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지역교회의 징계( I )
이 책의 18장-20장에서 다루는 엄숙한 주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울은 징계에 대하여 고린도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했다. 고린도후서
우리들이 성경을 살펴보는 가운데, 사람들의 실패에 있어서 지역교회가 최초로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보았다(마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러한 증거(간증)가 존재할 것이라고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은 그 손댐으로 못쓰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세기에 걸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불완전한 도구를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에 격려가 된다. 인간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증거(간증)가 유지되어 왔다.
지역교회의 징계에 대하여 가르칠 때, 보통은 출교를 요구할 정도로 심하지 않은 내부의 징계로부터 시작해서 지역교회로부터 ‘쫓아내는’ 것을 요구하는 심각한 죄로 점점 옮겨간다. 우리가 이러한 순서를 택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도덕적이고 교리적인 죄에 대한 징계가 내부 징계의 형태보다 더 심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른 종류의 징계들이며, 각각은 서로간에 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분명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관련은 죄는 늘 처리되지 않으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형태의 죄와 관련된 도덕적인 원칙이며, 지혜로운 왕 솔로몬에 의하며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지역교회의 징계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지역교회의 교제로부터 죄지은 사람의 ‘출교’를 요구하는 죄를 먼저 보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인지 거의 실행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징계를 볼 것이다.
1) 교리적인 죄에 대한 징계
디모데전서
훼방은 하나님께 말하는 욕이다. 이 사람들은 주 예수님과 이 서신서에서 믿음, 명령, 진리, 맡김, 의무라 불리는 복음의 교리들을 욕되게 하는 훼방(모독)을 한 데 대한 죄가 있었다. 이 매우 귀한 진리의 직분은 바울에게 맡겨진 것이었으며, 후에 디모데에게 행하고, 지키고 그리고 전파하라고 맡겨진 것들이다(딤전
이러한 사람들은 사단에게 넘겨졌는데, 이 표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유일한 안내는 고린도전서
디모데후서
디모데전서
2) 죄(잘못) 고백하기를 거부함에 대한 징계
디모데전서 1장에 있는 모든 것을 동의하며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마태복음
한 범죄가 어떤 사람에 의하여 그 형제에게 저질러졌다(15절).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답은 이 한 절 안에 주님에 의하여 주어졌다. 죄 범함을 당한 사람은 죄지은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문제를 미리 말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면전에서 그 사람의 잘못을 말한다. 만약 고백이 이루어지면, 그 문제는 해결된다. 작은 겸손이 큰 문제를 해결한다. 이 회복은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의 회복과 연관된다(12-14절).
“만일 듣지 않거든(16절)”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되, 이 문제를 아는, 전체로 해서 두세 사람이 간다. 주님은 명백한 이유로 ‘지역교회의 두세 장로들’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당시 장로로 알려진 사람들은 유대인 장로들뿐이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상에 육체로 계시지 아니하시고, 각 지역교회에 인정된 장로들과 함께 지역교회가 이루어질 시대를 위한 진리이다. 그러나 그 자신과 지역교회가 신뢰하는 사람들 즉 장로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만약 독자가 이 점에서 장로들이라고 인정하기가 어렵다면, 17절로 가면 그렇게 해야 될 필요가 생길 것이다. 합당하고 성경적인 장로의 역할 없이는 지역교회에서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세 증인이 죄를 고백하게 하는 데 실패한다. 주님께서 미리 15절에서 그 사람은 그 형제에 대하여 죄를 지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음을 분명히 해두자. 장로들은 종종 주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지 않으신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양쪽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본 다음에 아무 죄도 범하지 않았든가 아니면 양쪽이 다 죄를 범했다는 확신을 가질지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은 거기에 어떤 죄가 있을 때 매우 주의 깊게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는 이 경우를 그러한 추가된 문제들로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사람은 죄가 있고 두세 증인의 면전에서 죄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이제 이 문제를 지역교회 앞에 들고 나온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모든 장로들과 모든 성도들을 의미 한다(빌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만약 그 사람이 옳고 교회가 잘못하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이런 종류의 변론은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잘못했고 교회가 옳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회가 잘못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 문맥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결정을 교회가 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리기 때문이다. 즉 그 결정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온 것이며, 전혀 이 땅의 입법권이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하여 하늘이 이미 결정한 것을 그냥 실행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l8절). 우리는 분명한 구절의 분명한 의미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가정적인 문제들을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된다. 무고한 사람을 잘못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공정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아신다. 히브리서
물론 마태복음 18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는 진짜 문제는 주 예수님께서 17절에서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너는(단수): 한글개역성경에는 없음)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단수 인칭 대명사는, 죄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죄지은 사람에 대하여 지역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 같이 대하나, 다른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대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왔다. 실제적인 면에서, 이 해석은 늘 나에게는 죄의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심판으로 보였다. 그는 죄 범한 자에 대하여 판단을 하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교회 말 듣기를 거절한 죄를 지은 사람과 교제하는 모든 활동으로부터 죄의 피해자(무고한 사람)를 제외시키게 된다. 내가 여기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뜨리지 않았다면, 이것은 죄의 피해를 당한 자(죄 없는 자)가 지역교회의 교제 안에 더 이상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17절 마지막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진실로 너희(복수)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라고 하셨다. 문자 그대로 너희 즉 지역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 어떤 다른 문제와 관련지어서 매고 푸는 것을 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분명한 의미는, 그가 지역교회의 말을 들으며 그의 잘못을 고백할 때까지, 지역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범죄자를 쫓아내며, 지역교회가 그 사람에 대하여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기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의 징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대하여 지역교회 안에서 행하여야 할 것을 행할 따름이다.
이 부분 바로 앞에 나오는 비유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와는 매우 다르다. 여기(마태복음 18장)에는 잃은(lost) 양이 아니고 뛰쳐나간(gone astray) 양이다. “만일 찾으면(마
'교회진리 > 주님의 이름 아래 모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4장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여성들의 섬김 (0) | 2009.04.10 |
---|---|
제15장 초기 지역교회의 경건한 여성들 (0) | 2009.04.10 |
제16장 지역교회의 찬송 (0) | 2009.04.10 |
제17장 유전들( I ) (0) | 2009.04.09 |
제17장 유전들(Ⅱ) (0) | 2009.04.09 |
제19장 지역교회의 징계(Ⅱ) (0) | 2009.04.09 |
제20장 지역교회의 징계(Ⅲ) (0) | 2009.04.09 |
제21장 지역교회의 드림 (0) | 2009.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