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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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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6. 17:40 횃불/2001년

어느 나귀 가족의 경험담

송 기 섭

성경에서 나귀(당나귀)는 아주 일찍부터 언급되고 있는데, 심지어 아브라함이 살던 족장시대에도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제물로 드리려고 두 종과 함께 타고 갔던 짐승이 나귀였습니다( 23:3). 또한 야곱도 이 나귀를 탔으며, 모세 또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 갈 때도 이 나귀를 타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20).

더욱이 이방인 선지자 발람이 모압왕 발락에게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하러 갈 때도 다름 아닌 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거기서 그 나귀는 하나님의 기적에 의해 이 세상에서는 처음으로 사람처럼 입을 열어 망령된 발람 선지자를 책망하였습니다( 22:21~33). 자신을 채찍질하는 발람에게 그 나귀는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어찌하여 나를 때리는 것이냐?”( 22:28~30).

마태복음 21:1~11에서도 나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님을 등에 태웠던 나귀의 입을 열게 하셨다면, 그 나귀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했을까요?

아마 그 나귀는 분명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겸손하게 그 나귀가 체험했던 경험담을 조용히 귀담아 듣고 그 교훈을 마음에 새깁시다.

 

1. 나귀 새끼의 원망과 불평

저는 어느 평범한 나귀 부모에 의해 예루살렘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자라가면서 나귀로서 사는 평범하고 힘든 일상이 점차 싫어졌습니다. ‘왜 하필 나는 볼품없는 나귀로 태어났을까? 만일 내가 멋있게 생긴 말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며 엄마에게 불평을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항상 고개를 떨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엄마도 먼 옛날 어릴 때는 나와 똑같은 불평을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런 불평과 한탄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그저 포기하고 살아가다가도, 가끔 우리 나귀 가족을 너무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때가 있습니다. 실상 주변에 살고 있는 헤롯 왕족 가문의 호사스러운 나들이 행차나 칼과 창으로 무장한 로마 군인들을 태우고 가는 말들을 볼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오늘도 주인이 내다 팔 곡식을 힘겹게 등에 젊어지고 가는 엄마 곁에서 처질세라 열심히 따라 갈 때였습니다. 우리 일행이 막 예루살렘 성 입구를 힘들게 올라가고 있을 바로 그 때 헤롯 왕족의 현란한 나들이 행차를 만났는데, 그 거들먹거리는 말들을 보며 우리가 느꼈을 비참한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똑같은 짐승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저렇게 편하고 호사스럽게 사는 반면, 우리는 맨날 형편없는 음식을 먹으며 밤낮으로 고된 일을 해야만 하다니····

 

2. 주의 제자들의 뜻밖의 방문

햇볕이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아침 시간, 엄마 곁에서 졸고 있던 나는 주인장 계십니까? 주인장 계십니까?”라고 주인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뜻밖의 방문에 다소 당황한 주인이 문간에 나갔고, 두 명의 방문객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주께서 잠시 나귀를 쓰시겠답니다!”라는 말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시지요!” 하면서 우리 쪽으로 두 방문객을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주인이 그 방문객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 조금은 무서워서 저는 얼른 엄마 뒤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두 방문객은 제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악의 없고, 아주 평온해 보이는 얼굴의 소유자였는데 우리를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몹시 흡족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삐를 부여잡은 두 방문객은 우리를 이끌고 마을을 지나 예루살렘 성 입구쪽으로 향했습니다.

 

3. 주님을 등에 태우고

엄마와 저는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두 안내자를 따라 가다가 주변에 수많은 군중들을 보면서 몹시 놀랐습니다. 사실 조그만 마을에 사는 우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특별히 10여명의 사람들에게 둘려 쌓여 있는 어느 주인에게 끌려갔는데, 솔직히 말해 저는 그같은 주인을 보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분을 보았을 때 저와 엄마가 본 그분은 정말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화려한 옷으로 단장하지 않으셨으나, 주변에서 가끔 보곤 하는 왕족들이나 로마군인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신성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슬픔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그분이 바로 요즘 한참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저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위로하셨으며, 심지어 죽은 나사로라는 사람을 살리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 결과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문도 근래 들어 심심참게 들려 왔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아이들과 심지어 우리 동물들도 무시하지 않고 아끼신다는 소문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장차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 사흘 후에는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그분 스스로 말씀하셨다는 소문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이같은 소문이 거짓이라고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심지어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많다는 소문도 듣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바로 그분이 우리 쪽을 돌아보며 다가오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가까이 오셔서는 엄마와 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웃옷을 벗어 엄마 등에 깔았고 그분을 부축하여 등에 올라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이 타도록 조용히 서 있으면 되었습니다. , 세상에 그렇게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분이 화려하게 꾸민 말 등이 아니라, 겸손하게 보잘것없는 우리 나귀 등에 타신 것입니다! 너무도 황송하고 고마워서 엄마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고 그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으로 오르는 길에 사람들은 요란스럽게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길에 깔며 크게 소리지르며 환호했습니다.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

 

4. 잠시 동안의 착각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격려받고 감동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 비로소 나귀로 태어난 신분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전에 화려한 말과 비교해서 열등감과 비애를 느끼고 나귀로 태어난 신분을 비관했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분명 엄마도 저하고 똑같이 느끼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엄마 눈에서 영롱하게 맺히는 작은 눈물 방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얼마를 가자, 이제 저는 은근히 우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없이 주님을 등에 태우고 가는 엄마 나귀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평범한 나귀가 아닌가 봐요.  엄마, 우리가 특별한 조상을 둔 후손인가요?” 그러자 엄마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저를 쳐다 보더니, 얼마 후 진지하면서도 부드러운 어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엄마는 지금 너무도 기쁘고 즐겁단다.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환영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 등에 타고 계신 주님이란다. 하지만 엄마는 다만 천지의 주인님을 등에 태우는 일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란다이런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엄마 말씀이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 하루는 우리에게 얼마나 흥분되고 기뻤던 날이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주인은 무슨 큰 일을 당한 사람처럼 놀란 표정으로 예루살렘 성을 향해 서둘러 외출했습니다.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고 있던 오후, 우리는 밝던 하늘이 갑자가 컴컴해지고 여기 저기서 땅이 갈라지는 무시무시한 굉음을 듣고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동물 친구들을 통해서 우리를 등에 태웠던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로 그분은 갑자기 캄캄하게 되고 지진 소리가 나던 그 날 오후에 골고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고, 삼일 후에는(우리가 이전에 들었던 소문대로) 정말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글쎄 500명도 넘는 다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5. 그분을 만난 이후로

어쨌든 간에 그 사건 이후로 우리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저와 엄마는 나귀 처지를 비관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 친구를 만날 때면 자랑스럽게 그 주님을 보고 그분을 태운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어떤 친구들은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기뻐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든 안 믿는 제가 경험한 사건은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귀한 체험이니까요.

그리고 이번 우리 나귀 가족이 경험했던 일을 통해 깨닫게 된 교훈들이 더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 같은 평범한 짐승도 주님이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크고 멋있는 짐승들뿐 아니라, 우리 같이 볼품없고 평범한 짐승들도 주님의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기만 한다면요. 또한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순간이 있다면, 그 때는 우리 등에 주님을 태웠을 때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실상 우리자신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 등에 타고 계신 주님이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교만한 마음을 갖는 것이 심히 어리석은 행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 나귀 가족에게 이 놀라운 체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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