 징계
술 취함이란 말인 그리스어 ‘methusos’는 심하게 술에 빠져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말 자체 속에 습관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 습관으로부터 보호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알코올(술) 사용을 일체 금하는 것이다.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이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음으로 보호를 받는다. 인간에게 알려진 모든 종류의 죄는 거의 술 취함과 관련된다. 도덕적 억제력과 자제력은 술로 말미암아 약화되거나 전적으로 없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술은 현시대의 많은 부분인 부도덕의 한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6) 토색에 관한 징계
토색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물건을 갈취하는 사람이다. 속임과 사기로, 그는 사업 거래에서 자기를 위하여 이 익을 챙긴다. 요즈음은 광고에서 부정직이 많은 시대이다. 광고는 토색(약탈)이라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적어도 그러한 사고방식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토색(약탈)은 더 약한 사람이 굴복하도록 강요하는, 즉 억지로 차지하는 사상이 들어 있다.
이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에 저촉이 되어도, 믿음을 고백한 믿는 자는 지역교회 교제로부터 내어 쫓겨(출교되어야) 한다. 13절은, 한 지역교회는 ‘교중 사람들’을 가지고 있으며, ‘내어쫓긴(출교된)’ 사람은 그가 회복될 때까지 지역교회 밖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인다.
7) 징계 후의 회복
고린도전서
모든 지역교회의 징계는 회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징계라는 말 쓰임 자체가 막대기(매)에 의한 교정을 가리키는데, 말에 의한 교정인 훈계와 대비된다. 지역교회와 회복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회복을 바라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8) 회복과 지역교회
한 지역교회에서 징계를 요구하는 죄가 드러났을 때, 통한이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고린도 지역교회는 이것이 부족했다(고전
9) 회복과 회복된 자
고린도후서
자백이 자발적이라면 회개의 역사는 훨씬 전에 이미 일어난 것이다. 죄가 발각되고 그리고 자백이 강제적이라면 상황은 매우 다를지도 모른다. 지혜로운 형제들은 이 구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회개의 증거는 언제나 눈물 흘리는 것이나 슬픈 표정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의 기질이 고려되어야 한다. 지역교회의 교제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함께 수반되는 정기적인 집회 참석과, 하나님과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좋은 지표들이다. 출교된 사람이 지역교회 밖에서 있어야 될 정해진 기간은 없다. 회복에 대한 순전한 증거들이 재영접을 위한 참된 인도하심이다. 한 믿는 자가 회복되면, 그는 용서되어야 하며 위로 받아야 하고, 사랑이 그에게 확증되어야 한다(고후
장로들에게 회개가 명백하다는 것이 충족되면, 그들은 지역교회에 알리고, 성경적인 반대들이 없다면 그 사람 혹은 사람들이 영접이 될 것이라고 발표해야 한다. 지혜로운 형제들은 반대가 성경적으로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어떤 개인적인 자만과 편견의 결과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반대는 전적으로 무효이며, 반대자는 장로들로부터 그렇게 통보받아야 한다. 장로들이 참된 회개가 일어났다고 믿는다면, 한 사람을 지역교회 밖에 놓아두게 하는 이런 종류의 반대는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교회는 민주주의가 되어서도 안 되며, 제 고집대로 하는 데가 되어서도 안 된다(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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