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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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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9. 07:16 횃불/1980년

사실(Facts), 믿음(Faith) 그리고 감정(Feelings)

 

사실! 믿음! 감정! 이 세가지 것은 우리 생활의 활력입니다. 우리가 이 세가지의 하나 하나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이 세가지를 그 자체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첫째로 두려고 하지만 그것은 마치 집의 기초를 세우기 전에 지붕을 먼저 지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른 순서는 사실, 믿음, 그 다음이 감정입니다. 사실(Facts)은 기초를 이루며, 믿음(Faith)은 사실 위에 세워지고, 감정(Feelings)은 맨 마지막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 사실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실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진실(true)입니다.

먼저 사실. 사실이란 무엇입니까? 사실이란 참된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둘 더하기 둘은 넷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수학적 사실이며 한국에서나 미국 혹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진실입니다. 이 공식은 수천년 전에도 진실이었고 수천년 후에도 진실일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그것을 진실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이세상에서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진실입니다.

사실이란 믿음이나 감정과는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당연히(in and of itself) 진실 입니다. 만일 그것이 진실(true)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가치는 그것의 주제에 달려있습니다.

둘째로는 믿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믿음은 성경의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11:6)라는 말씀과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믿음에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믿음은 시각과 같은데- 시각에도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시각을 가했다는 것을 아는 길은 당신이 무엇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사실 믿음의 진가는 대상에 있지, 믿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양()이 아니라 그 대상의 진가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숲을 지나 걸어서 냇가에 다달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거기에는 외나무다리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외나무 다리를 보면서 당신은 그 다리를 밟고 건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그 다리를 분명히 안전하게 건너던 것을 생각하고 그 다리를 믿기로 경정합니다. 당신이 그 외나무 다리 위로 한 발을 내 딛는 순간, 당신은 믿음을 실행으로 옮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만 당신이 다리를 안전하게 건너든지, 못 건너든지 하는 것은 그 다리에 달려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만일 그 다리가 썩어있었다면, 당신은 물 속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반면에 당신의 믿음이 적다 할지라도, 그 다리가 튼튼했다면, 당신은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진가는 그 대상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은 사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감정이란 바뀌기 쉬운 것입니다.

세번째로, 감정(Feelings)은 어떻습니까? 어디에서 이 감정은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감정이란 우리 안의 느낌들입니다. 사실과는 달리 감정은 자주 바뀔 수 있습니다. 하루는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 날에는 기가 죽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거나 상관없이, 그것은 사실을 바꾸어 놓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당신이 한 유명한 변호사 사무소로부터, 당신의 삼촌죠이씨가 돌아가셨고, 유물로 당신에게 2,000 달라를 남겼음을 통보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아마 당신은그렇지만, 그 돈이 내 돈이라는 것이 실감되지 않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돈의 소유주입니다. 당신에게 그 돈이 물려졌다는 것은 사실이며, 당신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그 돈은 당신 것입니다.

당신이 진찰을 받으러 의사한테 갖는데, 의사가 당신이 암에 걸렸다고 했다 합시다. 당신은나는 내 자신이 암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당신은 암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지 사실은 사실입니다.

이제 사실, 믿음, 그리고 감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어떻게 관계되는지 살려봅시다.  영적 부분에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 죄 그리고 구원에 대한 분명한 사실들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들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입니다. 이 사실들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렇게나 알 수 있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 일들을,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책으로써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는 길을 택할 수 있으며 혹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창조주와의 관계를 잃는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첫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불순종했었는지, 그 슬픈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떠났습니다. 성경은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2).

죄의 댓가는 죽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이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죄와 반항을 그대로 지나치거나 가볍게 대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성경에는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씌어있습니다(요일 4:10).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밖, 로마인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거대한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는 자신의 높은 이상 때문에 순교자처럼 죽으셨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의 죽으심을 불운한 참살로 보기도 하지만, 하나님 자신은 그의 말씀에서 왜 예수님이 죽으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그리스도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의 죽으심만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도 역시 사실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이 지상에서 모습을 나타내셨는데,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사도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그를 뵌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는····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고 명백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목적은 우리의 죄 가운데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안에서 우리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니 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실이며 빈(empty)무덤도 사실이며, 그의 부활도 사실입니다. 그의 사역은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근원으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죄 용서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여기에 믿음이 들어올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구원을 준비해 놓으셨지만 만일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실은 우리에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고, 이제 우리 쪽에서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사실을 단순히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인이 믿고 구원을 받을 때는 그는 하나님의 사실을 단순히 의뢰합니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사역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

역을 의뢰함으로써 구원 받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의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의 죄짐을 그분께 벗어드렸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8~9)여기에서 마음용에 있는 구원의 믿음은 생활에서 순종을 낳는다는 것을 언급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행합니다. 요한일서 2 3,4절에서 우리는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감정 같은 것은 들어앉을 자리가 없는 걸까요? 물론 있습니다. 감정은 우리의 생활에서 매우 명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딴일 당신이 당신의 믿음을 감정 위에 세우려고 노력한다면, 결과는 혼동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원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사실 쪽에서 보다는 자기들의 감정의 범위 안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느낌이나 어떤 흥분된 경험에 의해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감정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받을 때, 놀라운 느낌을 가집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밤 사이에도 바뀔 수 있는 당신의 감정에 의해서가 아닌, 영원하고도 바뀔 수 없는 하나님의 사실 위에 당신의 믿음을 두시기를 꼭 기억하십시오.

감정이란 왔다가 사라지는 사기꾼이네

나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네.

무가치하지 않은 것은 값진 믿음뿐이라오.

누가 움직일 차례일까요?

하나님을 알기 위해 나아오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바둑을 두는 것과 같은데-그것은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교대로 바둑을 옮기는 것입니다. 먼저 흑()이 옮겨집니다. 그리고 나서 백()이 움직이는데, 흑은 백이 옮겨질 때까지는 다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문제에서도 하나님은 벌써 움직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우리가 움직일 차례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움직일 때까지는 다시 움직이실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온 밤을 새워서라도 당신이 구원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해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나는 어떤 일을 해놓았다. 나는 너의 죄를 위하여 나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 주었다. 이제 그 사실을 믿고 그를 너의 구세주로 의지하는 것은 너의 차례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동안에는 당신이 그렇게 하는 순간은 하나님이 다시 움직이실 차례이며 그분은 당신이 고대하던 평안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먼저 당신이 믿으면 그 다음에 당신의 마음 안에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실을 알 수 있느냐구요? 그분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믿음을 그분의 사실 위에 두면, 당신은 믿는 자들에게 그분이 주시는 그 기쁨과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그렇게 생각한다또는그렇게 되길 바란다식의 구원관(救援觀)으로 일생을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구원받을 수 있으며 지금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고 되어 있습니다.

 

 (1980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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