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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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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1. 12:02 횃불/1994년

속죄양이란 무엇인가?

허 윤 욱

 

신문 사설에 자주 등장하는 속죄양이란 단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듯하나 실제로 이 단어의 깊은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보기 힘든 것 같다.

이번에는 속죄양의 참 뜻을 새기면서 주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말은 두 단어가 중첩된 단어로서 속죄에 쓰이는 양이라고 풀어서 말할 수 있다.

속죄라는 단어는 죄를 용서한다”, “말살한다”, “덮는다는 뜻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을 때 해결받는 단어로 성경에서는 쓰이고 있다.

실제로 출애굽기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부터 등장하고 있다.

네가 7일 동안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리니”( 29:37).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단을 거룩케하기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제 드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해진 단에서 드리는 제사장들의 제사로 인하여 인간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구약에서는 인간들의 죄에 대한 하나심의 징계가 즉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와같은 제사를 통하여 그들의 죄가 용서됨으로 그들의 생명을 연장받았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셔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성막과 성막을 통한 예배와 및 속죄제를 드리는 법을 함께 일러 주신 것이다. 만약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만 주셨더라면 그들은 하나도 남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을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감사드릴 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지적하며 깨닫게 하는 율법을 주셨을 때 죄의 공포와 심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성막을 함께 주심으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나타내신 것이다.

, 독자여.

하나님의 공의 앞에 누가 감히 서리요, 그분의 심판 앞에서 인간이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담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을까를 잠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오늘날 어떤 기독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받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단은 율법을 지킴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율법의 내용을 교묘히 변형시켜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 예를 보면, 주일성수, 직분충성, 새벽 기도, 선행, 헌공, 교회생활 충성 둥이다. 이러한 행위들이 필요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정죄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 때문에 천국에 갈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안타까움이다.

물론 그들도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가 아니라고 말은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신앙생활은 변형된 율법에 붙잡혀 형편이 좋고 열심과 기쁨이 있을 때는 천국에 갈 것 같은 자신감이 있으나 형편이 나빠지거나 그 일로 인하여 교회 생활이라도 중단되면 당장에 지옥에 빠져버릴 수 밖에 없는 심정으로 불안해 하게 된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율법아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3:19).

율법은 왜 주셨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가지 재앙을 경험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하며 당당하게 애굽을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앞길에 고난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잊고 모세를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다. 하나님은 그러한 완악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여야 할 필요를 느끼셨다. 신약성경에서는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3:20, 7:7).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은 유대인들에게 죄를 용서받을 길을 가르치셨으니 이것이 곧 속죄 제사요, 여기에 사용된 양이 속죄양인 것이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 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과한 후 깨우침을 받거든····그가 만일 어린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 오려거든····”( 4:27~35)

어린양을 통하여 제사를 드린 사람들은 그 때 그 때 지은 죄를 용서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또 다시 죄를 범한다면 또 다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그러므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다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율법은 그림자요, 그 중에 제사는 더욱 그렇다. 그림자를 붙잡는 것이 허무한 일인 것처럼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율법적으로 믿고 있는가?

첫째는 도덕률에 매여 그들의 행위만 바라보고 낙심과 정죄와 두려움 가운데서 갈등하며 날마다 죄인인 자기를 들여다보고 하염없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이 이러한 것이려니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율법은 죄를 깨닫는 데까지만 필요하고 그 후에는 속죄 방법인 제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저들은 속죄 제사를 찾았으나 예수님과 구약의 제사를 쉬어서 믿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함을 믿기는 하나 구약에서처럼 자주 자주 죄를 회개(천국 가기 위해서)하여 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자주 자주 양의 제사를 드린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유월절 속죄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모든 죄를 해결하셨다(고전 5:7).

요한복음 19:30다 이루었다는 한마디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의 죄가 해결을 보았던 것이다. 죄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는 성소를 주께서 그 휘장을 갈라 놓으시므로 죄인이 성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길, 즉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영생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 장은 곧 저의(예수의) 육체니라”( 10:20).

, 독자여.

속죄양의 뜻이 인간의 지은 죄를 대신하여 양이 대신 죽어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신 것이라면, 당신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하여 완전한 인간되신 예수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양처럼 죽었는데 그대의 죄가 이미 다 해결되지 않았겠는가?

이제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그대의 죄를 위한 속죄양 예수님의 피를 단순히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피하는 것이다. 아멘.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3,19).

 

(199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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