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8. 21. 12:06 횃불/1994년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여

- 윌리암 오어 -

 

운동에 참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운동경기나 시합이나 대회나 다른 스포츠에 참가해도 좋습니까? , 물론입니다. 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은 운동을 함으로써 정직( 3:8)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고 청렴한 생활의 본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진짜 운동 정신을 발휘해 보여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을 주시되 신기하고 놀라운 구조로 된 몸을 주시고 아울러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포용성을 함께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건강한(딤전 4:8)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운동은 바로 이 목적을 이루는 최선의 방편입니다.

운동장에서도 교회당 안에서와 같이 꼭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축구를 할 때건 탁구를 할 때건 시편을 노래할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고전 3:20). 하나님은 우리가 농구경기를 할 때나 야구를 할 때나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나 기도를 드릴 때에나 늘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조심스럽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할 때나 최선을 다하여 자기의 능력을 발취할 것입니다. 학과공부를 할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우등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여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운동경기에 참예할 때는(우리가 직업선수이거나 학생이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고전 9:24~27) 이겨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사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께 존귀와 영광을 돌릴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운동을 목적(그리스도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고전 9:19~23)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얼에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몸을 단련해야 하고 둘째로는 운동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간증의 문을 여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때때로 운동을 그의 사곡한 사업의 일면을 덮는데 이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잘 기억할 것이고 결코 말려들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운동에 관한 문제가 있다면 기도해야( 4:6,7)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순수한 운동에다 내기, 일확천금, 상업주의, 인기지상주의와 같은 것을 도입해 들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운동 경기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일입니다.

우리는 몸을 단련시키고 마음을 수련하므로 그리스도를 위한 일에 지치는 일이 없이 어떤 어려움이 닥쳐 오더라도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운동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서 우리 생활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빼앗아간다면 물론 그 운동은(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해로운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약이 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1:18) 이것이 의심스럽거든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여보고 자신을 점검하여 보십시오. “이 운동으로 인하여 나의 성경 읽는 시간이 침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나의 기도 생활이 태만해지지나 않을까?”

내가 이 팀의 일원이 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 영혼에 대한 나의 관심,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대한 나의 열의가 식어지지나 않을까?”

이 어느 질문 가운데 하나라도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고, 따라서 그 운동은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이곳 지상에 유하시는 동안 집 안에서 보낸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항상 야외를 즐겨 찾으신 분이셨습니다. 주님의 33년은 거의 전부가 태초에 자신이 창조했던 산과( 5:1) 들과 골짜기가 아니면 물 가까이에서 보낸 생애였습니다.

산언덕은 예수님께서 제일 즐겨 택하신 강의실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교훈을 전하셨습니다. 하늘의 새, 바다의 고기, 들의 풀과 꽃이 모두 주님에게 설교 제목을 제공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인공적인 것에 의지해서 너무나 인공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야외의 넓은 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운동장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운동의 비유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시간이라는 대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달리기에다 비교하고 있습니다( 12:12). 양편에는 수많은 관중이 이 경기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힘껏 뛰라고 선수들에게 코치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벌어집니다. 모든 경주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 심판석 앞에 결승선이 있으니 그곳을 향하여 속도를 내어 뛰어가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경주를 할 때에는 눈의 촛점을 예수님께 맞추고( 3:13,14) 승자에게 주어질 면류관을(딤후 4:7,8) 생각하면서 힘있게 앞을 보고 뛰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의 운동경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 경주에서 주님께 마음을 고정시키고 한 눈 팔지 않고 곧장 목적지까지 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단은 갖은 간계와 구실과 궤변으로 우리의 앞에 방해를 놉니다. 사단을 바라보고 멍하니 서서 정신을 팔지 말고 저 운동장 끝 심판석에 계신 그리스도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힘있게 달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잘 뛰었다”( 25:21)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도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만 바라보고 뛰십시오. 지상의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썩어 없어질 상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승자와 같이 할 불후의 상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한편 최선을 다해 뛰어볼 만하지 않습니까?

