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통한 주님의 일
마가복음으로 가시겠습니다. 이번에는 마가복음 6장 7~14절을 열겠습니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50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이제 우리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주님께서 두번째 배를 타신 항해에 대해서 보게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항해가 32절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6장 45절에서 다시 항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항해의 마지막이 52절이 됩니다. 우리는 이 두번째 항해를 6장 전체를 통해서 보게 되겠습니다. 특히 6절을 첫 시작으로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고향에 계셨습니다. 그 향 사람들이 주님은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하면서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보고 이 사람들은 실족을 한 것입니다. 주변 동네로 가르치심을 다니셨습니다. 7절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삼으시는 몇가지 경우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1장 20절에서도 볼 수가 있고요. 그리고 3장 1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8장 1절에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9장 35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장 42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로 제자들을 부르셔서 뭔가를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는 전도를 하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후에는 세가지 다른 교훈을 받겠습니다.
먼저 바다 여행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첫번째는 이들이 전도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먼저 다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한 사람은 가룟유다라는 것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룟유다는 자기를 잘 가장했기 때문에 다름 제자들이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늘 이런 사람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보낸 목적이 무언지 먼저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3장 14,15절에서 이들에게 맡기신 임무를 볼 수 있습니다. 12제자를 세우신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주님과 함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권세를 가지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임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만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있게 되면 주님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은 사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리 가운데서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함께 있은 다음에는 전도를 하러 보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신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권세를 행사하는 것보다도 전도가 먼저라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늘 어떤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도 전도(말씀을 전하는 것)가 우선입니다. 왜 주님이 여행을 내보냈는가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 전도 여행은 이방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잃어버린 이스라엘에게 가는 전도였습니다. 여기에는 늘 말씀을 전하는데 적용되는 교훈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신 것을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권세, 즉 권능에 대해서는 두가지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누군가에게 받은 능력이라는 의미가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이 권세가 제자들이 갖고 있는 권세가 아니라 받은 권세라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셨으며 이 권세를 계속 행하도록 하십니다. 언제든지 능력이 필요할 때에는 사용할 수 있는 권세였습니다. 필요해서 나가게 될 때에는 그 권세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일어나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두번째는 그들이 어떤 원천을 가지고 나가는가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6장 8,9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팡이만 가지고 그리고 전대도, 돈도, 옷도 없습니다.
또 다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행지에 가서 거기서 누군가가 받아들이거든 거기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받아들이지 않거든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행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는 이 두 가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족함도 없을 것이고 또한 불만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전도한 전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12절에 보면 ‘그들이 전파하고’ 라고 했습니다. 13절을 보면 귀신을 좇아냈습니다. 또한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여러분 순서를 잘 보십시오. 먼저 전파했습니다. 그 다음에 병자를 낫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무를 주실 때 먼저 말씀을 전파하고 그 다음에 주신 능력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헤롯 왕이 듣고’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12명의 전도자가 이스라엘에 다녔습니다. 헤롯은 이 위대한 12명의 전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을 안 들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위대한 전도자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전했습니다. 전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교훈입니다. 바울이 말한 말을 주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전할 때 주의 할 것은 여러분을 전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인정받는 전도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헤롯왕이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전도에 대한 어떤 큰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전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30절을 봐주십시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사도들이 전파한 다음에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두 가지를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가만이 사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는 부름을 받아 보냄을 받은 사람의 뜻입니다. 사도는 부름 받은 사람이며, 제자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뜻입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고 난 다음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진리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침 받은 다음에 나가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가 먼저이고 사도가 그 다음입니다.
여기서 사도들이 잘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0절에서 두 가지를 잘못했습니다. 조금 전 제가 전도가 먼저고 권능을 행하는 것이 다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말한 것은 그들이 행한 것을 먼저 말하고 말씀을 전한 것을 나중에 말했습니다. 그들이 행한 기적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가르침을 나중에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붐을 일으키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그들이 기적을 행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고조시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기적을 행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순서를 바꾼 것입니다.
