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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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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의 그림

존 그랜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디모데후서로 가겠습니다. 디모데 후서 2장 전체를 봉독하겠습니다.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4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2시간 동안에 디모데전서를 저희들이 보았습니다. 배경을 좀 말씀드려야 되겠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기록한 마지막 편지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가 그 이후에 처형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의 막바지에 있는 서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를 쓴 이후에 후서를 쓴 큰 이유를 보겠습니다.

디모데전후서의 비교

이제 두 서신을 비교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 6절을 보시면 사람들이 이에 벗어나로 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에 벗어나로 되어있습니다. 19절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15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 10절에도 보면 우리성경에는 안 나와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여 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6 21절에서도 우리성경에는 안 나와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좇는 일이 있어 즉 이것을 좇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잘못된 사람들은 모두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 15절을 보시게 되면 전서와는 달리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4 16절을 보시게 되면 다 나를 버리고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은 전서보다도 진리나 바울을 떠나는 사람들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서는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후서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 17절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지난 두 시간에 걸쳐 보았습니다. 이 후서 장들 내에서 무엇을 보겠습니까?

1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능력에 대해서 봅니다. 7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라고 했습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그림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예시적인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앞으로 올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4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들을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1장에서는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제 잠시 이것을 보겠습니다. 2장에서는 강하라는 말이 주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온전케 되라는 말씀이 주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장에서는 계속해서 지속하라는 말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보면 아주 긴박한 분위기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아주 간단하게 1장을 보겠습니다. 나중에는 2장을 주로 보겠습니다. 1장에서 바울은 3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1 8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가능한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12절에도 보면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이라고 말합니다. 16절에서도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친구로써 말이죠. 1장을 보게 되면 주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리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생활하고 있는 로마에서 그렇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데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마 감옥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을 방문하기를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6절에서는 오네시보로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자주 나를 찾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다른 믿는 자들을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옥에까지 바울을 찾으러 오네시보로가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가? 내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을 시원케 하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이제 이분이 바울을 방문함으로 바울을 격려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방문함으로 그 사람을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계속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누군가가 생각하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은사를 불일듯하게 하라

이 장의 앞 부분에 대해서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은사를 불일듯하게 하라고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이런 뜻입니다. 계속 불붙는 가운데 생활을 하라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불로 비유하면 꺼지지 않게 계속 지펴서 살아가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권면입니다. 디모데가 받은 은사를 불일듯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사가 무엇이든지 주님을 섬김에 있어 여러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계속 불이 활활 타도록 지속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일을 하므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한국을 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한국에서 5년 만에 돌아갑니다. 돌아가서 그 말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면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이 여러분의 은사를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그 은사를 불일듯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데 계속 가르치지 아니하면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불이 계속 피어나도록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8절에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가지를 했어야 했습니다. 두가지 중 하나는 은사를 불일듯하게 해야 하고 문제가 있더라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불일듯하게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은사에 있어서 분명히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큰 하나님의 일에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장으로 가겠습니다.

