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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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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받은 세가지 시험

존 그란트

역대하 31:1~4

1 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3 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4 또 예루살렘에 거한 백성을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응식을 주어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한지라

역대하 32:1~3, 24~33

1 이 모든 충성된 일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취하고자 한지라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3 그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에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저희가 돕더라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매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 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32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 모든 선한 일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33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어제는 구약이 히스기야에게 어떻게 미쳤는가를 보았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왕이 가지고 있는 근심에 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축복이 점점 상실되어 갑니다. 이 사람들이 그 진리에서 계속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충성되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계속 순종했드랬습니다. 그 이후에 제자들이 매일매일 매주매주 매달매달 충성되게 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와 같이 백성들이 계속해서 영적인 부흥 가운데 있기를 원했습니다. 31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32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시험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히스기야가 받은 세가지 시험에 대해서도 보겠습니다. 첫번째 그는 적군이 접근함에 대한 시험을 받습니다. 두번째는 병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받습니다. 또한 세번째는 그 자신의 힘에 대해서 시험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그 능력에 대해서 시험을 받을 때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경우에 직면하는 어려운 시험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기 전에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섬김에 대해서 시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이 일어날 것을 반드시 기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학교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될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이미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가 아닌가를 시험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알고 있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옳은 것을 옳게 그 자리매김을 해야 합니다.

섬김의 반차를 정함

어제 유월절을 지키고 깨끗케 함을 보았습니다. 나머지 장에는 세가지 교훈을 배우게 되겠습니다. 첫번째 교훈은 31 2절에서 보게 되겠습니다.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을 반차를 정하고 그 직임에 맞게 행하도록 했습니다. 각 제사장들은 자신이 역할을 담당할 반차가 있었습니다. 또한 레위사람들도 그들의 할 일이 성전에서 정해졌습니다. 레위사람들은 일년 중에 반차가 되기까지 자기 집에서 거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집에 있으면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때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와서 성전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늘 성전에 남아서 일을 했습니다. 또한 특별한 때는 그들은 제물들을 드렸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모든 것에 질서를 놓았습니다. 이것은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 정해진 절차였습니다. 성경적인 질서를 따라 머무르는 것은 늘 선합니다. 히스기야는 다른 방식을 고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레위인들의 새로운 반차를 만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대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계속 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에 우리들이 어떻게 적용을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도 제사장으로 지속적으로 기능을 해야 합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또한 모든 믿는 사람들은 레위사람들처럼 섬길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하고 좋습니다. 2절에서 예외적인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2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주님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나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할 일이 없다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지역모임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아무도 주님의 일에 있어서 예외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히스기야는 성경대로 그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제물이 드려짐과 관리

또한 3절에서는 다른 것을 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제물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왕 자신도 좋은 모본을 보였습니다.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해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 제물의 목록이 5,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이 두 절에서 그 목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가져왔습니다. 첫 소산물과 포도주를 가져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소와 양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모두 제물들을 가져왔습니다. 이 주의 집에 대한 세가지 특징이 있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5절에 보면 풍성하게 가져왔습니다. 아주 신속하게 가져왔습니다. 또한 6절에서는 헌신적으로 가져왔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을 가져왔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적용시킨다면 주님을 가져 나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빨리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헌신된 마음에서 드렸습니다. 많은 제물이 모여졌습니다. 이들이 3월에까지 가져와서 7월에 쌓기를 마쳤다고 했습니다. 쌓는데 4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것은 매우 많이 축적된 제물이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제단에 가져갔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유지시키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사장직에 관한 교훈을 몇가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어떻게 양육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합당하게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입니다. 여기에 그 대답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드림으로 우리를 양육합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일을 고조시키고 고양시킵니다. 예배에서도 말이죠. 그래서 많은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쓰느냐 하는 질문이 나오겠습니다. 여기에 책임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으로 제사장직을 유지시키는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레위사람들에게 주어서 그 사람들이 일을 하게 하는데 쓰였을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에게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청지기 직분에 관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15절을 보면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많이 드려진 제물들을 다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에 포함된 그 숫자들이 흥미롭습니다. 13절에 보면 11절에 드려진 것을 일반적인 관리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제물을 관리하는데 7명이 임명되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다루는데 있어서 교훈 받을 네 가지가 있음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성경에 근거해서 이것이 모임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올바른 방법으로 개인이 행하는 것에 대해서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 사람이 다루지 않았다는 것을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것을 나누는데 책임을 함께 했습니다. 동일한 일이 모임에도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가르침에 관한 말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설명을 안 드려도 사도행전 6장에 일어난 일을 아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모임에 약간의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두 과부 사이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 과부들에게 모임이 공궤할 책임이 있었었습니다.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이 우리보다 물건을 많이 받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것에 대해서 일을 짰습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성령이 충만한 이 일을 다룰만한 7명을 택하자고 말합니다. 사도들을 가르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전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임에는 두가지 종류의 섬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두 용어가 같은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것을 공궤라고 말합니다. 모임 안에서 이와 같은 공궤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 돈 같은 물질을 드릴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임을 유지시키는데 그 돈을 쓸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성질상 여러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는데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꼭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이 본다면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부를 공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한 7명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받습니다. 모임에 드려진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는 영적인 능력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직업에서 매우 유능한 일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임 일에서는 영적인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6장에서는 영적인 7명의 사람들이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을 우리는 스데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주님께 헌신됨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모임에 많은 종류의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집회에 사람을 맞이하는 일이 있습니다. 재정을 돌보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편지에 대해서 책임을 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홀을 청소하는 책임을 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는 영적인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예사로운 일들이 아닙니다. 이것을 바로 히스기야가 했던 것입니다.

