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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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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성이란 무엇인가요?

불변성은 하나님이 신뢰할 수 있는 분임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품의 한 측면입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변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속성을 친히 정의하십니다: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말 3:6). 액면 그대로 보면 금욕적이거나 심지어 생명이 없는 신에 대한 묘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바로 이것이 그분이 여전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불변성의 무게 또는 중요성은 성경의 페이지에 스며들어 있으며 매일 그분과의 관계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 위대한 교리가 왜, 어디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생각해 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불변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불변성의 반대를 생각해 보세요. 성품이 변하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세요. 이 하나님은 기후나 상황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기준을 적용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세요.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주님을 따라 우르를 떠났을 때, 그는 편안한 시작과 달리 지형과 고난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위대한 민족과 위대한 이름에 대한 약속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은 우르에서 가나안까지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까지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보장합니다. 불변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일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변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신구약 성경에는 이 속성에 대한 증거가 가득합니다. 말라기에 나오는 명백한 말씀 외에도, 덜 명확하지만 하나님의 불변성을 부정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다른 말씀들이 있습니다: “옛적의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자가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 같은 자가 없느니라. 내가 처음부터 끝을 밝히 알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며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것이며 내가 나의 기뻐하는 모든 일을 이루리라 …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또한 그것을 이룰 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사 46:9-11).

선지서에서 시편으로 넘어가면 “애국자의 애가”[1]에서도 이러한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주께서는 지속하시겠고 참으로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아지리니 주께서 의복같이 그것들을 바꾸시면 그것들은 바뀔 것이나 주께서는 동일하시고 주의 햇수는 끝이 없으리이다”(시 102:26-27).

이 교리에 대한 신약의 증거는 가장 초기의 서신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오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데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 1:17). 주님의 형제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움직이고, 변하고, 심지어 잠시 사라지기도 하는 태양의 예를 사용합니다. 야고보는 “별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언하는 것 같습니다… 별들은 항상 움직이고 있지만 그분은 자신이나 자기 백성을 대할 때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2].

하나님이 변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회개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개념은 사무엘상 15:10-11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주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세워 왕이 되게 한 것으로 인해 슬퍼하노니.” 이 말씀과 이 장의 뒷부분에서 선지자가 말하는 내용 사이에 불일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한 이스라엘의 힘은 거짓말하지도 아니하고 회개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사람이 아니므로 회개할 만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니라”(삼상 15:29). 먼저, 개별 단어를 조사하기 전에 이 장이 전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지자는 신학적 일치를 고려하지 않고 대담하고 모순적인 진술을 하면서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장의 시작 부분(11절)에서 그는 국내 정책 실패의 아픔이 아니라 “죄인들의 반역에 대한 신성한 사랑의 슬픔”[3]을 강조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용어의 정의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삼상 15:11,29,35절에서 후회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동일합니다(창세기 6:6에서도 사용됨). 이는 정보가 포화된 시대에 무심코 지나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나단은 독자들이 우리의 후회와 하나님의 후회를 혼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는 “그분은 사람이 아니므로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나이다”(29절)라는 분명한 표현, 즉 같은 히브리어 단어이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회개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개는 그분의 본성이나 목적에 어떤 가변성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어떤 것도 회개하지 않으십니다.”[4] 이런 의미에서 회개(!j'n:(5162, 나함)는 회개할 자신의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실패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표현합니다.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분의 끊임없는 보살핌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일관되게 이루시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금방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자녀가 삶의 모든 면에서 일관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관해서는 차이가 없으며, 아마도 하나님의 불변성의 가장 위로가 되는 측면은 그분이 일관성 있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로마서 9-11장을 읽으면서 이 점을 생각해 보세요. 복잡한 내용은 제쳐두고,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의 일관성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록된 바, 시온에서 구출자가 나와 야곱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을 치워 버리리니 내가 그들의 죄들을 제거할 때에 이것이 그들을 향한 내 언약이니라”(롬 11:26-27). 언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2600여 년 전 예레미야가 말했을 때나 오늘날이나 동일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미래에 관한 그분의 말씀도 항상 동일합니다: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사 46:11).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