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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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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4. 10:12 횃불/1978년

2장 사역으로서의 근로

 

근로의 원리에는 또 다른 일면이 있습니다. 다른 원리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그는 자신의 활동에 관해 담대하게 변호하면서 근로는 기독교계 내외를 막론하고 봉사 중에 가장 고상하고 보람있는 것으로 인정했고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모든 사상이나 조직에서 이러한 입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결코 견줄 수 없는 자가 부정적인 헌신과 희생적인 보살핌에 전심전력했습니다.

 

봉사와 상급

사도 바울은 그의 수고에 대해 댓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전 9:7). 사람은 수고의 댓가를 으레 기대합니다. 세상사람도 누군가 갈고 씨를 뿌렸으면 추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소(牛馬)도 돌보시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생을 내배려 두시겠습니까?

이제 사도 바울은 이것이 물질계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파종과 추수를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데 이용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입장에서 추수를 말한다는 것은 극히 합당합니다. 만약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고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는 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있다고 지적 했습니다.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을 위해 수고하는 종이 존경을 받아 마땅하며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성스러운 의무를 스스로 짊어졌습니다. 가르치는 장로는 배나 존경할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주님의 손이 되어 이제는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기까지 은사를 통해 쏟아 주어야 합니다. 그는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러나 일군들이 때때로 성도들의 풍요속에서 궁핍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쓰지 아니하는 특권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초석이 되는 진리를 가르치면서 더욱 담대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고전 9:15) 나는 나의 가르침에 대해 너희의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비록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긴다고 치더라도”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추호라도 댓가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이것이 사도 바울의 심정이었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아무도 그에게 보수를 주지 않았지만 그는 전해야 했습니다. 리차드 박스터가 결코 죽은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하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한 대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생애를 복음으로 불사르기에는 얼마나 크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했겠습니까? 흑암의 권세에서 그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파하도록 허락해 주신 자비와 긍휼! 이것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했던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순교를 당하기 위해 로마로 가는 배를 저어가던 유라굴로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동기였습니다.

 

주님에 대한 신뢰

그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로부터 도움 받기를 거절했고 오직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거저 일했습니다.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하여”(살전 2:9).

만약 내가 보수를 기대해서 복음을 전하면 나는 이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아무런 보장이 없을지라도 나에게 맡겨주신 직분이기 때문에 부득불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 직분은 스스로 포기하거나 태만할 수 없는 청지기 직분으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한결같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 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했노라”(살전 2:9). 바울은 그의 일행이 필요로 하는 바를 일체 다른 이에게 말하거나 요청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은 무척 컸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의 금 은 의복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살전 2:10). 데살로니가나 고린도에 있는 성도 중에 어느 누구도 바울이 욕심꾸러기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사도 바울을 따랐다면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가난해지셨던 우리의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든지 양식을 값 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2:7,8,10)고 본을 보이며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이 뭐가 나쁘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이 나태해질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분주한 일을 거들어 주기는커녕 더 분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게으른 손은 마귀의 연장이라는 말대로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합니다.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2).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분명한 뜻이며 이에 관해 변론하려는 자를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여기지는 말고 그들의 잘못되어 있는 점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선한 일에 낙심하지 마시고 꾸준하십시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78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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