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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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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0. 15:26 횃불/1991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4)

그리스도의 신성

-시드니 멕스웰-

. 구약성경 및 복음서에서

 

웬만큼 성숙한 신자면 누구나 성경에는 교리적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진리들이 있다는 점에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본 주제는 교리적인 진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성경이 매우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9:5)고 표현한 그분의 모든 면을 고려할 때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위 케노시스 이론’(Kenosis theory ; Kenosis겸비(謙卑)’란 뜻의 헬라어임,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분의 신성(神性)은 접어둔 채 인성(人性)만 인정하는 이론-역주)은 주 예수님께서 신성에 속한 모든 속성에 대해 자기를 비우셨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교리의 형태든 아니면 찬송 가사의 한 부분이든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이론을 거부하고 그것을 성경의 명백한 진술을 정면으로 거스리는 주장으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본 논고의 목적은 말구유를 통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그분의 절대신성을 다시금 상고해보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신성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 즉 그분의 본질과 존재로 정의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매우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중대한 주제를 몇가지 간단한 소주제로 나눠 상고해보겠습니다.

 

그분의 신성의 진리

만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천국 소망의 모든 기초는 필경 무너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분께서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무 효력이 없는 것으로 취급될 것입니다. ()윌리암 길모어의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을진대, 그러나 죽으신 인자는 하나님이셨다는 표현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 기이하고 놀라운 사건을 묵상하며 엎드려 경배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속은 그 사실에 의존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분만이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담당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가리켜 자신의 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7). 우리 주님은 이 예언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확증하셨습니다( 26:31). 즉 예수님의 신성은 족장과( 49:24), 시편기자 및( 45:6, 110:1) 선지자( 7:14, 11:10)에 의해 확증되었습니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참조구절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곧이어 살펴보겠습니다.

그분의 신성의 칭호

시편 24 7~10절의 영광의 왕은 다름아닌 거절당한 땅으로 돌아오셔서 만군의 여호와로 인정을 받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구주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주저 없이 하나님께만 속한 칭호를 그분에게 부여하십니다( 59:5, 84:1,3,12). 시편 45편은 그리스도에게 왕의 칭호를 부여하는데 거기서 하나님은 그 왕을 가리켜 변함없고 다함 없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6). 시편 110 4절에서는 그분께 제사장의 칭호가 부여되었는데 이것은 새로운 질서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성자의 신성을 가르치는 근거로서 이 두 편의 시를 인용합니다( 1:8, 7:21). 추가적인 증거가 복음서에서 발견되는데 주님께서는 시편 110 1절을 그분 자신에 대해서 기록된 말씀으로 인용하셨습니다( 22:41~45, 12:41~44).

이사야서에는 빌라도가 사람이라고 묘사한( 19:5) 그분의 신성을 밝히 증거하는 일련의 칭호들이 있습니다. 6 3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란 칭호가 재차 부여됐고 7 14절에서는 징조와 아들로서, 그리고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밝혀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1 23절은 그 놀라운 이름의 뜻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은혜인지요! 베들레헴에 온 어린아이가 그분의 피조물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사야 9 6절에서는 태어난 아기”, “주신 아들로 묘사되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영존하신 아버지로 불리웠습니다. 주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 자체의 근원이 되신 영원하신 존재이십니다.

이사야 11 1절에서는 이새의 줄기라고 했는데 앞서 10절에서는 이새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인성에 있어서는 이새의 뿌리에서 나왔으나 신성에 있어서는 이새의 존재를 부여하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40 11절에서는 목자로 표현된 한편 열방에게는 하나님으로 선포되었습니다(9). 또한 다니엘 2 34절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로 묘사되었으며, 스가랴 13 7절에서는 여호와의 짝으로, 그리고 14 5절에서는 지상강림 시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알려질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게 그분의 신성을 계시한 표현들인지요!

 

그분의 신성에 대한 증거

이제 전권에 걸쳐 그분의 신성의 찬란한 광채로 빛나는 까닭에 때때로 황금 복음으로 불리우는 요한복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그분께서 이제 우리의 묵상을 위해 여기에 제시돼 있습니다. 1장에서는 삼위 하나님의 교제 속에서 말씀이 그분 자신의 독특한 인격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그 본질적인 신성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어서 만물이 그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했는데 이는 창조가 하나님 자신에게 말미암았음을 보여주는 이사야 37 16절에 비추어 볼 때 그분의 신성을 이론의 여지없이 명백히 선언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을 가리켜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1:15,17)고 증거했는데 이 구절은, 그분을 가리켜 신성의 충만을 담은 보고(寶庫)라고 한 16절 말씀에 비추어 분명 주 예수님의 신성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은 삼위 하나님은 그 똑같은 본질을 공유하고 계신 한 분을 통하지 않고는 계시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18).

그러면 그분의 신성에 대한 주님 자신의 증거는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주님은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8:24)고 말씀하심으로써 대적에게 자신의 신성을 밝히 증거하셨습니다. 잠시 후 같은 장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잡으러 왔을 때 다시 한번 그분은 내로라”(I am)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분의 신성에 압도당하여 어쩔 수 없이 경배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즉 영원토록 스스로 계신 분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그분은 크신 여호와 이레, 즉 하나님의 생명의 수여자와 보지자(保持者)(6:35), 빛의 수여자이십니다(8:12). 그분은 여호와로페카, 즉 우리의 치료자이십니다(9:5). 눈먼 사람에게 어떤 은혜가 임했습니까? 그분은 여호와 로히, 즉 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목자이십니다(10:11).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 가까이 이르셔서 여호와살롬으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 이 얼마나 베다니의 애도하는 가정에 큰 평강을 준 말씀이었겠습니까! 이 구절은 고린도전서 15 50~52절의 진리를 밝혀주는 명백한 참조구절입니다.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은 살아날 것이요, 살아있는 자들은 놀랍게도 결코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분의 신성의 증거들

또한 요한복음에는 말이 아닌 이적을 통해서 그분의 신성을 입증하는 실제 증거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분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혼인잔치 자리를 즐겁게 하셨습니다( 2:1~11). 여기서 우리는 신성의 한속성인 그분의 전능하심을 보게 됩니다. 6장에서는 많은 군중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으셨습니다. 9장에서는 소경을 고치셨으며 11장에서는 나사로를 살리 셨습니다.

이 밖에도 그분의 전지하심이 나타난 많은 대목이 있으며( 1:48,2:25, 4:18), 아울러 그분의 편재하심에 대한 증거들도 있습니다( 14:3, 18:20, 28:20).

이제 그분의 신성이란 이 중대한 주제에 대한 상고의 일부분을 마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첫 구절에서는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했고, 그 끝 부분에서는(20:28)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이 나오는데 이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실입니다. 모쪼록 우리도 이 놀라운 진리의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그분 발아래 엎드려, 그 갈보리 흔적을 영원토록 지니고 계실 그분께 경배드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주님 안에서 완전하게 표현되어

거룩한 신성의 충만으로

영원토록 빛을 발하도다!

-다음호에 계속

 

(1991 10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