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성장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베드로전서 1장 1~13절까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지난 시간들을 통해서 마가복음에서 제자됨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그 편지를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입니다. 그 편지를 보기 전에 베드로의 배경을 잠시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과 21장을 통해서 볼 때 베드로는 요한의 아들이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에서 안드레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둘 다 어부였습니다. 또한 요한과 야고보라는 동업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일하게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던 분들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가버나움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장을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도보다도 베드로가 복음서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약 25회, 사도행전에서 18회 정도 언급이 됩니다. 약 43회 일들에 베드로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는 사도들의 대변자였습니다. 행동에 있어서 매우 재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똑똑한 머리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였다면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8절을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베드로전서가 왜 쓰여졌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시작하는 것은 흩어진 나그네에게 이 편지가 쓰여졌습니다. 1장 1절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으로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사도로서 구원받은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 1절에서 흩어진 나그네들이라는 언급을 쓴 이유가 그기에 있습니다. 이방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위해서 썼던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통해서 본다면 4가지 정도를 도출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으로부터의 고난이 두번째 이유였습니다. 이들 또한 복음을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또한 이방인 정부에 의해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순복하라 했습니다. 또한 장로로서 목자로서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의 5개 장에 구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는 매우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5장 13절을 보면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다로부터 바벨론에 포로 되어갔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바벨론에 있던 그 사람들도 흩어져 있었습니다. 아마 600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방정부였던 바벨론 정부하에 있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말을 통해서 볼 때 베드로는 아마 바벨론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의 몇 구절을 통해서 교훈을 받겠습니다.
1장 14절을 보게 되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니엘을 아시죠. 다니엘도 역시 바벨론에 있었습니다. 유다 왕자로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에서 그는 순종하는 자식과도 같은 그런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방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과 이 베드로전서는 어떤 모종의 연관성이 있습니다. 2장 12절에 보면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방세계에서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장 17절에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처럼 친구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바벨론 왕을 존경했습니다. 4장 12절에 보면 불 시험이라는 단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친구들이 풀무불 안에 들어간 사실을 아시죠. 5장 8절로 가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지운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이방세계에서 아주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던 사실을 하나의 모본으로 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의하여야 하는 한가지 사실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1장 14절에서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입니다. 2장 12절에서 이방세계에서 정직할 것을, 즉 선한 일을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2장 17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왕을 공경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장 12절에 볼 때 여러분도 불 시험을 통과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5장 8절을 통해서 볼 때 우는 사자를 마귀에 대한 경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통해서 베드로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집으로부터 흩어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집으로부터 이방세계로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이방 왕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환기하는 가운데 쓰고자 하는 사실입니다.
이 편지의 또 다른 특징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마치 이것은 애굽을 떠나 나온 이스라엘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로역정이라는 천국으로 가는 이야기를 알고 계시죠. 이 편지는 베드로의 천로역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질만 합니다. 이 편지는 이스라엘의 천로역정이라고 할만 합니다.
1장 4절을 보게 되면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또한 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이라고 하는 기업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멀리 있는 그 나라를 보고 바라면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역시 땅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나라이죠.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늘로의 여정을 갖고 있습니다. 1장 18,19절을 보게 되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유월절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스라엘이 양을 가졌듯이 우리도 동일하게 어린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2장 5절을 보게 되면 산돌 같이 신령한 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었던 성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2장 11절을 보게 되면 또한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을 통과하는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했듯이 그러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들의 목적은 이 세상의 마지막에 있습니다. 5장 10절에 보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영원한 영광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모두 그러합니다.