교훈과 모본

하나님의 사람의 비유라고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1,2절을 보면 교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4절에서는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오후에 교훈과 모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에는 디모데가 해야 될 것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3절에서 비유적인 모본이 시작되면서 12절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교훈에 대해서 보게 되겠습니다. 은혜 안에서 강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이런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네 스스로 강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은혜 속에서 계속 강하게 있으라라고 말했습니다. 은혜 속에서만 여러분이 계속 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어려움을 발견하게 될 때 또한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될 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계속 은혜가운데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1절에 있는 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본래 이 은혜와 축복 속에 합당치 않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실패할지라도 우리로 말미암지 않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이 은혜의 근본을 하나님이 계속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의 불을 끄는데 있어서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강하게 강조해 드립니다. 1절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이 어렵고 여러분의 길이 험난할지라도 1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축복과 도움을 입을 가치가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절을 보십시오. 계속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두 가지를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디모데가 바울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디모데에게 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바울은 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또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진리는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들은 바로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한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내게 들은 바를 똑같이 전하라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충성된 사람에게 곧 믿을만한 사람에게 부탁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충성되고 신뢰할만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런 교훈을 얻습니다. 내가 가르치기 전에 나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어느 저녁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5천명을 먹인 일에 대해서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모임에 가서 배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나에게 직접 가르치기 때문에 모임에 와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하면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말씀이 매우 명백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5천명을 먹이실 때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직접 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떡을 저희에게 주셔서 사람들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가 이와 같이 가르쳐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리고 신뢰하고 가르칠 수 있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2절이 말하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2절을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3세대 믿는 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디모데라고 하면 이제 자라는 젊은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들은 또한 다른 세대에게 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는 변하지 않고 세대에서 세대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한 다음에 바울은 예를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첫번째 예를 든 것은 3,4절입니다. 첫번째로 든 것은 군사입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바울은 군사가 그렇게 쉬운 생활이라고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냥 손쉽기를 바라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매우 정직하십니다.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는 그 어려움을 견딥니다. 만약 제가 영국 군대에 가담했다고 가정합시다. 저보고 말합니다. 이것을 하라 저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가 나중에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금 지난 다음에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군인은 힘든 일입니다. 그냥 군사가 아니라 좋은 군사입니다. 좋은 군사는 신뢰할 만한 군사입니다. 강한 군사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그 하는 임무에 있어서 군사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군사에 대해서 두번째 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4절입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 언급 이면에 있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로마 군인이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했었습니다. 아마 중동까지도 로마군인이 손길을 뻗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거대한 영지를 가졌습니다. 그 군대 조직이 어떤지를 여러분이 주의깊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만약에 어느 그리스 지역에 태어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내가 로마 군인에 가담을 했습니다. 로마 사령관은 저에게 고향인 그리스에 근무하지 않게 하고 다른 지역에 근무하게 합니다. 군인이 그 사회로부터 격리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있는 그기에 가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치에도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사업에도 군사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군인은 오직 한 가짐에만 관심을 둡니다. 사령관, 즉 황제의 명령에만 신경을 씁니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것으로부터 떠나서 말이지요. 군인은 실제적인 활동적인 생활이기 때문에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집한 그분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나라의 선한 시민일 때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회와 사업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분리됩니다. 군인이 자기를 모집한 그분을 기쁘게 하려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그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그냥 지나치기만 하는 것입니다. 4절은 분리되라고 하는 하나의 청원입니다. 우리는 선한 시민입니다. 우리는 법을 지킵니다. 세금을 냅니다. 그러나 직접 나라의 정치에 가담하지는 않습니다.

법대로 경기하는 자

그리고 두번째는 5절에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믿는 자를 경기하는 자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저녁에 제가 경기하는 자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경기하는 자를 잘 본적이 없습니다. 또한 경기하는 자를 제가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운동을 하지 않지만 운동을 하려고 달려간다면 차라리 차를 타고 가는 것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훨씬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여행할 때 달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경기하는 자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예를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102년 전에 런던에서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런던 마라톤이 있었는데, 마라톤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지점인 스타디움에 사람들이 마지막을 보려고 모여 있었습니다. 영국 선수가 제 1등으로 들어왔습니다. 전 코스를 그는 달렸습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돕니다.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지점에 와서 그가 그만 넘어졌습니다. 어떤 군중들이 그를 일으켜서 그를 결승라인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일등이지만 면류관을 못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룰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도와서 결승점으로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급을 얻기를 원한다면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법입니다. 만일 우리가 면류관을 얻기를 원한다면 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에서 있는 마라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도는 마라톤이 있었습니다. 어떤 구간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떤 쪽은 강이고 다른 쪽에 트랙이 있습니다. 돌지 않고 짧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그것을 옳게 여겼습니다. 어떤 쪽의 트랙은 건너편에 군인이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곳을 지나가면 그 사람은 죽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룰을 지키지 않는다면 면류관을 얻지 못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교훈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면류관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결코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상급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상급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는 대로 한다면 상급을 받지 목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했지만 내가 좀 더 잘 전하지 못했다. 그러면 나는 상급이 없겠다. 그러나 내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충성될 때 상급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우리가 군사로서 분리되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충성스러움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수고하는 농부

세번째 예는 6절인데 농부입니다. 여기서의 농부는 자기 밭에서 수고합니다. 그는 곡식을 먼저 받습니다. 그리고 즐깁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수고하는 자가 그 결과를 먼저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도 옳습니다. 만약 우리가 수고하면 수고하는 열매를 먼저 누리는 것은 옳습니다. 우리의 수고한 수고의 열매가 격려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급을 받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충성된 농부는 그 곡식을 먼저 받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충성되지 않은 농부라면 추수 때에 먼저 곡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잉글랜드에 있었을 때에 큰 농장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에 어떤 농부 집에 살았습니다. 그의 밭이 길가에 있었습니다. 추수 때였는데 굉장했습니다. 다른 쪽 길에서 어떤 때는 전혀 자라지 않았습니다. 왜 차이가 날까요? 이쪽은 게으른 농부이고 게으른 농부는 추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단순히 농부가 아니고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이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군사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충성되어야 합니다. 세번째 농부는 수고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부끄러움 없이 인정된 일군

