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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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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은사란 무엇인가?

 

방언을 하는 것은 약 60년간 여러 종류의 오순절파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해 왔으며 이것은 지난 15년 여 동안 천주교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많은 교파들의 여러 무리에 의해 채택되어 왔습니다. 방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환상과 육체의 전율감을 종종 수반하는 방언을, 믿는 자의 몸 안에서 나타나는 성령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의 경험이 구원의 증거라고까지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그리스도인의 효과적인 삶과 증거를 위해 능력을 특별히 부여받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반면에 방언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을 순전히 자연적인 근거를 지닌 심리적 현상의 하나로 믿거나 또는, 어떤 경우에는 귀신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하는 사람들의 진실성과 그리스도인적 성품을 의심하지는 않으면서도 방언 현상이 어떤 사람의 삶 가운데서 성령님이 활동하시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을뿐더러 성령님의 활동에 필요한 증거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재잘재잘 지껄임을 체험한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심각한 죄에 빠졌으며 심지어 지독히 나쁜 불신으로까지 빠졌습니다(따라서 방언 자체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이에 반해 방언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경건한 삶을 살면서 복음 전도의 면에 있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방언을 경험한 사람들 안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2류 그리스도인들로 취급하는 경향과 더불어 일종의 영적 교만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방언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고 그 경험을 열심히 추구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황홀경의 방언을 하는 현상이 꼭 기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방언 현상은 이교도 부족들과 강신술사들 이슬람교의 어떤 교파들, 기타 다른 여러 무리들 사이에서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사람들은 방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은사 중 하나로 전혀 간주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의지 여하에 따라 심리학적인 기교를 사용하여 일정 기간 동안 방언을 말하는 상태로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방언 현상은 때때로 순전히 지연적이고 심리적인 것으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해답은 항상 성서적인 것이 되어야지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한 개인의 체험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단지 세 책 안에만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방언이 교회의 주요 가르침이나 실행 사항 중의 하나가 아님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방언이 처음 언급되는 곳은 마가복음 16:17-20절 인데 여기에서 방언은 주님의 사도들이 전파하는 말씀을 확증하는 표적들 중의 하나로써 귀신을 쫓아내는 것, 뱀과 독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 병든 자를 고치는 것과 더불어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표적들은 사도들의 사역 기간 동안 여러 경우에서 실제로 성취되었지만 마가복음 16:17-20 안에는 그와 같은 기적들의 지속 기간이나 그 빈도에 관한 언급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방언이란 주제를 잘 설명하는 분명한 단락은 사도행전 2:1-1절 인데 이 때 믿는 자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문맥이 분명히 말하는 바는 이 방언이 실제의 언어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의 여러 나라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달하게 하는 능력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이 표적의 기적적인 성격은 듣는 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므로 베드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유대인들의 큰 무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이 기적적인 언어 능력의 동일한 표적은(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혼혈족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을 때(8:14-17), 그 다음에 이방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10:44-48),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례 요한을 간접적으로 따라다니던 에베소의 특별한 무리들이 처음으로 진짜 복음을 들었을 때(19:1-7) 주어졌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이것들 외에 방언에 관한 다른 언급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전술한 사항에서 중요한 점은 이 은사가 복음을 확증하는 하나의 표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말하는 자에게 그 매까지 알려지지 않은 실제의 인간의 언어로 그 복음을 말하는 기적적인 능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에 나오는 방언이란 단어가 모두 이상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깨닫는 것도 역시 중요한 점입니다. 따라서 방언이 황홀경에서 뜻을 알아들을 수 없이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 단어는 언제나 언어 또는 실제의 신체 발성 기관을 의미합니다.

방언이 언급된 서신서는 오직 고린도전서 밖에 없으며 이 서신서의 12, 13, 14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신약의 다른 교회에서는 방언이 사용되지 않았든지 또는 적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방언은 고린도 교회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로 나와 있으며 그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만이 그 특정 은사를 가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고전 12:28-30).

방언은 어느 정도 구경거리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은사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것을 불필요하게 과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회중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고전 14:2,5,9). 그래서 바울은 어떤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고 자 할 때 그 방언을 통역할 사람이 교회 안에 없으면 그 사람은 방언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고전 14:13, 28). 또 그는 이 방언의 은사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지 믿는 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4:22).

고린도전서의 방언에 관한 바울의 묘사와 가르침은 현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과 매우 현저한 대조를 이룹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적 방언의 은사가 이름은 같으나 실속은 현대의 방언과 전혀 다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은 방언도 그치고라는 바울의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고전 13:8). 방언은 말씀을 확증할 목적으로 주어진 성령님의 은사였기 때문에 그 용도가 다하면 철회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전파되는 사도들의 말을 지지할, 기록된 말씀이 없었던 사도 시대에는 방언의 은사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은 복음이 새로운 언어 그룹 내지 새로운 지역으로 처음 들어갈 때 특히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일단 완성되자 이 은사와 다른 기적적 은사들이 존재할 필요가 거의 또는 전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의 의미였다고 생각됩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10)

우리가 현재 소유한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특별한 표적들이 있어야 할 필요 내지 가치가 더 이상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성경을 믿고 순종하기만 한다면 성경은 그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전도출판사간 "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에서 -헨리 모리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