31절에서 이들이 행한 또 하나의 잘못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한 일을 말했습니다. 마치 자기들의 능력으로 행한 것처럼 말이죠. 마치 행한 그 힘이 자기들의 것인 것처럼 말이죠. 그들이 자기가 가진 능력이 주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주님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자기들이 행한 것을 낱낱이 고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들을 통해서 주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느냐 하면 계속 자기가 행한 일을 주님께 말할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말을 끊은 것입니다. 한국은 어쩌면 그렇습니까? 영국은 그렇습니다. 공휴일 날에,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고, 말하고, 계속 말합니다. 반복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기에 지칩니다. 우리가 뭔가를 좋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마치 제자들이 주님이 모르시는 것처럼 계속 주님께 말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가면 수천명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알겠습니다만 주님께서 뭔가를 준비하셨습니다. 여기에 5천명의 남자들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물론 여자와 아이의 수는 제외했습니다. 5천명을 먹이는 이 일에 대해서 세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나의 시간이 나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마 제자들은 이 5천명을 반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한적한 곳에서 쉬려고 했는데 가보니 바쁜 날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섬길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아주 조용한 저녁을 생각하고 준비할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방문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웃음을 뛸 것입니다. 웃음을 뛰어보자. 이것은 반기지 않은 손님입니다. 주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반기지 않는 손님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과 제자들간의 차이를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어딘가로 보내고 싶었습니다. 34절에 보시면 주님은 이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다고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기적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가르치시기만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직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님께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옮기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을 보내어 사먹게 해달라고 제자들이 주님께 요청했습니다.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양식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을 사러 보냅시다. 이것이 바로 그 요점입니다. 주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주님께 올 때 제자들이 한 말을 다시 생각하여 보십시오. 제자들은 자기가 한 것처럼 주님께 말씀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고 주님께 제자들이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할 수 있으니까 네가 먹이라. 너희들이 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번에도 해 보아라. 다시 해 보아라. 그리고 먹여 보아라.’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다그쳤습니다. 주님께서 이 자리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기적을 행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올무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올무에 빠지면 내가 중요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 교훈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없이도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포함시키지 않고서도 원하시는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택해서 그들에게 주님을 섬기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능력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게 되면 주님께서 상급을 또한 주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그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께 그들이 한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서 먹이리이까? 전할 때 주님께서 돈을 가져가라고 했습니까? 그들에게 돈이 필요없다고 하시며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백데나리온의 돈을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었겠습니까? 제자들은 ‘우리가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먹일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주님만이 갖고 계십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먹이셨는지를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우리들이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뗐습니다. 얼마나 걸린 지 모르겠습니다. 5천명 외에 아이와 여자들이 더 있었습니다. 적은 떡이 쪼개지고, 쪼개지고, 쪼개졌습니다. 아마 제자들이 놀랬을 것입니다. 아마 사람들도 놀랬을 것입니다. 누구의 능력입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나누어 주었습니까? 종들을 통해서 분배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교훈입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면 주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일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한번 반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도 동일합니다. 말씀이 교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집니다. 이 사람들은 제자들을 통해서 떡을 받았고 제자들은 주님을 통해서 떡을 받았습니다. 가르침이든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든 모본은 성령입니다.
