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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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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가르침에서 지키는 경건

존 그랜트

여러분과 함께 이 모임에서 교제할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교제할 수 있도록 영접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디모데전서 6장을 읽고 교제를 하겠습니다. 먼저 6장 전체를 읽겠습니다.

1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4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21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자신의 은사는?

오늘 아침에 끝냈어야 될 것을 오늘 아침에 끝을 못냈습니다. 젊은 성도들이 나의 은사를 무엇인지 알아보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답을 드리는데 오늘 아침에 마무리를 못 지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젊은 형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잊어버립니다.

젊은 성도들이 어떻게 자기 은사를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은사가 있다고 생각을 하시지요? 잘못 생각할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자기의 은사를 발견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지역모임의 일에 자기 자신을 헌신해 보십시오. 그 이루어진 일에 자기 자신을 투입해 보십시오. 그 헌신한 일에 다른 성도들이 여러분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봐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보다도 다른 분들이 그것을 결정해 주는데 더 좋을지 모릅니다. 내 은사가 무엇인지를 확정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는데 나의 심령이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하나입니다. 내가 그 일을 하는데 다른 성도들이 동의하는지가 두 번째 방법입니다. 중요한 은사는 가르치는 은사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은사가 매우 중요한 은사들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있어서 모든 은사가 중요하게 여김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그 은사를 순종해서 자기자신을 그 일에 투입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답을 제공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오는 일을 하실 때에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영적 심령이 평안함을 느끼고 다른 성도들이 여러분들의 하는 일을 보고 기뻐할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여러분들 은사를 계발하셔야 합니다. 그 은사를 진보시키는 방법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진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마련하신 그 임무를 여러분들이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6장의 내용으로 주목을 옮겨가시겠습니다. 여기서 또한 거짓 가르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6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1~10절까지 거짓된 가르침을 다루었습니다. 11절부터는 마지막 절까지는 젊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명하는 강한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지금까지 말해온 요약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 이 두 가지 주제를 다 함께 보겠습니다. 이 장에서 또한 경건이라는 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3절에, 5절에도 경건을 보실 수 있고요. 6절에도 경건이 나옵니다. 11절에도 경건이 나옵니다. 이 서신서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어제 여러분들이 들으실 때에 경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셨습니까? 지역모임 가운데서 모든 일은 말씀에 따라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동일하게 나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 옳게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거짓 가르침

먼저 잘못된 가르침을 살펴보시겠습니다. 1절과 2절에서는 종과 상전의 관계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3절부터 8절까지는 돈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거짓가르침이 빗나가버린 돈에 대한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입니다. 멍에 아래 있는 종인 성도에 대해서 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말했죠.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을 마땅히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실패를 하면 두 가지 결과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습니다. 그의 교훈을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내가 모임에서 거역을 한다면 나의 종된 일에서도 거역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직장에서 믿는 자들은 불순종하는 중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상태에 대해서 누군가가 계속 불평을 한다면 그것은 나쁜 증거를 말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단호합니다. 내가 상태가 나쁘다면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더 잘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종이라면 매우 지혜롭게 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그 문제를 주님 앞으로 가져오는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직장에서 거역하는 자로 이름이 날리게 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 대해서 마찬가지로 좋은 증거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상전으로 형제를 갖게 될 경우를 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형제가 상전일 경우에 그 상전에 대해서 거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상전을 경히 여기겠습니까? 그 상전이라고 하는 믿는 성도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자기의 은사가 공적으로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데 그는 그렇지 못할 경우에 거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형제를 경히 여긴다면 여러분들은 잘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은사에 대한 자세

