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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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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됨의 세 가지 기둥

마가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되겠습니다. 영접해주시고 오늘까지 여러 모양으로 교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내와 함께 감사합니다고 말씀드립니다.

마가복음 8 10~38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 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27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9 1~9

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마가복음에서 주목하는 세번째 항해 대목에 왔습니다. 8 10절에서 그 항해가 시작이 됩니다.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했습니다. 13절에서 여행길을 다시 돌립니다. 13절의 항해가 22절로 마감이 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가셨던 길을 돌아가는 여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행의 결과에서 우리는 몇가지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8장 전반부는 무리들을 먹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4천명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이 기적에서 한가지를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먹이는 문제입니다.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어떻게 이 사람들을 먹이겠습니까?라고 다시 말을 합니다. 5천명을 먹일 때 우리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어디에서 떡을 구해 이 사람들을 먹이겠습니까?라고 또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5천명을 먹일 때 충분히 먹인 것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거기서 배우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4천명을 먹이신 후에 다시 배를 타고서 여행을 하셨습니다. 이 항해에서 일어난 몇가지를 여러분이 보시기를 원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첫번째로 제자들이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떡이 한 개 밖에 없었습니다. 이 떡 한 개로 주님을 포함한 제자들 열세사람이 먹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한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떡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경고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 무엇입니까? 누룩은 성경에 죄를 나타냅니다. 누룩의 특징을 여러분이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숨은 곳에서 활동합니다. 두번째는 조용히 활동합니다. 바깥에서 추가하지 않아도 덩치가 커집니다. 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에는 누룩을 밀가루에 넣고 다음날까지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곧 부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활동이 정지되는 때가 있습니다. 불에 구워버리면 활동이 끝납니다. 그래서 누룩은 죄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어두운 가운데서 활동합니다. 이것은 조용히 활동합니다. 불에 집어 넣을 때만 활동을 중지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거룩을 의미합니다. 누룩은 매우 위험합니다. 저는 누룩에 대해서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학생 때 빵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 한날 그 주인이 밀가루 덩이를 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느 용기에 담아두었는데 다음날 가보니 밀가루가 부풀어 천정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누룩이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종교적인 누룩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종교이지 참된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누룩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정치적인 누룩입니다. 정치인들이 주님을 위해서 일할 때 이런 누룩이 들어옵니다. 이 두 누룩은 진리를 부패시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가실 때를 이 두가지 누룩을 가지고 경고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사람들이 주님을 못박는 것으로 연합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의를 시켰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자들의 반응을 여러분이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어저께 제자들이 주님께 말한 것이 아니고 자기들끼리 말한 것을 주목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16절입니다. 그들간에 서로 의논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 것입니까? 16절에 보면 이제 우리는 주님의 그 뜻을 알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간접적으로 꾸짖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론에 이르렀겠습니까?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근본 뜻이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렇다는 연결이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여기에 문제를 보십시다. 문제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근본 뜻을 그들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가 큽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이 딱딱해지면 주님이 하신 말씀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았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잘못된 결론을 도출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떡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주님께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전하러 보낼 때 떡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일 때 얼마 되지 않는 떡으로 먹이셨습니다. 그래서 열세 명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께는 아무 문제가 안되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인다면 하나를 가지고 열세 명이 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을 보이셨습니다. 배가 떠나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대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17절에서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너희가 아직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왜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마음이 둔하니라.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마음이 부드럽지 못합니다. 마음이 딱딱한 구도자는 복음을 받지 않고 마음이 딱딱한 믿는 자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오천 명을 먹인 것을 기억하고 사천 명인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해서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가 첫번째 항해에서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것을 이 말씀에서 우리는 연상하게 됩니다. 4 40절의 질문과 거의 닮았습니다. 어찌해서 무서워하며 두려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와 닮았습니다. 첫번째 항해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주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물론 주님이 메시아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국을 세우러 오신 것을 분명히 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것을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믿었습니다. 왜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주님께서 성경에서 믿음이 크다고 말한 것은 두 종류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은 남자고 한 번은 여자였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자기 종을 낫게 해달라고 주님께 왔을 때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기 딸의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할 때 네 믿음이 크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고요?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믿음은 있어도 우리를 문제 가운데서 지키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더 쉬운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간다고는 믿지마는 이 문제를 나에게 해결해주신다는 믿음이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 천국 가는 것을 믿는 것이 쉬우냐 하면 그것은 먼 장래 일이고 문제는 현재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폭풍우 가운데서 해결하시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번에 8장에서는 너희가 어찌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교훈을 보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배에서 내려 왔을 때 소경을 만났습니다. 그 소경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23절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해서 낫게 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이 걸어 다닙니다고 했습니다. 보긴 보았는데 사람이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이 소경에게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는 보았지만 본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것을 통해 가르치는 것은 내가 가르치는 것을 너희가 듣지마는, 내가 하는 것을 보지마는 너희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경은 자기가 보는 것을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안수하시고 보라 하셨을 때 이번에는 만물을 밝히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두 가지를 행하셨습니다. 처음에 시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보는 것을 이해하도록 은혜를 또 주셨습니다. 이것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이유를 여러분이 아시겠습니까? 제자들은 보기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주님께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주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완전히 신뢰했어야 하는데 이것은 얼마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봅니다. 우리가 읽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내 삶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를 주님 앞에서 배워야 합니다. 성령이 주님에 대한 모든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진리를 성령이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책을 읽는다면 성경과 같은 이해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적이 우리들에게 왜 중요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는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이제 그들이 보아야 하는데 보지 못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1절에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것과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죽으신 다음에 3일만에 부활하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 못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깨닫는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올바르게 깨닫는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한다면 왜 그것을 행하지 않습니까? 이해했다는 것을 그것을 행할 때 결과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을 어떤 큰 일에 직면했습니다. 베드로가 큰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을 보고 주는 그리스도십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제자됨의 진실됨을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34절로 돌리고자 합니다. 제자들을 보아야 하고 그리고 깨달아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저는 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만 제자됨의 세가지 기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번째 기둥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기둥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나를 따르라 입니다. 이제 좀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죽을 것이고 다시 부활할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주님 내가 하늘로 따라가겠습니다. 물론 하늘나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이 계신 하늘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을 때 주님을 주로 시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약간 돌아가기를 원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길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출발에서 그 마지막은 하늘입니다. 