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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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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4. 13:42 횃불/1989년

성령님의 역사(役事)

어네스트 타담

8. 성령님으로 드려지는 기도와 예배

이번 과에서는 믿는 자들에게 대한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기도와 예배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바울과 유다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표현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1] 부정적인 면에서

먼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이와같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14:1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는 거의 무한하시며, 성경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된 경우도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령, 광야에서의 하갈이나 요나서에 나와 있는 이방 선원들의 경우).

또 성령님으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기도문을 외우는 것(Saying Prayers)과 다릅니다( 6:7).

 

[2] 긍정적인 면에서

이는 저(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8).

이 놀라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각 위()가 나타나 있습니다.

(both)”이라는 단어는 물론 아드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된,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나아감(access)” 이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호의를 통해 얻게된 출입의 자유를 뜻합니다』(Vine).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은 넓게 열려져 있으며 성령님은 그 문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고 그리스도께서 넓게 열어 놓으신 그 길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기를 잠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그 문이 열려진 데 대하여, 그리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그 어떤 방해물도 남아 있지 않은 것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감사를 드렸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 문을 통해 이르게 되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매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나는 열려있는 그 문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고 있는가? 나는 문 저편의 온갖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얼마나 맛보며 경험하고 있는가?

에스더 여왕은 왕의 부름이 없는 한 감히 자기 남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왕인 남편 앞에 나아가려고 담대한 마음으로 결정했을 때, 그녀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와 같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사랑을 즐길 수 있으며, 그분이 계시하신 모든 진리들을 점점 배워가게 됩니다』(H.P. 바커).

이제 우리의 기도와 성령님이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세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로마서 8 26,27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유명한 로마서 8장에는 믿는 자가자기를 대신해서 일하시는 위대하신 두 중재자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두 중재자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34) 지상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님이십니다(27).

죠오지 굿맨(George Goodman)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아마 우리는 기도생활에서 성령님의 은혜를 가장 필요로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라는 말씀을 분명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도생활에 있어서 마땅히 기도해야 할 바에 대해 무지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도 역시 연약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심으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원문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간구하시는 것을 가리키며, 주님이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간구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표현은 말씀의 의미를 매우 적절하게 보완해 주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의 간구는 우리 안에서(in us), 우리와 더불어(with us), 또한 우리를 위하여(for us) 드려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이와 같은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성령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소원은 간절한 열망이나 탄식및 눈물같은 것으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들은 표현키 어려운 마음의 어떠한 고통이나 동경입니다』(굿맨의 성령님께 이끌리는 생활”pp165,166).

이상에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유다서 20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성령으로 기도하며····유다는 마지막 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잘못된 가르침의 범람과 그 결과로 야기되는 혼란등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와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굳게 서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합니다.

성령님으로 기도하려면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와 말씀의 원칙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죄는 마땅히 자백하고 버려야 하며, 하나님 아버지 및 예수 그리스도와의 항상 밀접한 교제를 나누고 있어야 합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기도할 수 없으며, 이것에 관한 아름다운 예가 창세기 18 23-3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 명의 의인을 구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종종 비난을 받지만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만큼 여호와와 민감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세 번째 말씀은 에베소서 6 18절 말씀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이 말씀의 문맥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약하게 하고, 두려움을 갖게 하려는, 보이지 아니하는 원수들과의 영적인 싸움과 관계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싸움에 있어서 우리의무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모든 기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케 하고, 모든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령님으로 드려지는 기도란 마음 가운데 자백하지 않은 어떠한 죄도 가지고 있지 않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아버지께 드려지는 진지한 간청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 3:3. 우리말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로 나와 있음····역주).

이제 예배의 의미와 장소 그리고 그 능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배의 의미

예배란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찬양으로 넘쳐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찬양이나 감사 이상의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는 창세기 22 5절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한 독자(獨子)를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말할 때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는 아브라함이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듯, 우리에게 주어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묵상하면서 마음 속에 있는 최상의 기쁨과 감사를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2] 예배의 장소

이스라엘은 지상의 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물질적인 제사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장소는 이 지상의 어떤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존전, 휘장 안 쪽입니다( 10:19-22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또한 신약의 제사장인 모든 성도들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써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12:1, 13:15,16).

 

[3] 예배의 능력

예배는 화려한 의식, 고색창연한 교회 건물, 부드러운 음악 등과 같은 종교적인 분위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1989 10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