여러분들이 항상 기억해야 되는 은사에 대해서 세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가지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첫번째로 영적인 은사에 관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보좌의 심판을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왜 나는 영적인 은사에 대해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가 불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게 해 달라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은사를 사용한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은사를 사용한 자체가 결과적으로 보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수백 명을 구원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모임에 어떤 형제가 말씀을 전파하는, 복음을 증거하는 은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지만 매우 적은 숫자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말씀을 전하지만 적게 구원받게 하는 그 일군보다 말씀을 전해서 많이 구원 받게 하는 일군이 훨씬 더 많은 상급을 받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은사를 가진 것으로서 여러분들이 상급을 받을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얻는 열매를 여러분들이 상급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열매의 결과를 얻었는가를 생각해 보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거기서부터 어떤 상급을 받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사용함으로 여러분들이 진보함으로써 상급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인을 섬기는 일에 신실하게 그 은사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부터 제가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적은 숫자가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말씀을 전하는 집회에 오실 수도 있고 적은 숫자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서 말씀을 증거하는 이 은사를 사용하고 진보시키고 있다는 자체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은사를 나의 상전이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내가 나의 믿는 상전을 경히 여길 수 있습니다. 마치 나와 동급인양 직장에서 상전인 형제를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나와 형제이기 때문이죠. 지역 모임 안에서는 그와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동등합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다릅니다. 그 사람은 상전이고 여러분은 직원입니다. 모임에서처럼 직장에서 상사를 동등하게 대할 권리가 없습니다. 섬기되 매우 잘 섬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직장에 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내 각 부분에서 믿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줄을 아십니까? 2절에 대해서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상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직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한 증거입니다. 나쁜 직원이 되면 나쁜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게으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상전이 갖는 가장 훌륭한 직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거짓 가르침과 연관되겠습니까? 이 거짓교사들은 여러분들은 어디서나 동등합니다 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상전만큼 훌륭한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돈을 다루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상전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5,6절에서 다룰 수 있겠습니다.

 

경건은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6절에 보시면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족하는 마음이 없을 때에도 경건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묻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말합니다. 아니오. 바울을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경건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이 구절에서 좀더 자세히 보시겠습니다. 만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만족한다는 것은 자기자신이나 어떤 사물을 의지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할 때 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만물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큰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이곳에 거짓교사들은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복음이 여러분들에게 이익을 줍니다. 바로 5절에서 그것을 말했습니다. 5절에 경건을 이익의 재료라고 해서 경건해지면 돈이 벌린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미국과 영국에는 이런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경건해지면 여러분들 부자가 됩니다 라고 가르치는 전도자가 있습니다. 내가 경건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어요 라며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이 돈을 벌므로 만족할 수 있겠지마는 지족하는 마음, 경건이야말로 큰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몇몇 분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이 여러분들의 삶의 목표가 되게는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의 목표는 경건이 되어야 하고 바로 그 경건이 여러분들에게 큰 이익을 주게 됩니다. 지족한다는 것은 자신의 환경에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연고로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유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늘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족하고 큰 이익이 됩니다. 이것이 큰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교사들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만족하지 못하도록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이 만든 환경에 계속해서 만족하지 못하도록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환경에 하와로 하여금 만족하지 못하도록 뱀이 시켰습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노렸던 영향이었고 오늘날에도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만족하지 못한다면 하와가 실패했던 것처럼 저도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내게 남겨 주신 것들을 만족해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나는 벗어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디모데전서 6장에서 저희들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자신의 환경에 만족한다는 것은 주님을 배제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무기를 사단이 오늘날에도 쓰고 있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물질적인 이득을 가지고 사단이 오늘날에도 계속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고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세상에서 나갈 때는 부유하지 않은 채로 나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사람과 동일한 모습으로 그 부유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거짓 가르침이 가져다 주는 비극적인 결말을 이제 보시겠습니다.

 

돈을 사랑함과 그 올무

9절을 보십시오. 돈을 사랑하는 삶들의 비참한 말로를 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따라가게 합니다.