첫번째 시험(대적의 공격)

32장은 히스기야 앞에 놓인 시험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능을 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일곱명이 보고를 했습니다. 16절에 보게 되면 수종드는 섬김에 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17절에는 레위인들이 나옵니다. 여기에 가족들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에는 영적인 사람들이 관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 마지막에 보면 그 회중은 성결하고 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임에서는 아주 조용하고 일이 아주 매끄러워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것이 시험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시험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학교에서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을 바로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올바르게 바로 잡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한 왕 히스기야 마음 속에 고쳐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첫번째 시험은 적군이 공격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통치한지 14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한해 전에 북방 이스라엘에 큰 재난이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북방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모두 잡아갔습니다. 이제 앗수르왕이 유다를 침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앗수르 군이 유다를 휩쓸 것처럼 보입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적군들이 한 몇가지를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이 적군들이 여호와의 능력을 부인했습니다. 적군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얻은 승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이 너희의 신보다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승리를 얻지 못했다고 적군이 말을 합니다. 나의 기록은 매우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너희의 신은 능력이 없고 우리의 신은 능력이 있다고 적군이 말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의 수비를 견고케 했습니다. 13,14절을 보면 어떻게 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한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사단을 이와같이 지금도 말합니다. 세상의 이 위대한 업적들을 보라고 사단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사단을 말합니다. 이 큰 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느냐고 사단은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약하다고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힘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내가 하는 일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적군이 한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의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유대말로 유대인들을 낙담시키려고 소리를 쳤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18절에 보면 그는 유대의 말로 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이 겁을 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로 여러분에게 큰소리를 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이런 듯인데 성경을 가지고 믿지 않는 자들이 여러분에게 큰소리를 칠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시험했을 대 사탄은 성경을 사용했음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인용하지만 잘못되게 인용합니다. 여러분의 섬김을 낙담시키기 위해서 말이죠. 복음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전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복음을 여러분처럼 전해서는 안되고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그는 첫번째 기도집회를 가졌습니다. 누가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선지자 이사야 하고 기도를 먼저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20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적이 여러분을 공격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섬긴다면 말이죠.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준비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로 히스기야를 이기게 했습니다. 두가지 두드러진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적군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적군들이 없어졌습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열왕기하 19장에서 적군의 진에서 죽은 숫자를 볼 수 있습니다. 18 5천명이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숫자가 아닙니까? 왕의 적군은 우리가 너희보다 강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신은 너희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적군의 군사를 죽였습니다. 우리는 숫자적으로 모임의 성도들이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적보다도 강하십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힘은 숫자로 계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힘은 헌신된 성도들의 숫자로 가늠되는 것입니다. 숫자가 많은 것이 헌신됨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종종 이런 것을 보아왔습니다. 작은 모임들이 훨씬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승리를 얻은 것은 히스기야가 아니었습니다. 22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구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대적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히스기야 왕처럼 늘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의 믿음은 이겼습니다. 23절에 보면 왕이 예물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강한 왕임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왕국은 아직도 작고 적습니다. 겨우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으로 되어 있는 왕국이었습니다. 이 작은 왕국이 전세계에 강력한 왕국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 왕 때에 일어난 부흥의 결과였습니다.

