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6. 13. 11:31 횃불/1992년

인생이란 무엇인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이여!-

허 윤 욱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필자는 장례식에 여러 번 참석한바 있다. 그때마다 관을 의탁하여 땅에 묻히는 시신을 보면서 인생의 여러 면들을 생각하곤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하며 아는 것도 많던 인생이 오늘은 어찌도 저렇게 얌전히 침묵하고 있는가? 참으로 인생은 무엇인가? 한줌의 흙 그것뿐인가? 이번에는 흙으로 성립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인생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인생은 흙으로 조직되었다. 어떤 잡지에서 몸을 성분분석 해본 결과 흙의 성분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쓴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흙을 사용하셨다. 또한 모든 짐승과 새와 식물까지도 흙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심지어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생명 없는 물건까지도 다 흙에서 나온 것들이 아닌가? 인간은 흙으로 조직되었다. 인간은 흙이다. 그러나 모든 다른 생물은 흙 속에 육체에 속한 생명만 넣어서 만들었지만 인간은 다르다.

하나님은 흙으로 만든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인격을 닮았음을 의미한다. 타락한 인간에게도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둘째로 인생은 흙을 먹고 산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흙을 먹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 밥상에 올라온 것 중에 흙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앞 단원에서 생각해 본대로 인간은 흙과 영으로 성립되어있다. 그러므로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의 양식이 있고 또한 영에게도 양식이 있다. 흙은 흙이니 흙에서 나온 것을 양식으로 먹으면 당연히 만족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적 만족만으로 족할 수 없다. 많은 인간들이 육체적으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독을 견디지 못하여 심지어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경우까지도 있지 아니한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흙으로 빚어진 육체에 양식이 있듯이 영혼에게도 양식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양식은 육에 속한 것이요 영의 양식은 영에 속한 것이다. 육의 양식은 땅에 속한 것이요 영의 양식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 라”(명기 8:3).

영의 양식은 무엇인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영의 양식이므로 겸손한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기뻐하고 만족해하며 변화가 일어난다.

 

셋째로 인생은 흙을 위해 산다. 우리 조상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계명을 받았다. 그것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는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6,17).

이 계명을 받은 아담 앞에는 두 길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따먹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계속 동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누리는 것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아담은 두번째 길, 즉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러면 선악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인간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길이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인생의 행복은 여지없이 깨어지게 되었다. 선악과를 포함한 모든 식물이다 땅에서 나왔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선악과 범죄 이후 인간은 흙을 위해서만 살게 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흙(선악과) 사이에서 흙을 택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의 삶은 흙에 속한 것으로만 채워지기 시작했다. 먹는 것도 흙이요, 사는 것도 흙이요, 추구하는 것도 바로 흙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이 다 흙에서 나왔으니 물질주의적인 인간의 삶이 흙을 위하여 사는 것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지적하시고 교훈하셨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27).

, 인생들이여! 언제까지 흙에 속한 썩는 양식만을 위하여 살겠는가?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나름대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한다. 그들은 피땀 흘리며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전 생애를 바치기도 한다. 그들은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간단히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어떠한 목적의 일도 땅에 속한, 즉 흙을 위한 것이요, 흙에 속한 어떤 일도 헛되고 무의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보고 세상에 속한 모든 선을 추구하였던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땅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합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 1:2~4).

, 독자들이여!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인간의 일들이 다 흙에 속한 일이요 헛된 일인 것을 깨달을지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임을 알기 바란다(전도서 2:11).

필자는 그대에게 성경 전도서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도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인생론이다(전도서 2:14~17, 6:1~12).

흙을 위하여 사는 인생!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도 여러번 지적하며 경고한 바 있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립보서 3:18,19).

이들의 신은 배요 배만 위해서 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종노릇 하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땅에 일만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 중에는 땅의 생각과 수준으로 하늘을 판단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하고 질문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들의 문화는 흙의 문화요 그들의 사상은 흙의 사상이요 그들의 수준은 흙의 수준뿐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나 하나님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헛된 삶으로 인생을 소비하는 자들이다. 모든 것에 하나님 없이 만들어진 행복이 도대체 참 행복일 수 없음을 아는가? 하나님 없이 사는 희락이 참 희락일 수 없음을 아는가?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도다”(전도서 2:2).

독자여, 진정 그대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그대의 삶이 흙을 위하여, 땅엣 것을 위하여 하나님 없이 살고 있었다면 다음 말씀을 주의하여 묵상하기 바란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넷째로 인생은 흙으로 돌아간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9).

필자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눈시울을 적실 때가 있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를 데려다 양육하였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친 혈육이 없음으로 친 자식 이상으로 사랑을 주며 키워왔다. 그의 모든 정성을 자식에게 쏟았다. 그 아이의 본래 성씨는 김씨였고 지금 양부모의 성은 박씨였다고 하자. 이 양부모는 오로지 이 자식을 사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온갖 정성을 다 쏟아 양육하였다. 이제 이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성장한 실력 있는 사회인으로 양육되었다. 물론 이 순간 양부모는 늙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청년은 자기의 친부모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사실을 알고는 수소문하여 친부모를 찾았고 냉정하게도 그는 생부모에게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실상이 그러한 것이다. 아무리 만류하고 사정하고 울어보아도 소용없이 가겠다는 것이다. 양부모는 할 수 없이 그를 보내면서 통곡할 수 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떠나는 날 양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박씨니 박씨로 돌아갈지니라

, 독자여! 무슨 뜻인지 아는가? 인생을 사랑하고 인생을 불쌍히 여기며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나 인생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이사야 1:2).

자식을 평생 양육하고 자식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양부모를 버리고 간 청년이 정죄받아 마땅하다면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그대는 정죄당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또 질문하시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있느냐”(말라기 1:6).

우리 조상 아담이 자신을 친히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흙을 택한 것이 아닌가? 금일에 수많은 인생들이 흙에 속하여 모든 쾌락과 정욕을 좇아 죄를 지으며 하나님을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 2:16,17).

사랑하는 그대여, 흙 속에서 헤매고 있는 그대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바란다 그대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새 생활로 전개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1992 12월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16)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