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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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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5. 11:18 말씀 안으로

데이비드 밸런스

혼은 자아를 의식한다

영과 같이 혼도 물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혼을 영과 몸 사이에 두고 혼을 우리의 영적인 구조의 “더 낮은” 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몸과 함께 혼을 밀접하게 연결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혼은 그 자체를 인식하고 추리하고 기억을 할 수 있다. 육체적인 두뇌와의 공유영역을 통해서, 혼은 신체적인 감각을 받고, 신체적인 행동을 지시한다. 예를 들어 혼은 먹고(레 7:20), 접촉하고(레 5:2; 22:6; 민 19:13), 맹세한다(레 5:4). 더욱이 혼은 감정의 전체적인 범위를 표시한다: 사랑하고(삼상 18:1), 미워하며(삼하 5:8), 기뻐하고(시 35:9), 슬퍼한다(마 26:38), 그리고 “낙담한다”(시 42:6).

 

우리가 혼이 먹고 만지고 맹세하는 것에 관해 읽을 때, 우리는 성경이 “혼”을 전 인격에 대한 제유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왜 혼을 그렇게 강조하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몸 보다는 오히려 사람 전체를 “살아있는 혼”이라고 칭하는가? 성령께서는 우리가 참되고 영속하는 사람이 보이는 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혼이라는 것을 참으로 이해하기를 우리에게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유물론 철학의 명백한 모순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책임을 혼에게 물으신다(레 5:15,17; 겔 18:4). 그것은 육체의 정욕에 굴복할 수 있고 그것에 반하여 싸울 수 있다(벧전 2:11). 반면에 믿는 혼은 인간의 영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눅 1:46). 그래서 혼은 선택을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을 “육의 몸”(프쉬키코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잃어버린 혼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기능을 막고 사람의 영을 억제하기 때문이다(고전 2:14; 약 3:15; 유 19). 실제로 그들은 아무 영이 없는 동물처럼 행동한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아무 의식이 없으며 영적인 진리를 파악할 수도 없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피조물의 안락에 빠지며, 순간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모든 정욕에 굴복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적인 생명(요 3:6)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그들의 새롭게 된 영은 이제 그들의 혼을 감독하고 혼적인 욕망을 제어한다(롬 6:12; 고전 9:27). 그들은 그들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걷는다(갈 5:16,22-23).

 

하나님은 우리의 혼을 원하시고, 우리는 그분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혼은 자신의 생각하는 삶을 책임질 것이다(빌 4:8). 그는 그리스도인 교리가 그의 마음을 강하게 하도록 허락할 것이며 모든 무가치한 생각을 배제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하면 우리의 혼이 순결을 유지할 것이다: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몸은 세상을 의식한다

하나님은 영과 혼이 물질적인 몸에 거하도록 설계하셨다. 우리는 몸의 감각 체계를 통해서 물리적 환경을 경험하며, 운동시스템을 통해 우리의 환경을 제어한다. 우리의 몸은 다른 물리적 존재와 관련이 있다. 비록 유물론자들이 몸은 완전한 인격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몸을 혼과 영이 소유하고 거하는 곳으로 본다. 죽음 후에 사람의 위치는 천국이나 지옥에서 그의 영과 혼의 위치이다. 몸은 흙으로 돌아간다(빌 1:23; 고후 5:8; 눅 16:22-23). 따라서 몸만으로는 사람이 아니고 영과 혼만으로는 사람이다.

 

몸이 인간의 가장 말초적이고 가장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은 육체를 인간의 온전함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본다. 현재 천국과 지옥은 육체가 없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히 12:23) 또는 “감옥에 있는 영들”(벧전 3:19). 이들은 불완전한 사람들 “벌거벗은” 혼들로서 그들의 몸들과 함께 마지막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고후 5:1-3). 구원을 받았거나 잃었거나, 남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몸, 혼과 영을 가진 완전한 사람으로 그들의 영원한 거처에 들어갈 것이다.

 

플라톤 같은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두개인들, 나중에 영지주의자들은 몸을 사악한 감옥으로 보았다. 실제로 그들은 몸이 혼을 오염시켜 혼이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가들에게 구원과 자유는 혼이 육신의 사슬과 물질적인 세상의 얽힘을 벗어날 때만 온다. 오늘날,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을 가르친다. 명상과 다른 수단을 통해 영적인 에너지를 활용하여 육체를 벗어나 육체를 능가하고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견해를 완전히 부정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셨을 때, 그분은 “매우 좋았다” – 그의 몸은 악하거나 타락하지 않았다. 죄악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육체적인 노쇠와 쇠약은 인간의 삶의 일부가 아니었을 것이다(창 2:17; 3:19,22; 롬 5:12). 성경은 죄가 몸을(빌 3:21) 손상시키고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가르치지만 결코 죄에 대해 몸을 탓하지는 않는다(마 15:19; 롬 1:28; 엡 2:3). 그러므로 구원은 몸에서 혼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하여 구원은 첫째로 혼과 영을 정결케 해야 한다. 미래에 구속은 “그분의 영광의 몸” 같이 되기 위하여 몸을 변화시킬 것이다(롬 8:23; 빌 3:21).

 

성경은 몸을 혼이 잉태될 때 입고, 죽을 때 벗고, 부활할 때 다시 입는 의복으로 간주한다. 바울은 또한 혼과 영을 위한 임시 거주의 장막으로 몸을 비유한다(고후 5:1,4). 언제든지 말뚝을 뽑아서 천막을 접을 수 있다. 그렇지만 휴거 때 우리는 장막을 영원한 집으로 바꿀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몸을 영원한 하늘의 몸으로 바꿀 것이다(고후 5:2).

 

바울이 현재 상태에 있는 우리의 몸을 “육의 몸”(프쉬키코스)으로 칭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로 혼을 위한 수단으로 몸을 설계하셨기 때문이다(고전 15:44). 우리의 몸은 “살아있는 혼”인 아담과 연관되어 있다(고전 15:45). 그들은 영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완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어느 날 부활 안에서 그들은 “생명을 주는 영”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영으로 구성된 몸(모순어법)이 아니라 영적인 몸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영의 지배를 받는 몸인 영적인 몸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의 몸이 혼의 생명을 표현하듯이 미래의 몸도 영의 생명을 표현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능력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의 몸은 이제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 하나님을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정부에게 “당신의 법에서 내 몸을 지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자는 자신이 몸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인 것을 알고 있다.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너희 몸과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우리는 마약 중독과 기타 건강에 해로운 습관에 우리의 몸을 내맡겨서는 안된다. 우리는 문신, 피어싱(구멍뚫기), 또는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성형 수술을 통해 우리의 몸을 개조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리를 결코 추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13).

 

결론적으로 우리의 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한다. 우리의 혼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 몸은 물리적인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세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각자가 하나의 의식을 가진 통일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죄는 우리의 전 존재를 파괴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의 전 자아를 정결케 하셨고 주장하셨으며 온전한 인간으로 우리를 완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움을 위해 이러한 진리를 계시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을 더욱 현명하게 섬길 수 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혼은 우리의 영의 지시에 응답하고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주 예수님을 공경하고 섬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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