주님은 하늘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자됨의 세가지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여기서는 아무도 거짓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를 따라오려거든했기 때문에 주님은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영향력의 끝이 하늘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첫번째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죄를 버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주님께로부터 죄의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속적으로 죄를 짓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 속에서 그것을 저항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물리치고 계속 원 목적을 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도 그것을 물리치고 주님을 위해서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부인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고 있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온통 시간을 다 쓰고 주님을 위해 안 쓴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님을 따른다면 그래도 여러분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죄를 없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허용될지라도 주님을 따르는데 도움이 안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취미를 다하고 내가 추구하는 것을 다 추구한다면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님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말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많은 시간을 드릴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많은 해를 끼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께 시간을 쓰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며 주님의 말씀을 보지 않는다면, 주님을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올바른 대답을 원하셨습니까?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스스로가 자기를 부인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하늘의 영광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자되는 길은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영광 중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나처럼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요구하는 것이 매우 많지만 그러나 매우 축복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주님의 제자됨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정말로 따르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따라 실행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자기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 고국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만약 그 길을 갈려면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가 아닌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기서는 여러분이 통과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프다든지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병든 것이라든가 어떤 걱정들을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말은 지금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내 십자가는 내가 지고, 너희의 십자가는 너희가 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곧 죽을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생명이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생애가 완전히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미래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없고 다른 곳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세상과 완전히 결별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섬김에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뒤로 하고 십자가는 공적으로 이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매 우 공적이며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리는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간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공적으로 자기와 세상과의 관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제물을 모으는데 나의 시간을 쓰지 않겠다. 나는 그것과 모두 끝났다. 내가 죽는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번째 제자의 기둥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번째는 무엇입니까?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고 하면서도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때는 자기가 좋아 보이는 일에 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는 다릅니다. 여기는 철학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제자됨의 세가지 기둥을 요약하겠습니다. 첫번째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공적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개인적인 헌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나를 따라오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를 주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도 주님을 따라가고자 한다면 이 두가지를 해야 합니다. 만약 이 주님의 말씀에 반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깨닫는 것은 여러분이 보는 것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큰소리로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34절에 반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왜 이렇게 요구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설명하시기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구원한다는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의미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모임에 와서 이렇게 모여 있지 않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추구하지도 않겠다. 나는 지금 계속 주님을 섬기고 있으니까. 만약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한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자신의 목숨을 구원코자 한다면 그것은 가치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삶은 자기 자신으로 소모되고 말 것입니다. 삶을 소모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된다면 그것은 가치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제 심판자리에 대한 걱정이 없는데,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네 목숨을 잃을 것이라.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만약에 포기하게 되면 세상은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목숨을 구원코자 한다면 자기를 버린다면 유익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영원을 위해서 나의 삶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36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세상에서 부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 그 사람은 나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 부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이 말씀처럼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의 돈을 다 가지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광산의 금을 다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유전을 모두 다 가졌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추수하는 자리에 그 부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모든 은행이나 주식의 모든 가치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만약에 제 목숨을 잃는다고 가정한다면 저는 가치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서는 잃어지는 영혼을 대체할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좇도록 말씀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므로 여러분의 영혼을 영원에 걸맞은 삶으로 가치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목숨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어떤 두개를 위해서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두 개 중에 하나를 위해 살면 여러분의 삶은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매일에서 영원의 가치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격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9장에서 격려가 나옵니다. 제자들의 기대를 저희들은 봅니다. 제자들이 반응해야 되는 이유와 반응을 보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주어질 상급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명의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으로 가셨습니다. 놀라운 광경입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변화산상에서 있었던 세가지를 기억하시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기쁘시게 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거절했다고 해서 주님께서 잘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광경이 주님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거절한 것은 이스라엘의 실패이지 주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는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십자가에 주님이 돌아가심으로 세상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평가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그 하늘의 주인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그들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할 지 모릅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이상한 사람 몇 명으로 볼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을 비웃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내리는 판결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평가는 영광에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격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인정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격려 받을 것을 원하십니다. 세상은 하늘이 인정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두번째는 잠깐 동안 앞으로 올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변화산에서 영광을 받으셨다고 베드로는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올 주님의 나라의 영광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주님은 두 십자가 가운데 있었습니다. 변화산 상에서도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의 가운데 중심에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중심에 계십니다. 그 왕국에서도 주님은 중심에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모세와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죽어서 영원으로 들어갔고 한 사람은 살아서 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나라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영광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휴거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여러분이 주목할 것은 주님은 모든 면에서 유일무이하십니다.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에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베드로후서 1 17절입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변화산상에서 세 사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중에 한 분만 하늘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이 영광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라고 말씀하실 때 저가 유일무이한 분이신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이 중심이고 또한 주님만이 유일무이한 분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는 거기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변화산상을 회고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라고 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올 영광과 능력을 어떻게 봤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상이 이 영광을 볼 것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것이 제자들에게 격려가 되는지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변화산상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드립니다. 두번째는 앞으로 올 왕국을 잠시 보여 주셨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세번째는 제자들을 강하게 격려했다는 것입니다. 두가지를 확고하게 했습니다. 첫번째는 주님의 승리를 확고하게 증거했습니다. 세상을 통과하면서 거절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최종적으로 확고하게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상급에 관한 확실한 보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앞으로 올 그 왕국을 잠시 보았습니다.

