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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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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1. 14:48 말씀 안으로

히 9:11-15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대신해 영원한 속죄를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를 구속하셔서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세우고 섬기게 하시며, 우리가 말씀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이 모두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보혈의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그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것은 믿는 자에게 주신 큰 복입니다. 

그분의 피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하는 놀라운 보혈의 능력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고 모임 교제들 속에 자주 언급되는 것들이기에 다시 복습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펴보겠습니다. 편의상 순서와 시간차가 있는 것처럼 말씀드릴지라도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할 것입니다.

속죄로 드려진 피(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구속)를 이루사(12절) 
성경에는 우리가 속죄를 받는다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속죄해야 할 처지의 죄인이었지 속죄를 받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이루신 속죄는 하나님의 모든 요구들을 충족시키고 하나님께서 만족해하셨습니다.
12절에 속죄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원어로 뤼트로시스 영어로는 redemption인데 구속으로 번역되었어야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속죄사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셔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속죄란 단어는 헬라어로 힐라스코마이라고 하며 이 속죄 단어가 신약성경에 여섯 번 나오는데 주로 화목제물이나 속죄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눅 18:13 세리가 기도하며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히 2:17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 원어로 속죄인 이 단어는 “구속”이 아닌 “화목(화해)”으로 번역되어야 했습니다. 
히 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 “속죄소”는 롬 3:25의 화목제물과 동일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말합니다. 
롬 3:25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요일 2:2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요일 4:10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 

이처럼 속죄를 나타내는 말들이 화목제물로 표현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실 때 만족하심으로 화목이 되는 것이지 우리가 화목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속죄는 우리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도록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또 죄를 미워하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속죄를 통하여 우리 대신 모든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 속죄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속죄)" 다시 말하면 오직 믿는 자를 위한 속죄제물로 예수님께서 피흘려 드려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 속죄하셨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흘리신 피가 너무 귀중하기에 보배로운 피라고 말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분의 피를 믿으라는 표현이 성경에서 발견하지 못합니다(킹제임스 계통 번역에 단 한 번 -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성경의 중심 흐름은 그분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속죄해 주셨다는 것이며 그리고 죽음에서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며 구원의 주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완전히 담당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 인생들을 멸하시지 않고 하나님 스스로 속죄의 길을 열어 주셔서 그분의 독생자를 우리 죄로 인한 속죄의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진노를 완전히 없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속죄하신 그 피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바라보실 때 죄없다고, 깨끗하다고, 의롭다고, 거룩하게 되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의롭게 하는 피(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13절)
[롬 5:9]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피 흘림은 목숨을 내어주었다는 증거이며, 또한 희생적인 제사가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대속의 피는 죄인을 의롭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믿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롭게 되었습니다.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죄사함을 받은 것과 동시적인 것이지만 보다 하나님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간 상태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은 우리의 죄가 제거되고 죄없는 깨끗한 상태로 돌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가 죄사함 받았다, 이제 깨끗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롭다고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인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는 뜻이기에 칭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롬 4:25 “예수님은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칭의를 보증하는 것은 우리 죄에 대한 형벌 즉 속죄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은 결과인 것입니다. 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하나님께서 죄없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삼일만에 우리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를 의로 여기신다(24절)고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만이 그 아들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시고 아들을 심판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도 아니요,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을 우리에게 전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라 죄를 알지 못하신 분이 우리 대신 피를 흘리신 희생 때문입니다. 

화목케 하는 피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15절)
[골 1:20-2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땅 아래 제외됨)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화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이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범죄한 사람은 이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기에 화목을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요일 2:2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4:10절에도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화목제물로 드려지신 예수님의 피를 근거로 하나님의 자비가 베풀어지게 되었는데 갈보리에서 속죄의 제물로 드려지신 그분의 피는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충족하고 만족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인한 희생을 만족해하셨고 희생을 치루신 그분을 믿는 자들을 받아 주시며 이제 원수되었던 그 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화목한 자가 아님)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미래에 어느 시점에 용서받는 그 무엇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피흘리신 그분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용서하셨기에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화해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으며 이제 우리는 그 화평 속에 편히 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화평 속에 쉴 수 있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완전히 속죄되고 의롭게 되고 화목케 된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양심을 깨끗케 하는 피(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14절)
예수님의 피흘리신 속죄로 의롭게 되고, 화목하게 되니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물이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양심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영광 앞에 나아가 섬길 수 없습니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죄없으시고 흠없는 분이 흘리신 그 피는 이제 우리의 양심까지도 깨끗이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신이 더럽고 부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죄를 씻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행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행실로 하나님 앞에 자녀의 흉내를 내면서도 마음 구석에는 여전히 죄로 더러워져 있는 자신을 늘 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행하는 것은 죽은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벌써 의로운 자로 인정되어 있음을 알뿐만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가 이미 죽은 행실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죄없는 사람은,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은 그 마음에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그렇게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엡 4: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깨끗한 상태로 선다는 것, 그분을 섬기고 경배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요 기쁨입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어느 제사장도 그렇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양심의 모든 더러운 것을 온전히 제거하고 하나님 존전에 아무 의심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완전케 하는 피(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15절하)
[히 10:11-14]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오른편에 영원히 앉으셨으며 우리는 영원히 온전케,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드리신 그 단번의 영원한 제사는 무한한 가치가 있으며 영광중에 그분은 영원히 앉으셨기에 우리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하십니다.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안전한 것은 그분께서 영원히 그 왕좌에 앉아계시기 때문이며 그분께서 우리를 주님 자신처럼 거룩케 하시고 완전하게 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는 죄에서 깨끗이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믿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반쯤 깨끗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부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완전케 하셨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탄이 더 이상 우리의 연약함을 송사하는 어떤 죄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제하며 섬기는데 어떤 방해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연약하고 부족한데가 많습니다. 연약에 빠져 스스로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혹시 부족한 이 죄인 예수님의 공로 힘입는다고 하면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바라보면 우리의 죄를 속죄하는데서부터 우리를 완전하게 하기까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 믿고서도 부족한 죄인이라면 예수님의 피흘림이 헛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피흘림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에 당당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를 도우시는 필요를 아뢸 수 있도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분의 피흘리심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속죄를 이뤄주셨고, 믿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칭의와 또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시고, 양심을 깨끗하게 하시고, 완전하게 하셔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는데 어디가 부족합니까? 속죄, 칭의, 화목, 깨끗한 양심, 완전케 됨 이 모두 중에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사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조금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셔서 교제하며 즐기던 그 완전한 모습으로 되돌려서 다시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그 사랑이 그 전부를 다 이루어 주셨고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죄에 빠진 우리의 구속(구원)을 완성해 주셨고, 현재는 부활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죄의 권세에서 우리가 이기는 삶의 구원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주님께서는 죄 자체에서 영원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죄와 상관없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히 10:19-22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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