 

(Dance)은 어떻습니까?

(Dance)이 전세계적으로 행하고 있으며 압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또 인격을 도야한다고 자처하는 많은 교육기관에서 춤을 널리 권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회에서까지도 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계 내에서도, 교육계에서도 춤을 반대하는 내용의 발언을 이제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내가 믿는 바를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춤은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활권 안으로 들여올 수가 없는 위험물입니다.

 

춤이 지니는 최대의 매력은 성(sex)이며 춤의 의도는 정욕을 불러 일으키고 자극하는 데에 있다는 것은 일말의 의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남녀간의 육적인 접촉을 없이하고 사람들이 춤을 춘다고 가정해 봅시다. 춤을 추려는 열기는 일주일이 채 못가서 사그러지고 말 것입니다. 여자는 여자와 춤을 추고 남자는 남자와 춤을 춘다면 누가 춤을 추려고 하겠습니까?

이 간단한 사실로 춤이 무엇을 밑바탕으로 하여 세워졌는지( 1:24)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집입니다(고전 6:19,20).

춤에 따라오는 여러가지들을 밝은 낮에 여러 사람 앞에 끌어다 놓고 공개하면 하나도 자랑스러워할 여지가 없는 것들입니다. 춤이 있는 곳에 술이 따르고 담배가 따르고, 불경한 말이 따릅니다. 댄스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행을 감추어 주자는 심산에서 업자들은 전등불을 희미하게 하거나 캄캄하게 합니다. 댄서로 하여금 모든 체면을 집어 던지고 마음껏 즐기게 해보자는 계산에서 빠른 음악을 틀어 줍니다. 색정적인 내용의 유행가를 틀어 줍니다. 모두가 육정과 음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너무 지나친 과장입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이런 곳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살전 5:22)

 

춤이 현재 일부 청년층에 매혹적인 마력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춤을 추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한 일인가 생각해보십시오.

춤은 정숙미를 해치고 불순한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인생에 오점을 남기며 많은 경우 추악하고 부도덕적인 행위로 유인합니다. 춤바람은 마귀의 바람이며( 6:22~29)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해해야 할 바람입니다.

춤이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고전 10:31) 돌리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3:1,2) 춤을 출 수 있을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춤을 인준해(고전 3:16) 주실까?

춤에 참가함으로 내가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주저없이 긍정적인 대답을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춤을 옹호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여러가지로 변호하고 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춤을 추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적지 않은 이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밝은 낮에 듣는다면 어처구니 없는 말로 들릴 이론들입니다. 춤은 좋은 운동이기 때문에 금해서는 안된다고 어떤이들은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웁니다.

성경 자체가 춤을 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춤은(삼하 6:14) 현대의 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춤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또 춤을 하면 외모가 우아해진다고 해서 춤을 묵인하고 권장합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배운 춤으로 생활의 순결이 많이 침해를 받을 것도 사실입니다. 뱀도 우아한 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스포츠 가운데는 춤보다 더 깨끗하고 정숙미가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이론은 사람들이다 춤을 추는데 어떻게 나만 빠질 수 있습니까?”라고 춤을 변호하고 나옵니다. 다같이 춤을 추는데 혼자만 빠지면 따돌림을 받게 된다는 호소 아닌 변명입니다. 따돌림( 16:2,3)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밖에 나오면 더 좋은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당신과 함께 있고, 또 당신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13:5) 당신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의문의 여지 없이, 자유스러운 기분으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길이 춤 말고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1994 4월호)

 

'횃불 > 199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하나님  (0) 2013.08.21
자매들의 질문에 답하여  (0) 2013.08.21
고부 사이의 갈등(2)  (0) 2013.08.21
하나님의 손길  (0) 2013.08.21
인물 중심 성경공부-베드로  (0) 2013.08.21
4월  (0) 2013.08.21
요한계시록 강해(15)  (0) 2013.08.21
속죄양이란 무엇인가?  (0) 2013.08.21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