약간 밑으로 내려가겠습니다. 8절 이후를 보게 되면 젊은 디모데를 격려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전부를 다 못 보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목을 15절로 옮기게 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일군에 대해서 말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공부하실 때 힘을 쏟으시고, 부지런하시고, 그리고 정성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쓸 때 바울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읽을 때에 바울이 한 말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말하는 일군이라는 말은 뭔가 사람이라는 의미를 그리스에서는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구 같은 것을 만들 때 좋은 장인이 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당시 좋은 가구장인이 되는 데는 5년 정도의 훈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5년이 되었을 때 그 시험을 치루고 좋은 일군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구의 조각을 가져와서 가구를 만들 때 마스터피스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품의 걸작을 보면 이것을 마스터피스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가구의 한 조각은 피스인데 그것은 한조각이지만 그것을 완성했을 때 마스터피스라고 부르며 그것을 걸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를 가르친 사람이 그 한조각을 가져온 것을 보고 그렇게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자세히 조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잘못이나 흠집이 없는지 어떤 있어야 할 것이 혹시 빠져 있지는 않는지 혹은 제품의 한 부분으로 온전한 자질을 갖고 있는지, 만약에 세계에서 그 조각이 맞는다면 합당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 조각이 맞지 않는다면 그 장인의 선생님은 그 조각을 불에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두 쇠를 가지고 말이죠. 그래서 이 두 개에 그리스의 알파벳이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A이고 말입니다. 두번째는 D이고요. 세번째는 D이고,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하나를 이렇게 듭니다(손의 표현). 그 가구에다가 쇠를 달군 것을 가지고 표를 찍습니다. A에다가 선생님의 이름을 적습니다. 그것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르침으로서 그 사람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D라면 그 사람은 선생으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힘을 쏟은 것이 인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행한 일이 주님께 인정을 받기를 바란다는 것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정하는 그러한 일꾼으로 인정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우 주의해야 하고 아주 부지런해야 합니다. 일군은 이렇게 자세히 봅니다. 일하는 장인은 자기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꿰뚫어 보실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주님으로부터 꿰뚫어 봄을 당한다면 우리 중에 부끄러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주님께로부터 잘못이 없다는 보증을 받게되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세 절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만 이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떡을 굽는 것과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밭에다가 씨를 뿌립니다. 어떤 사람이 거기에다가 벽을 세웁니다. 그것은 합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다루는 것과 관계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정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다루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말씀을 분변하고 올바르게 실행하면 주님 앞에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다루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군사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경기하는 자는 반드시 법대로 경기해야 합니다. 농부는 반드시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훈련 받는 일군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훈련을 받아야 하고 말씀에 따라서 뭔가를 생산해내어야 합니다. 제가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가 한 일을 그 심판대 앞에서 판단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마음 속에 둡시다.

큰집의 깨끗한 그릇들

20절에 또 하나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큰 집이라고 하는 비유의 그림입니다. 여기는 금, , 나무, 그리고 질그릇이 이 집에 있습니다. 아마 금, 은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구역에 둘 것입니다. 아마 금, 은은 공적인 자리에서 전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나무와 질그릇은 부엌에 둘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자는 방문자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에 나무와 질그릇을 둘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그릇들은 큰 집에 각각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그릇은 방문자들로부터 사모함을 받습니다. 어떤 그릇은 종이 쓰는 그릇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모임에서도 닮았습니다. 어떤 은사는 대단히 공적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공적인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은사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도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어떤 은사는 은사를 행하는 사람을 보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은사가 바깥으로 잘 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큰집에 은 그릇은 잔치하는데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질그릇은 부엌 같은데 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유익한 그릇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그 집에 필요가 요구되는 그릇들입니다. 여러분 집에서 금, 은 그릇만 쓸 수 없습니다. 집에서 나무와 질그릇만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류들입니다. 바울은 어떤 그릇은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구절에서 다른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는 것처럼 오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 그릇은 귀한 사람들이고 나무와 질그릇은 천한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귀하다는 것은 깨끗한 것을 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금 그릇도 깨끗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나무 그릇도 깨끗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러운 금 그릇은 부끄러울 것입니다. 더러운 나무 그릇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여러분은 어떠한 그릇이던지 깨끗한 그릇이어야 하는구나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공적인 은사이던 또한 잘 보이지 않는 은사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가 깨끗한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누가 깨끗하지 않은지도 아시는 것입니다. 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잘못된 가르침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22절에서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주위의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 내부로부터도 죄의 정욕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합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가치 있는 교훈의 그림들이었습니다.

20절에서는 일군은 반드시 깨끗해야 합니다. 군사는 반드시 분리되어야 합니다. 경기자는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합니다. 농부는 반드시 수고해야 합니다. 훈련받는 일군은 심판대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릇들은 반드시 깨끗해야 합니다. 특히 말씀에서나 도덕적으로 말입니다. 몇분 후에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말합니다.

25절을 보게 되면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가르치는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기에 사로잡힌 바에서 빠져 나오도록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바울은 하나님께 맡겨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버렸습니다. 2장에 나오는 그림들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