첫번째로 약속된 그 나라의 기업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어린양으로 말미암는 구속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을 예배할 성소가 있습니다. 네번째로 나그네로서 이 세상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 최종착지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베드로는 두가지 사실을 통하여 다시 마음 가운데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또한 세상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마치 아버지께서 원하는 길을 말이죠. 이 이방세계에서 마치 다니엘처럼 다니고 있음을 우리 속에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 이방인으로서 나그네로서 가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이방세계나 진배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기업이 있는 자들입니다. 스코틀랜드라 할지라도 저의 마음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기업을 위해서 이 세상을 지나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베드로전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세계에서 나그네 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종착지인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 베드로전서를 세 분류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1장 1절부터 2장 10절까지는 이방세계에 흩어진 유배당한 것 같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장 11절부터 4장 마지막 부분까지는 이방인 가운데 복음전도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5장에서는 목자들이 그의 양들에게 본을 보일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다시 음미해 보겠습니다. 이방세계에 흩어진 이러한 상황입니다. 2장 11절부터 4장 19절까지 이방인 가운데 복음전도자로서 말합니다. 또한 5장에서 그 목자들이 그의 양들에게 모본을 보일 것을 이야기합니다. 5장에서 보면 장로들은 양을 먹이는 자로 나옵니다. 이분들은 모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분들입니다. 또한 이분들은 모임을 다스리는 그러한 자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무리들 가운데 한 장로를 말하지 않고 복수의 장로를 말합니다. 1장으로 가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이 편지에 대한 소개 부분이라 할만합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이 편지에 관해서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그네인데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 영지에서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마치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려 흩어지듯이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 관하여는 두가지 종류의 씨뿌림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첫번째는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씨가 뿌려졌다면 여기서는 사람들이 흩뿌려졌습니다. 세상 가운데 그 사람들이 흩뿌려졌습니다. 누가 흩뿌렸습니까? 주님께서 흩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흩으신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흩뿌려진 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혼들이 구원받을 목적으로 사람들을 흩어 보냈습니다. 이 지역으로부터 오순절날 사람들이 올라왔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게 되면 많은 곳으로부터 사람들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이 지역들에 아마 복음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시아로부터, 갈라디아로부터 그 사람들은 뿌려졌습니다. 그곳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 집에 거하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집에 두기도 하십니다. 제가 스코틀랜드에 있는 것이나 여러분들이 한국에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주님께서 흩으신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분이 흩어 보낸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좀더 보실까요.
1장 3절에서 기업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는 기업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언급함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4절에서 기업에 관한 네 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첫번째 ‘썩지않고’는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가치를 잃어버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언젠가는 그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기업은 누가 만지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결코 쇠하지 않습니다. 또한 두번째 사실을 말합니다. ‘더럽지 않고’ 이것은 죄가 더럽게 못한다는 뜻입니다. 첫번째 썩지 않고 두번째 죄가 그것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꽃은 시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업은 시간이 시들게 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그것을 쇠락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결코 잃어버리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이것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형제 자매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쇠락하게 하는 세 가지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썩지 아니하고, 죄로부터 더럽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쇠하지 아니하는 이것은 하늘에 간직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접근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늘에 간직하신 것은 사탄이 만지지도 못합니다. 우리들의 기업은 완벽하게 간직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도 이것을 만지지도 못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사탄에 의해서 전혀 공격받은 수 없는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의 기업이 이와 같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또한 5절에서 언급하는 바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편지를 보면서 좀더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람들은 무언가를 세웁니다. 자세하게 쳐다 보아야 그 결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지라도 가까이 가면 흠결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을 잘 관찰해보면 굉장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눈꽃송이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결정체의 아름다움을 깊이 알 수 있습니다. 마치 현미경으로 보듯이 성경을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인 현미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깊은 아름다움을 깊이를 발견할 것입니다. 여기 5절에 굉장한 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들의 기업이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면 우리들 자신은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있습니다. 이 두 단어의 의미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간직했다는 것은 따로 두었다는 뜻입니다. 이미 우리의 기업은 다로 두어서 간직하여 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준비가 없다 할 만큼 완벽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비된 사실입니다. 이렇게 따로 둔 기업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즐기게 될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은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보호하심이라는 것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군대에서 보호함을 입는다’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2절입니다. 여기 보게 되면 주둔군에 의해서 보호함을 입게 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지킬새 라고 하는 말입니다. 간직했다는 말과 보호함을 입었다는 이 두 단어의 말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간직했다는 것은 따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보호함을 입었다는 것은 군대에서 보호함을 입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군대가 여러분을 보호하심을 아시겠습니까? 왜 우리들을 보호함을 입어야 될까요? 하늘에 있는 기업은 사탄이 만지지 못해도 우리들은 사탄이 만질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기업은 아무런 위험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스스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릴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군대를 준비하십니다. 여러분들로부터 영생을 뺏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의지하게 되면 영원히 보호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늘의 군대에서 보호를 받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그와 같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확실한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이 두 구절을 어떻게 요약하면 좋겠습니까? 4절은 우리들을 위해서 하늘에 간직하신 기업이 있습니다. 이 기업을 상속받기 위해서 우리들은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벽한 상황입니다.