두번째 시험(질병)

우리는 두번째 방법으로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의 병듦이었습니다. 24절에서 이것을 읽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이적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집에 가셔서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이적을 받게 되는데 해 그림자가 10도를 뒤로 물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이적이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아무도 이러한 이적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15년 동안 사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생각을 했겠습니까? 열왕기하에 보면 15년 동안을 연장시켜 주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앗수르 왕으로부터 너를 건지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적군들이 움직이는 것이 또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시험이 동시에 일어났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15년을 덤으로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15년을 구하지 말았어야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가 15년을 달라고 구했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안았다면 나쁜 아들이 태어나 유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텐데 하면서 말이죠. 그 아들은 나쁜 왕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그가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손상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15년을 구하지 말았어야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15년을 구한 이후 3년 만에 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만약 그가 만약 그가 병들지 않았다면 그의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15년을 받지 않고 죽었다면 왕위를 이어받을 아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족보에 유다의 왕들의 계보를 보실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이런 이유로 15년을 구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는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유다 왕위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나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쁜 왕의 아들 즉 히스기야의 손자는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시야였습니다. 35장을 보면 또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마지막 부흥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영적인 부흥을 바라고 15년을 구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한 이유로 이적을 구했다고 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도 주님께 이적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사야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올 때 이적을 구했는데 이사야 7장에서 히스기야 아버지의 구한 이적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아버지 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적들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구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왕에게 표적을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아버지는 이적 구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자신이 당신에게 이적을 직접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7 14절의 약속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앞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표적이구나! 이스라엘의 대적에게 대한 최종적인 승리의 표적이구나! 주님이 오실 때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것을 이해했습니다. 나쁜 왕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거절했지마는 선지자 이사야가 이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세번째 시험(, 능력)

세번째로 히스기야가 시험 받은 그의 힘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힘 즉 능력은 어떻게 시험 받겠습니까? 또한 모임의 힘도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25절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는 높아졌습니다. 그는 힘이 있어서 적이 패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힘이 있어서 구원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그의 힘을 시험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31절에 보면 일어난 일을 또 하나 볼 수 있습니다. 27절에 보면 그의 부가 나와 있습니다. 바벨론의 사자들이 히스기야에게 왔습니다. 이 때 바벨론은 세계에 힘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작은 나라였습니다. 사자들이 와서 히스기야에게 이적(그의 힘)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이 사자들에게 그의 보물 창고를 그만 보여주었습니다. 이 일은 바벨론 사람들이 그 보물을 갖기를 원하는 동기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열왕기하 20장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탐심을 불러 일으키는 단서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수년 후에 바벨론은 이 나라에 침공을 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슬픈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미래에 대해서 그가 재앙을 계획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임에서 그러한 계획을 해서는 안됩니다. 없어질 것의 씨앗을 모임에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산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이렇게 시험하십니다. 주님은 모임을 시험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입장을 알아야 합니다. 숫자가 적다는 것은 영적으로 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많은 숫자는 영적인 힘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영적인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 말씀에 실행에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현실적으로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확신하는데 그 힘의 원천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게 하십시다. 그의 섬김에 있어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보게 되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히스기야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묘실에 조차 장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장사를 보십시오.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장사 지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하고 달랐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것을 하나 보겠습니다. 영적인 생각 즉 추억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즉 남녀들에 있어서 영적인 좋은 추억거리를 남겼습니다. 선하고 달콤한 기억을 우리들에게 제공했습니다. 히스기야가 간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 그의 아들은 55년을 치리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왕 중에 가장 나쁘고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섰습니다. 우리는 다른 세대가 한 것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대에 일이 우리의 책임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분들의 모본을 갖기를 원합니다. 히스기야가 한 것처럼 주님을 섬기는데 큰 격려를 받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8 1 23 의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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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