여기 42절이 말하는 바를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배불리 먹고 아무도 주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더 많이 먹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각자가 배불리 먹었습니다.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얼마를 주어야 될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먹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각자가 얼마를 먹는지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양이 적은 사람도 양이 많은 사람도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준비해야 될지를 아시고 먹이신 다음에 열 두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도 각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아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영적인 필요를 주님께서 아시고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께로부터 필요한 양을 취하실 수 있습니다. 열 두 광주리가 남은 것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씩 열 두 제자에게 해당합니다. 처음에는 바구니에 차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다음에 남기신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강력한 기적이 아닙니까? 우리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르침도 주님께 의지해야 하고 전함도 주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천이고 제자들은 그저 말씀을 따라 순종한다는 것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왔습니다. 첫번째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사람들의 필요를 준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세번째 교훈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배타고 가게 하시고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들은 바다를 향해서 여행을 개시했습니다. 우리가 4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사정이 매우 다릅니다. 4장에서는 배가 잠길듯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6장에서는 배가 가라앉을 위험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문제는 4장과 매우 다릅니다. 여기는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의 진전에 관한 것이 핵심입니다. 4장의 문제는 위험에서 보호받는 것이었습니다. 4장에서의 문제는 진전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주님의 학교에서 진전을 배우지 못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시험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에 있어서 진전이 없는 것을 가르침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만큼 진전이 안 되는 것을 때때로 경험합니다. 우리는 늘 더딥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심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세가지 교훈을 얻기를 저는 바랍니다. 우리는 48절에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진전이 없는 것은 제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역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노를 열심히 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데도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일하지마는 얻지 못합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계속 일했습니다. 그들이 두 시간 만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할 분 아니라 일할 결심을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됨에 있어서 열심히 일하는 것 만으로 진전이 되는 것이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밤 사경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시간으로 말한다면
다른 두 복음서에서도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사를 보게 되면 매우 어두운 것을 걱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빛과 어두움을 대비시키는 복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왕국에 관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능력을 주님이 보이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괴로이 일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은 종의 복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속 일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도 하나의 아름다운 내용이 있습니다. 변화산 상에서 마가복음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옷이 어떤 세탁업자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옷을 표현할 때도 수고하는 세탁업자가 일하는 것을 표현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렇게 주님이 준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서도 이런 원리를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아내 애리슨의 일인데 오래 전에 블레든 팔레스라고 하는 거대한 집이 있습니다. 거기는 멀버라라고 하는 공작의 집입니다. 아주 거대하고 아름다운 궁전입니다. 이삼백개의 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청소할 창문이 많아서 싫소’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자기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마가는 늘 일하는 것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종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만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지나가실 때 ‘유령인가!’ 했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마가에게 이전에 이 정보를 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마가는 베드로가 물 위로 걸은 것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그 이야기는 쓰지 말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자기가 영광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자기가 언급되는 것을 싫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베드로가 마가에게 정보를 어떻게 주었는가를 보는 이유인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베드로가 한 위대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마가는 이 일도 저 일도 기록하기를 원했지만 베드로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배나 노가 없이도 물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50절에서 제자들이 하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심하라 내니’ 즉 영어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로 ‘I A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내니 안심하라’ 배로 오셨을 때 제자들이 놀랬습니다. 52절에서 왜 주님이 가르치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훈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진전을 이루고 싶으면 여러분의 배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에 있어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한 것에서 말이죠. 5천명을 먹이는 일에서 주님께서 이것을 가르치셨습니다. 52절에서 보면 아직도 제자들은 5천명을 먹인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했습니다. 떡 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두번째 이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먹이는 일에서 주님이 필요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이 항해에서 그들이 진전하고자 했으나 못함으로 주님이 필요한 것을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여러분의 배의 항해에서는 결코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52절에서 하신 말씀이 얼마나 두드러집니까!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딱딱해졌습니다. 앞에서 사람의 마음을 땅에 비유했었습니다. 딱딱한 땅에 뿌려진 말씀은 사람들이 복음을 순종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와 같이 딱딱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딱딱해지면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딱딱해지면 복음을 거절하지만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딱딱해지면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마치 마음이 딱딱해지면 축복을 받을 때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깨닫지 못했지만 주님이 역시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하게 때때로 마음이 둔해집니다. 주님이 안 계신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떤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주님이 이렇게 하셨구나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이런 의미라고 말을 하지만, 그 의미가 어떤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그 말의 의미를 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진전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배에 주님이 반드시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우는데 매우 더디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서 매우 은혜로운 가르침이 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우 더디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아주 은혜로운 교사이십니다. 아마 다른 교사였다면 우리를 벌써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계속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같이 닮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땅에 이르렀더니 사람들이 쇄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능력이 나가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전 지역에 축복이 퍼져나갔습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서 가르침을 받게 되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을 낫게 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이 사실을 마음에 둡시다. 이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를 통한 주님의 일인 것을 기억합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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