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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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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0. 13:02 횃불/1979년

사마리아 여

-미우라 아야꼬

성서에 나오는 여인 중에서 누가 제일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주저하지도 않고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의 여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헤에 저 사마리아 여인 말입니까?”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이 사마리아의 여인이란 보통 여인이 아닌 모양이다. 성서에 의하면 이 여인은 대낮 12 물을 길으러 갔다고 쓰여 있다. 그 시간은 그 당시 결코 물을 긷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 숨어서 물을 길어야 하는 눈길을 피해 사는 여인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셨다. 그리고 너의 남편을 가서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저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게 남편이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너에게는 원래 남편이 다섯 사람 있었지만 지금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다하고 정통을 찌르셨다.

성서에는 「지금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다」고 쓰여 있지만 도대체 어떤 관계의 남자였을까? 다른 여자의 남편인가 단순한 애인인가? 성서에 그것은 쓰여 있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다섯이나 남편이 있었다는 것은 불행했다기보다는 음탕했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더욱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면 그녀의 평판이 몹시 나빴을 것은 상상할 만하다. 다른 여자들이 물을 긷는 시간에 그녀가 나온다면 눈짓하고 쑥덕거리며 백안시(白眼視) 당할 것이 뻔하다.

이렇게 평판이 나쁜 여인을 좋다고 하니 남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도 평판이 나빴던 시절이 있었다(지금도 나쁠지 모르지만).

그때 나는 미혼이었다. 남자 친구가 몇 사람 있었다. 동거(同居)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이른바 육체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성 친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억측했는지 당사자인 나는 모른다. 다만 요부(妖婦)라는 별명을 지어준 사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평판이 좋기를 바라는 법이다. 나 자신 별로 자청해서 악명을 받고 싶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든 되는대로 되라는 황폐한 시기가 사람에 따라서는 있는 법이다. 나는 어느 한 사람과 소문이 나면 보라는 듯이 그 사람과 나란히 걸어 다니곤 했다. 평판의 대상이 동생이거나 제자였던 때도 있다. 세상의 평판이라는 것은 그토록 무책임한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알았다.

그것은 어쨌던 나에게는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남의 눈을 피하여 물을 길으러 가는 것 같은 순진한 점은 없었다. 당당하게 오히려 폭로하는 형이었으니 나쁜 소문이 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는 그래저래 평판이 나빴던 이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몹시 친근감을 느끼기조차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것처럼 보이면서 실로 마음이 좋은 주책바가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 자기 자신의 흐트러진 생활을 지적당하고 깜짝 놀라고선 자기가 물을 길으려 왔던 것도 잊어버리고 귀중한 물동이도 그대로 거기에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여러분, 와 보세요. 제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맞힌 사람이 있어요. 어쨌든 와서 보세요. 어쩌면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그렇게 떠들면서 다닌 것이다. 누구하고도 얼굴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숨어 살았었는데도 자기 자신의 음행을 스스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닌 것이다. 그리고 아직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어쩌면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하며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이 소문 나쁜 여인이 얼굴에 홍조(紅潮)를 띠면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짓을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하는 말에 흥미를 가졌다.

이 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몰라요

라고 충격적인 뉴스를 전하고 다녔으니 효과는 만점이었다. 사람들은 줄을 이어 예수님에게로 모여든 것이다.

여기를 읽으면 나는 이 사마리아의 여인이 아주 귀여워진다. 이런 주책스러운 경박함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일까?’

그 당시에 나는 아직도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지는 않았다. 1951 12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처럼

어쩌면 예수는 구세주 그리스도인지도 모른다

고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나는 어떤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의 마음은 갖가지로 흔들렸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고 의심하고 무신론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

(가엾게도 이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구나?)

하고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아직 확고한 확신을 못 가지면서 사람들에게 전도인을 모셔다 이야기를 듣자고 제의한 것이다.

군중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다. 사마리아의 여인의 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듯이 이 집회에도 권태를 느끼던 환자들이 줄을 이어 모여들었다. 누구 한 사람 신자는 없는데도 전도인을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집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성서가 몇 십 권이나 팔렸다.

결과적으로는 그 중에서 나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이 믿게 되었다. 제일 먼저 세례를 받겠다고 나선 사람은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전도인에게 거절당했다. 이 사람은 위 수술을 받은 50이 넘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자기 집은 대대로 불교지만 온 식구가 개종하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그 뒷 소식은 나는 모른다. 이 사람까지 넣어서 겨우  3,4개월 사이의 집회에서 세 사람의 신자가 탄생한 샘이 된다.

어쨌던 내가 병원 친구들에게 건 말은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어쩌면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릅니다.”

라고 하는 극히 애매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그 동네에서 온 많은 사마리아의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이 자기가 행한 일을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나 예수께서 이틀 동안 거기 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이제는 그대의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그분의 말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요.”

즉 군중은 예수를 믿기는 했으나 그녀의 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소문이 나쁜 여자였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한 것 확실하다. 그녀는 군중과 예수 사이에 선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잊혀지는 존재였다.

여기에 대해서 그녀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점이 내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제일 끌리는 점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비록 남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저 사람을 인도한 것은 나라든가 이 사람을 교회로 이끈 것은 바로 나라든가 음으로 양으로 자기의 공적을 헤아리기를 잊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가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 쓸데없는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사람들도 당신이 인도해서 당신 덕택으로 하면서 반가운 말을 해준다. 또 요즘은 당신의 강연을 듣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라든가 소설을 읽고는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는 편지를 받은 일도 많다. 위험하고 위험하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우리가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칭찬받는 것이다. 그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또 나 자신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준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나머지 지나치게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주()의 종은 설교에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는 구세주가 아니다. 구세주는 다만 한 사람 그리스도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 막아서지 않는 겸손한 증인이 되고 싶다.

 

(79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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