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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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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의 여자의 위치

 

이 마지막 날의 세상을 특징짓는 변화와 불법의 성향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이름하는 곳에도 급속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위치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원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내에서 여자가 목사가 된 것은 그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일하는 여자 설교자, 교사, 강사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자 장로들과 집사들도 있습니다. 여자들이 기도집회에서, 남자들이 앞에 있는데도 기도합니다. - 어떤 교회에서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자들이 공적으로 설교하는데 있어서 많은 남자들보다 더 뛰어난 은사를 지녔다고 해서, 설사 많은 축복이 뒤따랐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허락하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석에게 단순하게 명령하지 않고, 반석을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반석에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물이 나서 이스라엘 백성의 목마름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반석을 내리친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영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도 않았습니다(20:7~12). 주님 안의 자매들은 주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온전한 상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머리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16).

이 말씀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도 머리됨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자들은 이 신성한 명제 앞에 엎드려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에 대해서 논박하거나 논의하는 것은 합당치 못한 태도입니다.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남자는 그의 머리, 즉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여자는 그 머리, 즉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 11:10).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은 남편의 권세 아래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천사들에게 교훈이 됩니다. 여자의 긴 머리는 덮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는 것이나 깎는 것은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여성이 천사들의 목전에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서(천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주께서 분부하신 떡을 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여성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머리를 덮을 수 없단 말입니까? 유행이 무슨 소용입니까?

 

여성의 남성과의 관계

여자 없이 남자만 있을 수 없고, 남자 없이 여자만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지만, 또한 남자도 여자에게서 났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의지해야만 합니다. 만일 남자가 우월한 태도로 여자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 남자는 지식과 상식이 결여된 것입니다. 남자는 드러나는 일을, 책임을 맡는 일을 맡았고, 여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 조용하게 일하는 부분을 맡은 것입니다. 남자는 홀로 있어서는 안되고, 여자가 남자를 도와야만 합니다.

가정은 여성에게,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 영역에서 여성은 값진 역할을 하고, 최선의 유익을 가져옵니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양하고 돌보기를 주님께서 교회에게 하시듯 해야 합니다(5:22,23).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입니다.

 

여성의 공적인 사역에 관하여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여성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4:34,35). 말하다라고 번역된 희랍어는 이 장의 19,21,28,29,34, 35절에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번역이 각 절마다 말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서 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라도 여성이 언제 말하면 안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제한적인 규정을 싫어하는 일단의 사람들은 이 희랍어가 네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가지 뜻은 수다스럽게 말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은 여자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수다스럽게 말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한 해석입니다. 이런 해석은 이 장의 문맥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합리한 해석을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기에 일곱 가지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1) 66권의 성경이, 비록 그 가운데 여자가 한 말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모두 남자를 통해서 기록되었습니다.

(2)구약시대에 어떤 여자도 제사장으로 임명된 적이 없습니다.

(3) 여자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맡을 수 없었습니다.

(4) 주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 여자를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5) 신약성경에는 여자 복음 전도자, 여자 목사, 여자 교사(공적인 가르침을 맡은)가 없습니다.

(6) 성경에는 공적인 기사를 행하는 여자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7)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처음으로 여자들에게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 15 5절부터 9절을 보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공적인 증인 가운데 여자를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단순합니다.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더 연약한 그릇(벧전 3:7)인 여자에게는 공적인 증거나 책임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공적인 기도모임이나 공적인 예배에서 여자의 역할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기도와 하나님이 세우신 남녀간의 질서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남녀가 함께 모이는 공적인 기도의 모든 곳(각처)에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남자들이라는 말이 강조가 되었습니다. 즉 여자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남자들은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합니다. 여자들은 머리에 쓰고 잠잠해야 합니다. 남자에 관해서 말씀하신 후에 여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9~14). 여자들에게는 아담한 모습과 잠잠함과 순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피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교회가 모일 때에 여자들에게 예배나 기도에 어떤 종류의 참여도 허락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에 찬송을 부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형제들과 자매들은 그들의 찬양과 감사의 생각을 함께 노래합니다. 찬양할 때는 어떤 사람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모든 형제가 기도를 인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제가 나머지 형제 자매들의 기도를 인도한다면, 그의 기도가 끝이 났을 때 모든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은 형제들과 자매들 모두가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또 어떤 형제가 기도를 인도하고 잠잠하고 있던 형제 자매들은 또 다시 화답합니다. 아무런 기도소리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도 모든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자매들의 심령 속에서도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자도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금지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 9절부터 17절을 보십시오. 한나라는 이 경건한 여인은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주님 앞에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기도했고 그녀의 마음을 쏟아 놓았으며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다음 말씀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13).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들리게 기도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도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참된 기도입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자.

