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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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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6. 10:46 횃불/1979년

주 교사 샘터

46. 구원받은 애굽 사람과 멸망 당한 아말렉 사람

(삼상 30: 3-20 /삼하 1:1-15)

시글락은 블레셋 왕(27:6) 아기스가 다윗에게 준 성읍이었다(삼상 30:1). 시글락을 황폐시킨 것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간데 대한 보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신이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에 스스로 안전지책을 강구하여 시글락으로 내려 간 것이었다(27:1).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을 때에 아말렉은 양측에서 약탈을 서슴치 않았다(30:16). 만약 사울이 주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할 기회를 주셨을 때에(15장 참조) 철저하게 순종했더라면 다시금 이같은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 역시 이들 모두를 사로잡지 못했다(17). 역대상 4 41, 43절에 보면 그들 중에서 소수가 히스기야 왕 때에도 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6절에서 이들을 가리켜 여호와의 원수로 불리우고 있다. 출애굽기 17 16절에서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하셨던 말씀을 연상케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약해 있을 때마다 해치는 기회로 삼았다.

4절에서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울었던 사실이 여덟번이나 기록되어 있다(삼상 20:41, 30:4, 삼하 1:12, 3:32, 12:21, 13:36, 15:30, 18:33).

6절에서 다윗은 크게 준급하였다. 야곱은 결국 자신의 계획이나 잔꾀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에 ( 32:7)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그들은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2:15)고 말씀하고 있다.

7절에서 에봇은 제사장의 예복으로서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보석을 붙인 흉패가 있었다( 29:5). 이것은 하나님께 물을 때에 쓰여지곤 했다(23:6, 9-12).

11-15절에서 죽어가고 있는 애굽사람은 죄인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아말렉 사람의 노예였다(13). 그가 병들어 쓸모가 없게 되자 그 주인은 그를 버렸던 것이다. 그는 꼼짝없이 다윗에게 심판을 받는 것 외에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이는 그가 시글락을 멸망시키는데 협력한 까닭에서였다(14절과 골로새서 121절을 비교해 볼 것).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모형인 다윗은 그를 구출하여 먹이고 소생시켜 주었다.

이같은 은공을 입게 되자 그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다윗을 위하여 협력하며 섬기게 되었다(15).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을 위하여 섬기도록 하심에 있다.

13절에서 너는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서냐는 두 가지 질문을 보게 된다. 이것은 어떤 죄인에게도 극히 적절한 질문이다. 이 사람은 은휘치 아니하고 솔직히 대답했다. 첫째 물음에 대하여 나는 애굽 소년이요라고 대답했는데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있다.

둘째 질문에 대하여 아말렉 사람의 종이라고 대답했는데 아말렉은 사단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던 시글락을 불살랐던 범법자였다.

15절에서 그는 옛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확약을 다윗에게서 받았다. 우리 성도는 주님의 손에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보장을 받았다( 10:28)

사무엘하 1장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인 사실을 보게 된다. 그는 아말렉 사람이었고 누구에게 매여있는 종도 아니었다. 그는 적진 중에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이스라엘 진중에 있었다(3).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다윗이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아말렉 사람인 것을 숨기려 했다. 대화중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고(8), 13절에서 다시금 다윗이 너는 어디 사람이냐고 다그쳐 물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실토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더욱이 그가 앞서 살펴본 애굽 사람이나 다름 없이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의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 가지고 와서 다윗에 칭찬을 받으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10).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은 반면에 그는 형벌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무력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자신의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려는 사람이 여전히 있지 않은가?

*기억해 둘 말씀 / 1:21

 

(79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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