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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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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5. 11:21 말씀 안으로

데이비드 밸런스

인류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떤 탐구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 주제에 관한 올바른 이해는 성령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에 관해서 물을 수 있는 큰 질문들에 답을 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물질주의는 거짓이다

세속 교육을 지배하는 진화론자와 같은 유물론자들은 물리적인 우주가 존재하는 전부라고 믿는다. 그들은 초자연적이거나 영적인 어떤 것의 존재를 부정한다. 따라서 그들은 “일원론적” 즉 전적으로 하나의 물질, 물질로 구성된 존재로 간주한다. 그들에게 인간은 단지 화합물과 전기적인 자극의 흥미로운 집합체일 뿐이다. 이 견해가 정확하다면 인간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형태에서 유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동물과 다르게 볼 논리적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동물 권리 운동가들은 이러한 점을 포착했고, 모든 의식이 있는 존재들은 동등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생명이 다만 화학적 성질에 불과하다면 식물보다 의식 있는 존재를 더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질주의가 참일 경우에, 어떤 형태의 생명도 정당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인간의 생명이 단지 분자들의 우연한 결합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존재는 지적인 설계나 궁극적인 목적이 없는 우연한 변종일 것이며, 만약 우리가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지 않는 경우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다. 앨버트 카무스와 장 파울 사르트르같은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은 자유롭게 이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본주의 철학자들은 이 난파선 세상 관점에서 인간의 가치를 살려내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빈 모자에서 흰 토끼를 잡아당기는 마술사처럼 그들은 모두가 믿어야 할 무언가로 인간의 존엄성을 계속 주장한다. 그러나 이 환상은 아무도 속여서는 안된다 – 당신은 단순한 원자에서 인간적인 중요성을 찾아낼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한다. 즉시 우리는 비물리적인 존재가 우주의 밖에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 존재는 -삼위일체 하나님- 영이시다(요 4:24). 아버지, 아들과 성령은 시간보다 이전에 계시고, 공간을 초월하시고 물질과 구별되신다. 이제 하나님이 본래의 진정한 인격이시고 그분이 영이시라면, 인격은 주로 육체적 실제가 아니라 영적 실재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영, 혼과 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그분의 창조한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물리적인 것 너머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2:7에는 인간의 생명의 영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요소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첫번째 어구는 하나님께서 “흙”에서 만들어졌던 아담의 몸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이 그 시점에서 아직 살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다만 미생물과 식물처럼 그의 몸이 생물학적인 생명을 가졌고 개인적인 세포들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담 그 자신은 아직 살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단지 세포와 장기의 생화학적인 활동의 최종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결론짓는다. 대신에, 첫 사람 아담의 진정한 생명은 그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았을 때 영적인 생명이 주어졌고 그가 살아있는 혼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 시점에서 아담은 완전히 살아 있고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별적인 몸의 세포들은 죽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비물질적인 혼의 생명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담은 나중에 930살에 죽었다. 그의 죄 때문에 그의 생화학적 생명은 끝나고 생명 없는 흙으로 돌려보내졌다(창 5:5). 그러나 그의 비물질적인 자아는 다른 영역으로 떠났고 계속 살았다(창 35:18). 다가오는 시대를 통하여 그의 자손들도 또한 죽을 것이고 그에게로 모일 것이다(창 25:8).

 

더 나아가서 창세기 2:7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비물질적 자아를 창조하기 위하여 영과 혼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융합시켰다는 것을 암시한다. 첫째로, “생명의 숨”(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숨)은 아담을 영으로 만들었다 – 하나님 자신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 “영”에 대한 주요 성경단어(히브리어 루아흐 헬라어 프뉴마)는 “바람” 또는 “호흡”을 의미한다. 바람은 우리의 물질 세상에서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한 가장 가까운 비유이다. 비록 보이지 않는 바람이기는 하지만 분명하게 실제로 있으며, 그래서 영고 그렇다(요 3:8). 따라서 영이신 하나님은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시니 아담에게 그분의 영(루아흐)이 공급되었다. 에스겔 37:9은 같은 그림을 그린다. 선지자는 회복된 몸을 소생시키기 위해 바람(루아흐)을 불러 그 몸들에 불어 오도록 말했다. 일단 이 몸들은 바람이나 영(루아흐)으로 채워지고 살아난다.

 

그러나 창세기 2:7은 그 마지막 구절에서 “살아있는 혼”에 두번째 비물리적인 요소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숨의 결과로 사람 그 자신은 숨쉬기를 시작했다. “혼”(히브리어 네페쉬, 헬라어 프쉬케)의 근본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는 사람”(일반적인 정의, “살아있는 창조물” 이것에서 파생)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숨이 아담에게 살아있는 영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아담의 살아있는 혼 즉 이제 내적 생명력에 의해 소유되고 살아있는 육체를 가진 피조물이 되게 했다. 성경은 이 비물질적인 혼 생명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두 가지의 물리적 현상 즉 호흡하는 행위와 (우리가 나중에 보겠지만) 피의 순환을 제공한다.

이 영과 혼 창세기 2:7에서 구별하기가 미묘하다. 그러나 자세한 성경적 계시는 이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비물질적인 자아가 거하고 살아있는 물질적인 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 비물질적인 자아에는 영과 혼이라는 두 가지의 뚜렷한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 바울은 우리의 체질에 관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진술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구절은 “당신의 영과 혼과 몸” 이 거룩함의 범위를 강조한. 바울의 관심은 믿는 자들이 거룩함을 얼마만큼 가지느냐가 아니라 거룩함을 가진 성도들이 그들의 구성에 어느 정도 도달해야 하는가이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성별해 주시기를 즉 그분의 거룩하게 하시는 일이 인간의 모든 부분에 미치도록 기도하면서 우리 인간 자아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모두 인용하는 독특한 단계를 취한다. 다음 기사에서 우리는 인간의 혼과 동물의 혼 사이에 큰 차이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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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