이 변화산상에서 주님의 임재의 권위를 확증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주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주님의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구름에서 난 소리는 주님의 가르침의 권위를 들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큰 선언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시기를 내 아들에게 들으라 만약에 이 아들의 말씀을 들으면 이해할 것입니다. 실행을 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주님만 보였습니다.

오늘 읽지 않은 것을 끝내기 전에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들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문제가 14절에 나와있습니다. 문제는 능력이 없는 제자들의 문제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상황을 잠시 보겠습니다.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주님께서 산에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이 아이를 다루는 문제를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가지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능력 없음이 드러났는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3장에서 주님께서 맡기신 임무에 대해서 보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했던 일을 못하는 그러한 상황이 직면했습니다. 이전에는 귀신을 쫓아내었는데 이번에는 쫓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제자들은 주님의 영광을 보는 가운데 있는데 나머지 제자들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결정하는데 와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된 종이던 실패한 종이던 이 실패의 결과를 보십시오. 아들 때문에 이 사람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실패로 이 아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땠습니까? 아버지는 주님을 의식했습니다. 아버지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22) 아들은 고통을 당하고 아버지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실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은 이 아이를 낫게 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하지 못하였습니까?고 물었습니다(28). 주님은 이상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금식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서신서에서 금식을 봅니다. 복음서에서 그 예를 나타냈습니다. 금식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 잘못된 태도를 나타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못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결과를 보십니까? 만약에 이렇게 되면 우리는 실패할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없어질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서 주님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금식하지 않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이 이 교훈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격려를 받으십시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따라간다면 주님을 섬기는데 능력을 발할 것입니다. 변화산상에서 제자들처럼 그 영광 때 주님께 우리가 상급을 받을 것이고 그리고 승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학교에 있읍시다. 그리고 교훈을 받읍시다. 제자들은 교훈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위대한 주님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 밖까지 따라나갔습니다. 주님의 승리에까지 나갔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하늘에 다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제 다음날 하늘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으로 격려를 받읍시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요구는 올바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은혜롭게 다루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한다면 그 보상은 클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에서 얻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이 도움을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랜시간 동안 주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8 1 27 여수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