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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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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조이스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는 이사야 53장의 처음 두 구절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마지막 종의 노래에서 이사야의 언어에 주목하세요: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라리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 53:1-2). 우리도 본받아야 할 그분의 삶을 지배한 네 가지 실재가 있습니다. 나의 제목은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도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2절의 “앞에서”라는 단어는 “얼굴” 또는 “임재”를 의미합니다. 종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자랐다는 생각은 심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얼굴을 느꼈습니다. 주 예수님은 항상 그분의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하나님과 함께 특별한 장소를 가졌습니다. 요한은 그분이 그곳에서 “아버지의 품속에”(요 1:18)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NLT는 이를 “하나님 자신이신 유일하신 분이 아버지의 마음에 가까이 계십니다.”라고 멋지게 표현합니다. 이곳은 진정으로 친밀하고 가까운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 가까이에서 살고 있나요?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나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께 온전히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접근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입니다. 일단 구원받으면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떠나지 않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는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라리니”(사 53:2)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하나님에게 그분은 갈색의 시든 죽음 한가운데 있는 연한 녹색의 새싹과 같았습니다. 그분의 삶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하나님에게 살아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여러모로 메마른 상태였습니다. 정치적으로 건조했습니다: 다윗 왕의 혈통이 로마의 통치로 대체되었습니다. 성경적으로도 메말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버려졌습니다. 도덕적으로 메말랐습니다: 경건한 남성과 고결한 여성이 부패하고 죄악된 행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영적으로도 메말랐습니다: 공허하고 황량했으며 하나님을 위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메마른 땅에 주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자라나신 것은 황량한 사막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은 기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식물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을 더욱 닮아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후 3:18).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원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공급으로부터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어디서 힘을 공급받으셨을까요? 그토록 적대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을까요? 그것은 주님을 둘러싸고 있던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성장과 생계와 힘의 원천은 오직 그분의 하나님에게서만 나왔습니다.

 

물론 연약한 식물은 그분 앞, 즉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있지 않는 한 약하고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는 약한 것이 강해집니다. 식물이 그분 앞에 있다면 땅이 마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임재로 그것을 지탱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요 4: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함으로써 지탱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는 모든 일에는 그분이 섬기는 분에 대한 가치와 영광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의 하나님과 아버지가 그분의 초점을 채우셨기 때문에 그분이 하는 모든 일이 그분의 하나님에 대한 예배 행위였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척박한 세상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분은 이 메마르고 공허한 황무지에서 여러분이 그분의 면전에서 연한 새싹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그분 안에서 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을 때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되느니라”(고후 12:9)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가치가 하나님의 가치라는 하나님의 원칙을 의식하며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의 위엄은 외적인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이 구절은 구주께서 이스라엘에 오신 방식이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전쟁에 강한 사람, 영향력이 크고 의미 있는 사람,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갖추셨지만, 겸손, 온유, 부드러움, 온화함, 친절, 동정심 등 하나님과 같은 성품들을 보여주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육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분을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하나님께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주 예수님을 매력적이지 않거나 깔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오히려 그분의 초점은 외적이고 지상의 세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가 될 자격을 갖춘 아름다운 내면의 특징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 아니면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 우리는 육체적, 외형적 외모에 열광하는 현재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집착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 쉽게 스며들어 우리의 영원한 초점을 잃을 정도로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가치가 우리의 가치가 되도록 하듯이, 우리는 주인이자 종이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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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