먼저 첫째로 우리는 유혹을 받습니다. 돈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점점 더 미혹을 받게 됩니다. 매우 유혹적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점점 우리를 삼키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올무가 되어 우리의 발을 묶어버립니다. 덫에 걸려버리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자유를 상실해 버립니다. 이것이 마음을 찌르는 아픔을 갖게 합니다. 내가 이것을 하므로 행복을 느껴야 되는데 오히려 마음을 찌릅니다. 내가 이전에 갖고 있지 않던 걱정들을 계속 갖게 됩니다. 내가 이전에 가졌던 자유시간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합니다. 결국 침륜에 빠져서 뒤로 물러가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했습니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큰 부를 쌓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길을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왜 이것이 거짓 가르침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사도바울이 여기서 이것을 강조해야만 했는가를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사단이 오늘날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부와 돈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그 덫으로 잡아서 사단은 우리를 올무로 꼬아버립니다. 믿는 자들은 게으르지 말아야 하지마는 또한 탐욕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마땅히 좇고 취할 영생

11절 이하에서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마지막 명령이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어떻게 해야 할 명령 중에 첫번째로 보시겠습니다. 이것들을 좇고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좇는 것들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는 것입니다. 이것을 항상 매 순간 따라가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큰 영웅을 좇아가기를 좋아합니다. 큰 스포츠 영웅을 좇아가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갑니다. 이런 것들을 따라가기 전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삶 가운데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좇아야 합니다.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좇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내용들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는 좇아 가는 것뿐만 아니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것은 사단을 대적하는 싸움입니다. 형제자매님 여러분 우리는 항상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단은 항상 공격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국 군대에서는 이런 말을 예부터 해 왔습니다. 공격하기 전에 적을 먼저 알아라. 그러면 적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단은 우리를 알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어디에서부터 공격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어딘지를 사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알고 있습니다. ! 우리도 사단을 알아야 한다. 사단이 어떤 자인지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공격할 것을 우리는 또한 압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은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여러분의 무기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 물론 여러분들은 영생을 갖고 계십니다. 이것은 구원받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으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구원받으신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영생을 취하십시오. 이것을 말하는 것으로 바울이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여러분들 스스로 단단하게 조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 굳게 붙드십시오. 영생과 여러분들에 관한 안전된 보장의 생각이 여러분들을 떠나가지 않도록 굳게 붙드십시오. 영생과 관련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로부터 떠나가지 않도록 굳게 잡으십시오. 이런 가르침들이 여러분들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잘 잡으십시오. 굳게 붙드십시오. 실행으로 옮기십시오. 여러분들이 한가지 약속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장에서는 아니지만 성경 다른 곳에서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믿지 않는 것이 그 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나는 시험해 보고 싶다. 하나님은 그기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창조가 이미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을 시험하여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가 말한 것을 들어보십시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창고에 쌓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드려야 될 것을 하나님께 모두 드려보십시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고 빼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한번 시험해 보시면 여러분들에게 하늘에서 창을 열어 부어주실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해 봅니까? 어제 말씀드린대로 하시면 됩니다. 말씀을 실행으로 옮겨보십시오. 그러면 이 축복들을 저희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만족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믿음의 반응하는 것으로 놀랍게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을 위하라는 의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듯이 나를 시험하여 보라. 내가 신실한지를 시험해 보라. 나를 믿고 내가 얼마나 신실한지를 시험해 보라. 그래서 영생을 취하는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경을 한군데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이렇게 예상하실 것이라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러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영생을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생을 상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즐거움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진보를 여러분은 놓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굳게 붙들지 않으면 말이죠. 여러분들이 영생을 취하여 굳게 여러분 자신들 가운데 지키는 것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요구받고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 잘 알기를 주님께서 요구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영생을 굳게 취하여야 합니다. 디모데는 출발을 잘 했습니다.

