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가정
(에베소서
- H. A. 아이언사이드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22절 말씀이 21절 말씀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여러분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것은 삶의 모든 관계에서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는 그것이 적용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얼마나 놀라운 제도인지 여러분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교도의 땅에서 사역하는 어떤 선교사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단락을 읽고 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록 선교사역에 동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와 같이 살게 되기를 우리가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요. 이 미개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이 영위할 수 있는 삶은 여러 가지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는 그리스도인 치과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스도인 가죽 기술자, 구두 제조공, 마구 제조업자와 그의 가족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대로 그 기능을 수행하는 가정을 보지 못한 그들에게 우리가 기독교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껏 보아온 것과는 아주 전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그리스도인 남편, 따뜻하고 아름답게 순종하고 가정에 충실한 그리스도인 아내, 기쁜 마음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그리스도인 어린이들, 자녀를 사랑하여 주의 교양과 훈계로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들.”
이것은 수많은 이교도의 땅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만드는 것은 기독교이며,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 복되고 즐거운 제도를 우리는 얼마나 소중히 여겨야 합니까.
이 서신서에서 저자는 우리를 신적 계시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음이 매우 분명합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천사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의 영혼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과,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진 사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가 말할 때, 우리의 심령은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종결 부분에서 그는 우리가 매우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으로 내려오는 듯합니다. 그는 이 놀라운 몸의 진리를 그리스도인의 가정예절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저급한 수준의 삶을 살면서 고도의 진리를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에베소서 전반부의 내용을 아주 유창하게 반복해서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놀라운 특권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불행하게도 에베소서 후반부의 진리를 매일의 삶 속에서 나타낼 수는 없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고 이제 이에 대한 직접적인 예를 아내에 대한 남편의 관계에서 우리는 보게 됩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복종하라”는 말이 헬라어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헬라어 그대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을, 남편들이여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
이것을 보라. 사도는 아내에게 노예의 위치(때때로 이방 지역에서 아내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요구하지 않고, 그는 상호성실과 상호존경과 상호복종을 요구합니다. 가운데 있는 내용을 뛰어넘어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것은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복종하는 방법입니다. 즉 그것은 상호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다운 가정을 만드는 것은 이처럼 서로에게, 즉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상호 성실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에 아름답고 젊은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많은 면에 있어서 자기 뜻을 펴서 출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잘 양육 받고 보살핌을 받은 가정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머지 않아 그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한 남성을 만나게 되었고, 웬일인지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 끌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고 어떤 경험이라도 하고, 가정을 돌보고 그와 나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위치에 서겠습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모르던 남성이었습니다. 혹은 여기에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게 되었고 상당한 돈을 벌었으며, 그 돈과 그의 시간으로 무엇인가를 하리라고 그는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애정으로 부풀어오르게 하는 한 여성을 만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노동이나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비록 그녀를 들보는 일이 나 자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거하실 때, 그리스도와 교회의 상호관계가 얼마나 아름답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체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길을 단념하겠습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그분께 드리겠습니다. 나 자신을 그분께 맡기겠습니다. 그분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사기 위해 자기 생명으로 그 값을 치르셨고, 지금은 자기 것으로 삼으신 자들에게 아끼지 않고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는 이 충만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바로 이 일의 본을 보이도록 그는 계획하셨습니다.
사도가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 복된 장면과 우리의 가정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해야만 되겠습니까!
조심스럽게 각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러한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인의 가정뿐임을 기억하십시오. 결혼은 육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집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복종하지 않고서도 결혼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교회를 돌보시고 그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남편은 거칠고 독단적이고 건방지게 남들에게 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몸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돌봄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와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땀흘려 일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25절에서 우리는 남편에 관한 부분을 읽게 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최근에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한 한 젊은 형제가 어느 날 고민 중에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상숭배에 빠져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저는 지금 아내를 너무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그녀를 너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보다 형제가 그녀를 더 사랑하신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입니다.”
여러분이 이 한계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사랑, 남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반역죄로 왕에게 고발당한 사이프러스의 어떤 장군의 아내에 대한 흥미 있는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녀는 왕에게 소환되어 심리를 받은 후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는 그녀의 남편은 그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아내의 사형선고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왕에게 부복하여 간청했습니다.
“전하, 그녀의 생명 대신 저의 생명을 취하십시오. 그녀 대신 제가 죽도록 해주십시오.”
왕은 크게 감명을 받고 말했습니다.
“죽음으로도 깨뜨리지 못할 사랑이로군.”
그리고 왕은 그들을 방면해 주었습니다. 행복하게 걸어가면서 남편이 말했습니다.
“왕께서 당신을 사면해 주시면서 우리를 얼마나 인자하게 보고 계셨는지 당신은 그 모습을 보았소?”
