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로부터의 분리
앞서 말했던 교회의 배도는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그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모든 교파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극에 달하기 전에 주님께서 주님의 참된 신부인 교회를 친히 영접하시기 위해서 “공중에 임하실” 것입니다(살전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거기서 나온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질서와 계획 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문 밖으로 나가자.
히브리서 13장 10절부터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롬
배도의 도성 안에서는
배도의 도성 안에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성대하게 행해졌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영문 밖에서 배척 당하여,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성전이, 거기에서 행해지는 예배가 여전히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것이겠습니까?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배척했듯이, 오늘날의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주님의 신성과 동정녀 잉태와, 그분의 보혈의 구속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주님을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서 화려한 건축물 안에서 예배 의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참된 예배자는 종교의 화려함에 등을 돌리고 “그(주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능욕이며, 십자가는 수치와 부끄러움입니다. 바로 지금이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거절당하고 멸시당한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을 때인 것입니다.
분리에로의 부르심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이 말씀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분명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주님의 명령대로, 우리 자신을 이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하되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에서 하지 않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했다면, 우리가 떠난 이 모든 것으로 다시 돌아가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감있는 사도의 표현을 빌자면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갈
생명이 없는 종교와 그 조직에서 떠나는 것이 우리의 유용성을 감소시키겠습니까? 아닙니다. 순종하는 이에게 복된 용기가 주어지는 법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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