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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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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7. 18:08 횃불/1989년

간음 중에 잡힌 여인

(요한복음 8:2-11)

윌리암 맥도날드

어느 날 이른 아침,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늘 하시던 대로 자기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군중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훼방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와서는 자기들의 숨은 동기는 위선으로 덮은 채 단지 그 여인을 간음 중에 있을 때 현장에서 붙잡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이 여인이 마땅히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부각(浮刻)시켰습니다( 20:10, 20:2). 그런 다음 그들은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결정을 내리시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의도하던 바는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만일 율법대로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분은 무정한 사람으로 드러나게 되며, 반면에 그녀를 놓아주라고 말씀하신다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되어, 어떻게 대답하시든지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훼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대답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쓰셨는지에 대해 갖가지의문이 제기되어 왔지만 사람들은 단지 추측만 할 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고발자(告發者)들은 예수님에게서 대답을 얻어내고자 더욱 재촉하며 연이어 예수님께 질문공세를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펴서 일어나시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혹은 똑같은 죄를 짓지 않는)사람이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그리고 그분은 다시 몸을 굽혀 땅 위에 무엇인가 계속 쓰셨습니다. 물론 그것이 어떠한 내용의 글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하며 또한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라고 해서 무언가 다른 점이라도 있었겠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젊은이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은 소리 없이 하나 둘씩 도망치듯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까요?

만일 우리가 이 사건을 가볍게 보아 넘긴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실제로는 그 여인이 범한 간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고 쉬 단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자행된 성적 차별입니다. 그들은 간음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무자비하게 공중(公衆)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간음을 혼자서 행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남자는 보호하고 조소와 비난과 책임을 모두 그 여인에게만 지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남자들의 일반적인 성향과 인간이 만든 법은 흔히 여자들을 불평등하게 다루어왔으며, 반면에 남자들은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도록 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서 간음을 행한 사람이 받는 형벌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자세히 주목해 보십시오. 그분은 여인을 송사하던 사람들에게 이번 경우에는 그 율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결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을 지지하셨으며 그 판결을 집행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인을 돌로 치라.” 이것은 매우 엄중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율법을 무시하거나 혹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셨다면 옳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율법을 준행하시는 분이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실제의 의미는 (간음을 범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똑 같은 죄를 범하였다면 그 사람 역시 돌로 맞아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 판결은 오직 동일한 죄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만 집행되어야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1절에서 그 여인이 예수님을 주님(Lord)”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말이 예수님께 대한 그 여인의 믿음의 고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실제로 저는 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께서 약속된 주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죄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시는 구주로서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진실로 돌이키고 그분을 믿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대답을 통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 이것은 은혜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것은 진리입니다. 주 예수님은 언제나 그분 자신의 말씀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처음 부분은 은혜요, 둘째 부분은 소금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구주께로 나아와 죄사함과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주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8:1). 주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이를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24). 요한복음 317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도 읽어보십시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분은 심지어 믿는 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생각이나 말 속에서, 혹은 행동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모르실까요? 물론 그 분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그분 자신의 완전한 표준이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뜻은 우리가 죄를 전혀 범치 않는 것입니다(요일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가서 죄를 조금만 지으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므로 어떠한 죄도 용납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1:13). 그래서 주님은 그녀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생활에 대한 전형(典型, ideal) -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 을 제시하셨습니다.

 

당신이 순종치 않는 삶을 살 때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만일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이 주제를 살펴보는 데에는 몇 가지 우리가 반드시 주지(周知)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믿기 전보다는 죄를 적게 범합니다.

[2] 그리스도인이 범죄한다고 해서 자기의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구원의 즐거움을 잃게 됩니다( 51:12), 하나님과의 자녀관계는 변함이 없으며 그는 여전히 아들의 신분을 소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깨어지고 따라서 행복한 가족정신은 사라져 버립니다.

[3] 믿는 자의 모든 죄값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주 예수님이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53:6).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는 다 장래에 속해있었으며, 그분은 이 모든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빚을 갚아 주셨으므로 우리는 또 다시 죄값을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 지불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4]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수 있다거나 죄를 범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는 자가 안전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믿는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죄의 빚이 모두 지불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이제는 결코 지옥으로 들어가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죄의 영향력자체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를 범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게 되는데 그것은 병이나 어떤 슬픔, 손실, 갑작스런 사고 혹은 심지어 죽음이라는 형태로 임할 수도 있습니다(고전 11:27-32).

[5] 믿는 자의 삶 속에 있는, 자백하지 않은 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고전 3:12-15).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보낸 시간들은 영원토록 낭비된 시간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가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하여 준비를 갖추고 계십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2 1절에서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변호사, lawer) 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믿는 자들을 위해 변호하시며모든 것을 내게로 돌리 십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죄를 번 한 믿는 자를 대신하시며 그 사람이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버리도록 하기 위해 계속 일하십니다( 28.13)

[7] 믿는 자가 자기의 죄를 자백하는 순간 그는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족정신은 회복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8]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하나님의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오십니다(고전 6:19). 성령님은 그에게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믿는 자는 나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라든가 혹은 마귀가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그에게 유혹에 대하여 안돼 라고 거절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가 맹렬히 유혹을 받는 순간에 주님을 부른다면 주님은 그에게 죄에 대 한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 18:10).

간음 중에 잡힌 여인에 관한 이야기 속에는 흥미있는 일면이 있습니다. 피고인이었던 그 여인은 천국에 가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녀를 고소하던 자들은(만일 그들이 후에 회개하지 않았다면) 지옥에 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언젠가 종교 지도자들에게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21:31)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 여인은 아마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잃어진 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대로 그녀의 영혼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 함을 받았습니다.

 

(1989 7,8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