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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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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승천

히브리서와 옥중 서신에서

 

히브리서를 주의 깊게 읽는 독자의 마음에 새겨지는 가장 깊은 인상은 영광 가운데 참 인간이 계시다는 점입니다. 그분의 영화롭게 된 인성은 그분께서 그 안에서 하나님 보좌에 오르신 승리의 수레였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주님의 죽음에서 나오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으나(13:20), 그분의 승천과 하늘에 들어가심에 대해서는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외함으로 상고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주제입니다. 그러면 히브리서와 바울의 옥중 서신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놀라운 진리를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죽음에서 나오심

그분은 죽음의 장소에서 나오셨습니다····우리 주 예수를····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13:20). 여기서 ····가운데서(from)(죽은 자)····밖으로(out of)란 뜻입니다. 그분은 분명 거기에서 나오기 위해 거기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것은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한 다소 난해한 구절(5:7)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제시되었습니다(그중 가장 이상한 것은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지 않기 위해 기도하신 내용이라는 해석입니다). 비록 그분께서 죽음으로 나아가 아버지 손에서 그 잔을 기꺼이 받으셨지만, 그러나 그분은 진실로 들으심을 얻었고 부활을 통해 죽음에서 구원되셨습니다. 이것이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입니다(22:24). 그분은 여전히 고난의 흔적을 지닌 영화롭게 된 몸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무덤에서 나오셨습니다

물론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충성된 증인들이 있었으나 골로새서 2:25은 다른 눈들이 이 위대한 사건을 바라보았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이 어둠의 세력들은 단순한 구경꾼을 넘어서서 그분을 방해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그분께서 대적과 접전하여 이긴 것은 십자가 사역과 영광스런 부활에서였습니다. 그분은 부활의 권능을 통해 대적에 대한 승리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셨다고 말해줍니다(1:20).

 

하늘에 들어가심

주님은 산 위의 무리가 보는 앞에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그분의 여정을 따를 것을 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4:14) 우주의 방대한 별 조직도 그들의 창조주의 가는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여정에 오르신 이는 영화롭게 된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막힌 휘장을 통과해 들어갔습니다(16:12~14).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은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의 구름(쉐키나)에 싸여 하늘로 올리워가셨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지상적인 개념을 이 놀라운 사건과 관련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주 여행자와 관련된 일체의 지상적인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승천하셨을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하늘 위에 오르셨습니다(4:10). 인간의 생각으로는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한 바울의 진술의 장엄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할 따름입니다.

 

하늘에 이르심

놀라운 구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그 찬란한 영광을 떠나셨던 그분께서 이전에 계시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셨을 때 누리신 하늘의 기쁨이 어떠했겠는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 손에 거인의 머리를 들고 엘라 계곡에서 나오는 다윗은 그분의 아버지의 보좌로 올라가시는 승리하신 주님의 위용을 겨우 희미하게 그려줄 뿐입니다. 시편 24편은 영광스런 천년왕국 시대를 대망하는데 사실 그것은 하늘이 그분께 드리는 환호의 갈채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늘이 그분의 도착을 즐거워한 한편,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그분이 그곳에 계심을 즐거워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2).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곳은 성소가 아니라 지성소였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서에서 지성소를 묘사하는데 거듭 사용되었습니다(4,5). 그분은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간(7) 그 모형을 성취하기 위해서 친히 갈보리에서 아낌없이 흘리신 피로써 하나님 존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의 들어가심은 구속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닌데 이는 구속은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단번에 들어가셨으며 이스라엘 대제사장은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갔습니다(7), 후자의 표현은 일년 중 어느 한 날에 대제사장이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날에 그는 세마포 옷을 입고, 그 향이 지성소를 가득채운 금향로를 가지고, 그리고 시은좌 위와 앞에 뿌릴 속죄제의 피를 가지고 여러차례 들어갔습니다. 일년 일차씩 들어감은 유한했으나, 주 예수님의 단번에 들어가심은 무한하고 영원했습니다. 그분은 그 위()의 모든 순수함 가운데, 그리고 그 단번의 제사의 모든 향기와 가치 속에 하늘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10:12).

히브리서 9장 후반에는 성막 예배의 상징적인 가르침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 (24). 하늘 성소는 땅의 것을 본뜬 것이 아닌데 반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23)은 잠시간 하늘의 실재를 본 따 만든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림자는 바라보면서 그 실재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하늘 성소에 계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는 매우 실질적인 면에서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전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기초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단번의 제사에 두신 가치에 기초합니다. 그분의 하늘에 받아들여지심은 그대로 모든 신자의 위치에 적용되는데 이는 우리는 사랑하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졌고(1:6, 우리말 성경에는 사랑하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 로 되어 있음-역주), 함께 일으킴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졌기 때문입니다(2:6), 나의 사랑하는 분이 거기 계시므로 나의 관심과 사랑도 거기 있어야 마땅합니다(3:1).

그분은 참 인간 예수로서 영광 중에 그곳에 계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큰 안위소망을 가지는데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선구자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6:18-20). 그분께서 앉아계시므로 우리는 완성된 사역을 확신하며, 그분께서 현재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므로(9:24)우리는 지속되는 대제사장 사역을 확신합니다.

 

그분의 현재의 위치

방금 우리는 위에 앉아계신 우리의 대제사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달리 그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다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일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은 히브리서에서 앉아계신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고 하셨습니다(1:13). 높임을 받으신 인자(Man)를 주제로 한 이 책에서 주 예수님은 다섯 차례나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 보좌이며, 따라서 그분은 앉아계신 것이아니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현재 과분은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않으셨으나(3:2), 그것은 만유 가운데 좌정하셔서 다스리실 그 때까지입니다.

그분은 아버지 우편에 계시며, 따라서 그곳은 구별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아버지의 모든 기쁨이 자리합니다. 그곳은 또한 권위와 능력의 장소이며, 그분은 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취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1:4), 하늘 성소에 계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요(8:1), 단번의 제사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죄 문제를 해결해주신 구주(10:12), 그리고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유일한 위대한 이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12:2)의 자리를 취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이러한 분을 모셨으니 어찌 우리의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실패할 수 있으리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2:9). 그분의 승천을 상고하면서 그분의 현재의 높이 되심의 진리를 포함시키지 않기란 불가능하며 또한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성령께서 이 위대한 진리들을 분리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을 주의깊게 읽는 독자들에게는 여기서 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 땅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승천하여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은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동산지기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는 동료여행자로, 그리고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던 어부들에게는 호숫가에 선 사람으로 각각 나타나셨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소의 사울은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에 눈이 멀었으며, 요한은 해처럼 힘있게 빛나는 그분의 얼굴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신적인 지위(title)에 따르면 항상 동일한 분이신 그분께서 은혜 안에서 과들을 위해서 이 땅에 있는 그분의 백성에게 나타나신 동안은 그 광채가 가리웠지만, 현재는 찬란한 영광 중에 나타나시며 우리는 그런 주님을 만나 뵐 것이라는 점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