7절과 8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우리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기록하는 것은 쉽지…. 우리들의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3,4,5절이 보호하심을 말한다면 6절 이하는 어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기뻐한다는 뜻은 뛸듯이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기뻐서 여기에서 뛰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가운데 뛸듯이 기뻐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뛸듯이 기뻐하면 크게 소란스러워지겠지요. 그러니 마음으로 뛸듯이 기뻐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마음 속으로 기뻐하면 그대로 앉아계시겠지요.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뛸듯이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어린이들이 뛰면서 즐거워하는 일을 보신적이 있지요. 그 행복함이 그들로 하여금 뛰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 큰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크게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 믿는 사람들은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뛸듯이 기뻐합니다. 그 어려움에 대한 네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베드로 사도가 말한 네 가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어려움은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통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여름이 지나가듯 지나갑니다. 바람이 흘러가듯 흘러가버립니다. 그와 같이 이 흐름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깐 근심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사도 베드로는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에 대한 두번째 상황입니다.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아! 이것은 반드시 받아야 되는 것이로구나. 여러분이 어려움이 왔을 때 이것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 어려움이 항상 없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실패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첫번째는 이 근심이 잠깐이요 두번째는 받지 않으면 안되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문제에 대해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발견하십니까? 그 문제가 여러분들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일손을 놓게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을 짓누르는 그러한 문제입니다. 어려운 문제이지요. 이것은 많이 일어나는 그러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지나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짓누르는 그러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시험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7절에 보면 뭔가 좋은 것이 옴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이 시련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 믿음의 시험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제 경력을 말했습니다만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있는 바를 시험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주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이지요. 우리들 마음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들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다가올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오는 그러한 존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앞에서 금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시련이 있을 때 여호와를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7절에서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여러분이 받은 상급입니다. 이 세 가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들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여러분들이 잘 통과했음을 의미합니다. 먼저 무엇보다도 이 고난을 통과하게 되면 칭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찬입니다.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칭찬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주님의 칭찬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또한 두번째는 영광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광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치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실입니다. 금보다 더 귀하다고 가치평가하는 것입니다. 이 시련을 겪었다는 그 사실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평가하십니다. 세번째는 존귀입니다. 여러분들이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성도들 가운데 있는 관유는 밖으로 나오도록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 여러분들이 가치 있다고 주님께서 평가하십니다. 이 통과를 얻게 되면 칭찬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가치없는 무엇이 아닙니다. 세상은 이것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을 주님께서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가치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받을 때 이 구절들을 통해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는 네 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8절을 통해서 다른 몇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어떻게 여러분들이 주님의 사랑하심을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아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 우리들의 사랑을 증명할까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어떤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서 아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사랑을 하는 것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그 사랑함을 나타내는 것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승리를 얻게 됩니다. 여기 보게 되면 “너희가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했습니다. 이것은 6절의 기쁨과는 또 다른 더 놀라운 기쁨입니다. 6절은 펄쩍 뛰는 그러한 즐거움이라면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그러한 즐거움입니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것을 뛸듯이 기쁜 것 보다 더 큰 즐거움을 말합니다. 너무 기쁘기 때문에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가운데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전적인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상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 위해서 여러분의 몸이 그곳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여러분은 서로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베드로도 이러한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문제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이분들은 가치로운 분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영적인 가치입니다.
7절에 예언하던 선지자들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알았습니다. 다가올 세대들에 관해서 미리 증거하였습니다. 미래에 특권을 받는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그들 자신에 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얻을 영광에 대해서 그들이 썼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보았다는 뜻이지요. 인류를 가장 특별한 방법으로 다루는 놀라운 시대입니다. 어떤 시대보다도 놀랍게 다루시는 그러한 시대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가장 놀라운 무리는 저희들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천사도 이것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천사들이 허리를 굽히고 위에서 쳐다보고 싶어하는 그러한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이 바라고자 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12절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기에 정말 적절한 존재인가를 그들은 보고 싶어합니다. 천사들은 그것을 단지 바라볼 뿐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몸이 그 교회에 속함으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존재들보다도 더 가치있는 존재가 바로 저희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게 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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