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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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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26. 20:08 구원을 받았습니까?

목자는 누구인가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50:6).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 왜 꼭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예수님 이후에 수많은 거짓 포도나무 즉 거짓 교회, 거짓 목자가 일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리라. 실제로 교회사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수많은 거짓 교회와 목자가 일어났던 사실을 교회사에서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이와같은 교회사를 볼 때 1900여 년 전에 예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해야만 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말씀하실 때 진실로라는 말씀을 자주 사용하셨던 바 이것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거짓말하는 거짓 목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아니한가? 이번에는 이와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참 목자 되셨던 예수님을 상고함으로 거짓 목자들은 어떤 모습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깨달음의 편의를 위해서 참 목자 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몇가지로 나누어 생각함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첫째로 참된 목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순종하셨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12:49).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예수님 자신의 의지나 뜻으로 인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인한 것이다. 그분의 이 세상 행적은 자신의 의지로 말미암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러 오신 것이니 그분의 모든 행동은 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5:8,9).

하나님의 종이요 교회 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관계없는 언행으로 양떼들을 실망시키는 금일 수많은 잘못된 목자들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씀인가!

필자는 어느 날 목회자와 대화 중 성경대로 순종해야 할 몇가지를 지적하면서 말할 때 자신의 입장과 교회의 전통과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보았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참된 종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가르쳐야만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에 대해서 잘 증거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가르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14:14).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 참된 종이겠거늘 오늘의 수많은 교인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하셨다고 증거하면 오히려 과거와 현재 죄만 해결되었고 앞으로의 죄는 회개와 노력을 통해서 해결된다는 거짓 가르침에 속아서 구원받지 못한 지옥 자식의 길을 가고 있지 아니한가?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고 눈물로 뉘우치고 돌아오기 보다는 여러가지 이유를 말하며 순종치 아니하면서 뻔뻔스럽게 부끄러워하지도 아니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 1절에 있는 대로 말씀이 곧 하나님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목자와 교인들은 이제 말씀 앞에 무릎을 끓고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금일 한국 교회의 어떤 교회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그러한 교회나 목자에게는 반드시 말씀의 권위가 분명히 세워져야만 할 것이다.

먼저 된 지도자들이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찌 양들이 따를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모든 양들의 모본이 되셨고, 목자들의 머리 곧 목자장이 되신 것이다(벧전 5:4).

둘째로 참된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사랑하는 목자이다.

예수님은 진실로 양들을 사랑하셨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앞에 있는 수천 명의 무리가 영적으로 굶주림은 물론 육적으로도 배고파 지친 상태에 있음을 보시고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집으로 돌려 보내셨음을 본다. 주님은 양떼를 진정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영,육을 돌아보신 것이다.

주님은 우물가의 불쌍한 여인( 4)을 친히 찾아 만나셨고, 나인성의 불쌍한 과부를 위로하시되 자식을 살리심으로 위로하셨다( 7). 주님은 길거리 거지나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셨다. 주님의 생애는 양떼를 사랑하시는 그 자체이셨다.

금일의 많은 거짓 목자들이 양떼를 사랑하기 보다는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편안과 안일한 길만을 걸어가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슬퍼하고 계실까?

양들 중에 살찌고 토실토실한 양은(힘있는 교인) 칭찬하고 아부하고, 마르고 병든 양(힘없고 나약한 교인)은 무관심하고 어느 때는 정죄하거나 저주해버리는 경우까지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목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경우들을 통해 교훈을 받고자 하는 것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목자는 자기를 먹이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먹이기 위하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1:12, 34:2).

셋째로 참된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폭력으로 다루지 아니하셨다.

주님은 의심하는 도마를 부드럽게 일깨우셨고(20:26), 누가 크냐 하고 다투는 제자들을 잘 타이르셨다(22:24) 일찍이 선한 목자의 예표가 되었던 야곱은 그 형 에서의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33:13,14)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양떼들이 폭력에 지쳐서 교회에 다니다가 쉬고 있는가?

연약한 양떼들을 하나님을 잘못 섬기면 당장에 저주를 받는 것 같은 두려움을 주어 폭력적으로 따르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들 중 곱게 길들여져 순종하면 잘 믿는 신자요 잘못을 지적하고 거역하면 믿음 없는 자요, 잘못된 신자로 규정하여 정죄하는 것이다.

오 독자여, 길거리에 나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시라. 상당한 사람들이 과거에 교회에 나아가다가 이와같은 이유로 상처입고 중단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성하여야 한다. 초림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상태가 말라기에 기록되어 있는바 지금은 심히 혼탁하여 말라기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다(1:6~).

너희는(목자)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34:4).

오늘날 은혜시대의 예수님은 폭력과 위협으로 불안하게 하고 순종케 하고 복 받기 위해서 헌금하게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저주받게 하는 폭력적 예수님이 결코 아닌 것은 네번째 말씀이 증거하고 있다.

넷째로 참된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참된 목자요 선한 목자이셨다. 그분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진정한 선한 목자의 중심은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양이 목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목자가양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양의 특성은 무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양에게는 공격용 뿔이나 물어뜯을 수 있는 이나 할 킬 수 있는 발톱이 없다. 빨리 달아날 수 있는 준족이 없다. 그는 멀리 볼 수 없으므로 적이 와도 미리 알고 피할 수도 없다. 사자나 곰이나 그보다 약한 짐승에게도 먹힐 수 밖에 없다. 양은 공격용이나 방어용 무기가 전혀 없으므로 적이 오면 그냥 축는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오늘날 사단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영혼들의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길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양에게 최대의 무기,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그들에게 목자가 있다는 것이다. 양을 사랑하고 양을 불쌍히 여기며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양을 이리나 사자로부터 보호하기를 각오한 참된 목자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양에게 유일한 소망이요 기쁨이요 방패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 창시자들이 양들의 목자로 자처하고 나섰지만 그들은 양들의 문제를 풀어주고 양들을 파멸로부터 건지기보다는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 하고 있다. 그리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한 징벌과 문책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인류 역사 6,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양떼들이 거짓 목자(종교)에 속아 두들겨 맞으며 유린당하며 왔는가? 금일의 기독교도 상당한 경우 세속 종교화 되지 아니하였는가? 여기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인들이 신앙생활에 힘이 없고 나약하며 갈등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책임에 앞서 목자들의 책임이다. 그들은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지 못한 양이다. 즉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대부분이다.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돌아온 양들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생활의 기초가 되는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목자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자신들을 사랑한 것을 몸소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위협에서 완전한 해방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2:14,15). 그들은 또한 모든 죄에서도 완전히 해방 받았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8:1,2). 왜냐하면 참 목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해결하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1:29).

그러므로 그들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영원한 천국의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슬퍼하기에 앞서 소망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벧전 1:3~8, 살전 4:13).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사

나를 구원하신 예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니

나에게 결코 두려움 없도다

세상의 무서운 풍랑도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하도다

참 목자 예수께서

천국에 계시니

나를 그곳에 인도하실 줄 믿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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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