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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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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제단의 음식

사려깊은 많은 독자들이 때때로 주요 헌물을 사복음서와 연결하려고 했으며, 화목제물은 24장에서 “화평”의 단어가 19개 정도 나오는 누가복음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거의 분명한 것 같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 남성과 여성, 남성과 여성, 남성과 여성의 반복되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스가랴와 엘리사벳, 요셉과 마리아, 시므온과 안나, 나아만과 사렙다 과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첫 장에 있으며 전체 복음서를 주의깊게 읽으면 화목제에서(레 3:1)와 같이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가진 부부가 더욱 많이 나타납니다.

 

다른 제물들과 마찬가지로 화목제물을 가져오는데 지켜지는 특정한 규정이 있었는데 소떼나 양떼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와 특성과 특징은 서론에서 언급했습니다. 다시 한번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 그는 말없는 그의 행동으로 자신의 제물과 동일시되었습니다. 제물과 함께 이 개인적인 동일시함은 필수 요구조건이었습니다. “주께 드리는 헌물을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레 7:30).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직접 동물을 사로잡은 후에 제단,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위한 관련 몫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피, 기름과 내장은 하나님의 몫이었고 이것들이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피는 제단 주변에 뿌려졌습니다. “뿌리다”는 아마도 너무나 가벼운 단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가 제단 곁에 실제로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제물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콩팥과 간 위의 꺼풀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 제단에 모두 태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묘사하고 있는지요!

 

피는 육체의 생명입니다. 제단에 피를 붓는 것은 죽기까지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치셨던 구세주의 아름다운 삶을 암시합니다.

 

기름은 제물의 바로 그 기력이며 제물의 풍부함과 건강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헌신하셨습니다! 그분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거룩한 섬김으로 끊임없이 수고하셨습니다.

 

내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숨겨진 감정, 동기, 애정과 생각은 하나님께만 아셨습니다. 아들의 소원은 항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어떤 사람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요 8:29).

 

간 위의 꺼풀은 아마 호흡이나 호흡의 조절과 관련되었던 횡격막(몸통-배와 가슴 사이)이었습니다. 구주의 일상 생활과 모든 호흡은 하나님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제단과 번제물에 태워지고 모두 함께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올라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 그분이 행하셨던 모든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미 제단을 만족시킨 자신들의 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제단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큰 특권이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제물의 가슴과 어깨로 즐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사장의 몫조차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그 가슴은 “흔든 가슴”으로 알려지고 또한 어깨는 “들어 올리는 뒷다리”로 알려졌습니다. 가슴은 주님 앞에서 의식적으로 좌우로 흔들었으며 그분의 눈은 제사장들이 먹어야 하는 그것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동물의 어깨도 위를 향해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눈에 의식적으로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잘 알려진 형식이거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는 가슴은 아버지께 기뻐하심이 되었고, 지금은 놀라운 은혜로 그분의 백성들이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또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요 5:20; 14:31)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깨는 힘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사셨고 지금은 그분의 백성들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변함없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어떤 연약함이나 흔들림이 없습니다. 결국 언젠가 지배권은 그분의 어깨에 있을 것이고(이사야 9:6) 그와 같은 강한 어깨에 올려져 그분께서 되찾으시는 모든 잃은 양들을 나르실 것입니다(눅 15:5). 얼마나 자주 우리는 “그분은 하실 수 있다”(빌 3:21; 딤후 1:12; 히 2:18; 7:25)는 그분에 관해 읽습니까? 아버지는 만족의 즐거움으로 그분의 사역의 시절 동안 그분의 종되신 아들의 지속적인 변함없음을 보셨고 지금은 우리는 동일하게 즐기게 될 것입니다.

 

제물의 남은 것은 봉헌자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들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제단과 제사장들이 이미 먹었던 그것으로 즐길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규정들이 있었습니다. 감사 제물이었던 경우 그것은 같은 날에 먹어야 했습니다. 감사는 영성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 아주 기초적인 실행입니다. 그것은 한 번에 처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물이 서원 제물이나 자원하는 제물이라면, 그러한 경우에 거기에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더 깊은 행사가 있고 다른 날이 허용되는 것으로 가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단에서 너무 멀리 있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식사가 일반적인 식사에 불과하고 혐오스러운 식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가까이 나를 두게 하소서”라고 잘 노래합니다. 우리의 실행이 하나님께서 가납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제단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화목제는 향기로운 냄새 제물의 마지막입니다, 이후에는 속건제물들의 세부사항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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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