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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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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피스

신선함

물이 풍부하지 않고는 열매나 향기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물이 있는 곳에서는 대개 하나님의 말씀의 그림이 있다. 흐르는 물을 발견하는 곳의 중요성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영과 연관되어 있다. 물난리가 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물의 물도 “생수”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을 위한 열매 생산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향기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태어나 성령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으로 봉해지고 성령으로 살아가고 성령으로 충만한다. 성령님은 우리의 개인 생활과 모임 생활에 필수적이다.

 

“동산의 샘”은 “생수의 샘”(렘 2:13, KJV)과 연결될 수 있으며, 아버지를 상징한다. “생수가 있는 우물”은 요한복음 4:14절과 같으며, “물이 있는 우물”은 아들과 관련이 있다. “레바논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생수의 강”(요 7:38, KJV)과 같아 성령을 부각시켰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역모임과 그 열매, 향기, 신선함에 기득권을 가지고 계신다. 찬양, 예배, 감사는 성령이 자유롭게 행할 때 나오는 신선함과 별개로 반복적이고 부실한 것이 될 수 있다.

 

향기와 교제를 위한 신부의 기도(4:16)

“오 북풍아, 깨어라. 너 남풍아, 오라” 이러한 바람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동산의 향기를 풍기게 한다. 북풍은 춥고 소나기가 오는 날씨를 말한다. 남풍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만약,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 그리고 집합적인 삶에서, 달콤한 냄새의 향기가 난다면, 우리는 번영의 바람뿐만 아니라 역경의 바람도 필요하다. 우리는 역경의 바람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종종 하나님이 우리의 개인과 집합적인 삶에서 가장 많이 받는 역경에 있다. 고통받는 교회인 서머나 교회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평가를 들으라, 하나님을 향해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빌 4:12, KJV)

 

주님은 또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응에 따라 우리를 벌하거나 훈련시킬 때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으신다.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그것이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KJV)

 

역경과 번영의 바람은 사도행전 8:1; 9:31절의 예루살렘 모임의 경험에서 볼 수 있다. “사울이 그(스데반)의 죽음에 동의하더라.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에 대한 큰 핍박이 있어서” “그때에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교회들이 두루 안식을 얻어 든든히 세워지고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위로 안에서 걸으며 크게 늘어나니라” 두 장의 차이와 다소의 사울의 회심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가!

 

향기에 대한 그녀의 요구에 따라 교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동산에 들어오사 자신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드시게 할지니라.” 그분의 임재를 요구하는 것이 지역모임 집회와 관련된 것인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것인지는 논의의 대상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두 가지 측면이 여기에 통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주님이 성도들의 모임에 임재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몫을 드리는데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결국 그것은 바로 그분의 것이다: “자신의 동산”과 “자신의 열매”는 이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즐겁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KJV). 그분의 임재의 감이 없거나 주님이 교회로부터 얻는 것이 거의 없거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면, 모임의 집회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친구들의 잔치를 위한 신랑의 임재(5:1)

신랑의 만족; 결혼의 행복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는 사랑하는 사람이 배우자에게 보내는 반응이다. 동산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사랑하는 이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네 개의 “나”와 아홉 개의 “나의”를 주목하라.

 

언젠가 어린양과 그의 신부인 교회의 결혼이 영광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은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천국을 떠날 것이다. 그분의 승리는 지상에 그분의 왕국이 세워지는 데 뒤따를 것이다. 1000년의 이 기간은 하늘의 신랑 신부의 결합에 이은 “환영” 또는 “만찬”이다. 신랑은 신부의 모든 결실을 누리게 될 것이고, 그녀는 우리 본문에서 대명사의 확산이 시사한 바와 같이 신부의 완전한 소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역 교회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고후 11:2, KJV)라고 쓰고 있다.

 

그녀의 동산에서 나온 물건들의 첫 번째 조합은 몰약과 향신료다. 몰약은 그리스도의 고통의 쓰라림을 말한다. 향신료는 그 향기를 전해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분은 갈보리의 고난을 회상하는 우리의 향기를 받으시고, 달지 않은 향기 제물, 죄와 속건제물을 상기시킨다.

 

그 다음 조합은 벌집과 꿀이며, 아마도 달콤한 향기 제물, 구운 것, 가루, 화평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 주님을 기억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세번째, 우리는 포도주와 젖의 조합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종종 기쁨과 성숙함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성숙한 성도들이 그분을 예배하고 경배할 때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기쁨을 상기시켜 주지 않을까? 젖은 그분이 느끼는 스릴을 잘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개종자들이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감사함과 경외심을 표현해 줄 때 그분이 얻는 감격을 잘 표현할 수 있다.

 

신랑 친구들의 만족, 천년지복

침례자 요한은 “신랑의 친구”(요 3:29, KJV)이다. 마태는 “혼인방 아이들”에 대해 말한다(마 9:15, KJV). 피로연이나 결혼 피로연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긴밀하게 관여할 것이다. 침례자 요한은 아마도 최고의 사람일 것이다. “혼인방은 신부의 침대가 들어 있는 방이다. 혼인방의 아이들은 신부의 친구로서 신부의 결혼식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W. E. Bine의 해설 사전)

 

신랑의 그 친구들은 먹고 마시라고 권한다. 그들은 축하연에서 함께 나누며 비록 신랑과 그의 신부만큼 가깝지는 않지만, “사랑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비슷하게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롬 11:28, KJV)라고 썼다.

 

주님은 내 인생의 동산에서 제 몫을 받으시는 걸까? 그분은 자신의 모임 즉 동산에서 만족을 얻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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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