갈라디아서 3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의 실행이나 질서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가족 안에는 구원과 은혜를 누림에 있어서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두가, 남녀의 차이와 상관없이, 같은 성령, 같은 소망, 동일한 주님, 동일한 믿음, 동일한 침례,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만에서 다 하나이니라. 이 말씀은 그 외에 다른 뜻으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8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천사들이 이렇게 두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성전에서 그 사실을 공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가서 개인적으로 말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공적인 증인의 일을 맡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름이 고린도전서 15 5절부터 8절에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 36절부터 38-안나라는 여인은 구약의 질서에 속한 여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여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쇠퇴기에 일으킴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여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남자들에게 사적인 자리에서 전달되었습니다(4:14, 대하 34:22~28). 안나는 금식과 기도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섬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에 대하여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다수 대중이 있는 곳에서 공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그것은 허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개인들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 28,29-사마리아의 여인은 공적으로 설교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녀는 그 성의 사람들에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고 말하며 그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여자들도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와서 복음을 들으라고 초청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 14-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여자들이 기도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유대인의 관습은 그들이 남자들 앞에서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을 금지했을 것입니다. 여자들이 소리내어 기도하려면 여자들만 따로 모여서 해야 합니다. 스가라 12 10절부터 14절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그들은 한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삼상 1:13). 게다가 이 말씀은 교회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경우에 관한 것이고, 여자들의 잠잠함에 대한 가르침 또한 없었을 때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1 14절은 교회 시대에 교회에서의 행실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8 24절부터 28-브리스길라와 그의 남편 아굴라가 교사인 아볼로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들의 집에서 사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자매들도 집에서 남편들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1 9-빌립은 예언하는 네 명의 처녀 딸들을 두었습니다. 그 딸들은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여자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 합당치 못하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 역시 사적인 경우에만 다른 이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그들의 집에 방문했을 경우라든가 아니면 그들이 이웃을 방문했을 경우가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 3-여기에는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쓰던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는 말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하게 말했던 사람입니다(고전 14:34). 따라서 그 여인들로 하여금 단에 올라가서 설교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여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복음에 힘썼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집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다른 여인들을 방문하고 그들을 돕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또 여자에게 해당하는 영역 안에서 바울을 도왔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 17,18-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여기에서 말하는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의 말세에 있을 이스라엘의 기쁨과 축복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말하는 것에 관한 교회에 대한 가르침과는 관계없는 것입니다(고전 14:34,35).

 

여자들에게 합당한 일들

여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또 주님께 속한 이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8:2,3).

로마서 16 1절부터 If절에서 우리는 여자들이 교회에서 섬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그리스도의 종들을 돕고, 주님 안에서 많은 수고를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 5절부터 14절에서는 항상 간구의 기도를 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여인들이 있고, 아이들을 기르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들의 발을 씻고,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합니다.

디도서 2 3절부터 5절에서는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며, 그들의 모범이 되는 여인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은 여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일입니다. 자녀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아버지의 교육보다는 어머니가 인내로써 가르치는 일에 달려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회교국가에서, 그리고 그 외에 다른 곳에서, 여자는 다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정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돌보는 일이나 방문하는 일이나 반겨주는 일에 있어서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상당한 부분의 영역에 있어서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그 영역의 일에 있어서는 매우 서투릅니다. 그러나 여자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합당한 경우가 주어진다면, 남자에게 그의 영혼의 상태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예우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보다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여자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 즉 한 여인에게서 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자들이여, 무한한 지혜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 자리는 머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머리의 자리는 남자에게 부여된 자리이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해서 남자에게 책임이 있는 자리입니다. 공적인 자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자의 자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남자들의 자리를 침범함으로써 그 자리를 망가뜨리지 마십시오. 주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자의 권리에 대한 소리가 높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의 악한 징조이며 하나님을 향한 반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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