“나는 왕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한, 한 사람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문에서 보게 되는 그림입니다. 사랑하는 자의 복을 위해서 자기의 가장 귀한 것,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는 것이 그리스도인 남편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런 교회의 머리이며 모든 그리스도인 남편들의 이상형인 이 복되신 남편은 그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일종의 씻음의 예식인 세례에 대한 언급이라고 하지만, 나는 말씀이 스스로를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불결함 속에, 그리고 거룩하신 그분과의 교제가 없을 때, 그가 우리를 찾으셔서 그의 진리의 말씀의 물을 우리에게 부으셔서 우리는 진리로 깨끗하게 되었고 또 신령하시고 진정하신 그분과 이와 같은 교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내 손이 더러워지면, 물로 그것을 씻어서 그 더러움을 제거합니다. 이처럼 내 양심과 마음과 삶이 모두 더러워지게 되면, 주님은 성령에 의하여 그의 진리의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키십니다. 그리하여 나는 물로 씻어 새롭게 태어나게 되고 그분 앞에서 정결하게 되어 그분과의 교제와 연합에 적합하게 됩니다. 머지 않아 그분이 신부를 자기 앞으로 등장시키실 때, 영광 중에서 완전한 중생이 이뤄질 것이며, 죄로 인한 티나, 나이로 인한 주름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것은 오는 세대에 나타나게 될,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의 모습입니다. 극단적 세대주의적인 교훈을 따르는 어떤 사람들은 이 장을 읽으면서도 교회가 어린 양의 신부임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그 신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말하기를, 신랑은 복되신 주님이고, 교회는 그분의 구속받은 신부여서 이 둘은 영원토록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제 이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기 아내에게 자상하게 대하지 않는 남편은 자기 몸을 망치고 해쳐서 욕되게 하는 자와 같습니다. 또 이처럼 우리는 그 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착하고 헌신적인 남편까지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민에 빠지게 하는 아내들이 있다는 말을 우리는 듣습니다. 두 사람은 한 몸으로서 다음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라.”
주님과 우리의 연합은 너무나 깊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어떤 이들이 교회는 신부가 아니라 몸이라고 주장한다면, 사도는 그 주장을 반박합니다. 한 남편의 아내가 그의 몸이며 신부이듯이, 교회는 몸이며 또한 신부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이 연합으로 인하여)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될 때, 주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마음을 자신과 연합되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서로가 연합되게 하시며 이리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이룩하게 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랄만한 일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사도가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가정,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성숙하게 사랑하고 복종하며 언제나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런 가정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지 않은지 자세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화의 진정한 뿌리는 가정모임을 게을리 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
영적인 연합이 없는 가정(남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아내만 그리스도인인 가정)의 경우를 우리는 봅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에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들을 주의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바로 서게 되면, 기도는 향기와 같이 가정모임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상달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정이 바르게 되지 않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복종하지 않으며, 그리고 아름다운 관계가 없어지게 되면, 곧 바로 기도가 방해됩니다. 가정의 상태를 보여주는 온도계를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행복하게 무릎을 끊고 갖가지 문제를 주님께 아뢰게 되고, 혹은 여러 가지 일들이 순조로울 때 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바치게 된다면, 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그러나 양쪽이나 혹은 한 쪽에 속을 터놓지 않는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바다의 폭풍이 된다는 것과 이미 그것이 그들의 교제와 연합을 가로막는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정모임이 드려지지 못했다면, 또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서로 권하고 또 자녀들을 권하여 부부가 함께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이며,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매일매일 가정모임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단락을 마무리 지으면서 사도는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비밀들에 대해서 거듭 거듭 말했습니다. 1장 9절에서 그는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라고 말합니다. 3장 3~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 하셨으니.”
그리고 이제 그는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큰 비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부부 상호간의 관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큰 비밀입니다. 사실 이것은 사도가 말해 오고 있는 바로 그 비밀을 나타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남편이신 그리스도, 아내인 교회, 머리이신 그리스도, 몸인 교회, 이것은 다른 세대에는 알려지지 아니하고 지금 신약 시대에만 완전하게 계시된 놀라운 비밀입니다.
물론 여기에 사용된 “비밀”이라는 단어가 이해하기 어려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비스런 어떤 존재이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로서의 비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찾아낼 수 없고 오직 신적 계시를 기다려야 하는 신성한 비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인 이 놀라운 진리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에게 처음으로 계시되었고, 그 다음에는 신약의 다른 사람들에게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은혜 경륜 속에서 이 위대한 진리를 고백하고 시인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관계의 배후에 있는 진리에 몰두하다가 부부간의 관계에 대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비밀의 차원에서부터 삶의 일상적인 일들로 내려와서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온 나라와 모든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도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인생에서 살아 남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리고 두 마음을 하나로 묶고 또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교회의 상호관계를 뚜렷이 드러내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달아야 합니다. ♠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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