 

선한 증거를 증거하신 그리스도

1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는 선한 증거로 증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놀라운 증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발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13,14절에서 말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엄히 한 명령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는 앞에서 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합니다. 그 주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거를 하신 주님이십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런 뜻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에 대해서 선한 증거로 증거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만이 우리가 영생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만 취하겠다고 하면 나는 영생을 온전히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한가운데 중심에 말씀이 계셔야 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14절에 하고 있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점도 없다는 것을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책망받을 것이 없다는 것은 누가 당신이 잘못했습니다고 책임을 요구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디모데는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주님의 오심을 바라고 살았습니다. 우리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웃 앞에서 이런 것들을 진행할 때 주님 앞에서 우리의 진보가 나타날 것입니다. 여기까지 썼을 때 바울의 글 쓰는 힘이 거의 소진되어버렸습니다.

14절에 이르렀을 때 15,16절을 쓰게 된 내용이 이제 나오게 됩니다. 15,16절에서 주님의 놀라운 부분을 말한 것이 나옵니다. 우리가 좇아가는 주님의 놀라운 인격이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는 주님보다 더 높은 자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중에 주님보다 더 높은 이름을 받을 자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생각 할 때에 주님의 영광을 생각하게 됩니다. 장래 영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왜 이것을 언급했을까요? 그 날에 우리의 경건에 대해서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우리가 취하고 굳게 붙들었던 영생의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 문제의 결론이 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주의해서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계시록의 시간은 주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시간이며 우리의 시간은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부분을 주의해서 보시면 그의 때가 나타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약이 이르면, 즉 주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바를 주의해서 보시면 그대 하나님께서는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것을 보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것을 보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홀로 한 분이시고 홀로 능하신 분이심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좇아가고 있는 분이 바로 이분이심을 바로 연결하실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그날부터 좇아가고 있던 분이 바로 이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심을 연결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누가 이것을 보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에 관한 부분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것을 보이시는 분은 바로 죽지 아니하심이 있는 그분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이 없으십니다. 죽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으실 수 없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갈보리에 죽게 하신 것은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부분에 있습니다. 성경은 매우 단순하게 이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믿는다. 하나님께 설명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만이 죽음이 없으십니다.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볼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놀라운 권세와 엄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서 사람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믿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그분께서 하나님이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으로 하여금 믿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매우 간단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데요.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으신 그 사람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진리되신 주님을 우리는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실 것이기 때문에 저는 기뻐합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후에 능력과 영광의 보좌로 옮겨가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실로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라는 것과 만주의 주라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있는 영국은 여왕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드릴 수가 있습니다. 여왕은 왕가로서의 모든 번영과 영광을 누립니다. 왕관을 씁니다. 예복을 입습니다. 왕궁에 삽니다. 왕가로서 왕으로서의 누리는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세는 없습니다. 권세와 능력은 수상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왕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능력과 권세 또한 갖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왕되심의 영광을 말합니다. 주님의 하나님으로서의 왕되심의 영광과 엄위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에는 수상이나 대통령 같은 것은 필요없습니다. 한 왕이 계십니다. 그 왕께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라왔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삶을 떠나서는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쓸 수 있습니다. 그 기회는 주님께서 그리스도로 계셔야 할 자리에서 거절된 곳에서 여러분들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 땅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거절된 땅에서 말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 영광스런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거절된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특권말입니다. 이 장을 마감하겠습니다.

 

장래를 위한 좋은 터를 쌓아

또 한가지 계속되는 명()함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몇몇 사람을 부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되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태도입니다. 또한 자기의 부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에 대한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누리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부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을 위해서 좋은 부를 쌓아놓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을 취하는 일입니다. 이 표현이 또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부한 사람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보다 재물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서 그 상태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행하여야 하는 것이 여기 나옵니다. 우리는 장래 우리 자신을 위해서 좋은 터를 쌓아야 합니다. 장래를 위한 좋은 터입니다. 여기서는 터라고 했지만 영어성경에서는 펀드라고 하여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본으로 표시가 됩니다. 내가 은퇴한 뒤에는 무엇을 할까 연금에 대해서 걱정을 합니다. 장래를 위해서 연금 펀드에 가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래를 위해서 믿는 자들은 이러한(연금이라 표현했습니다만) 터를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터입니다. 이것은 장래를 위한 영적인 부요함입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분께서 오시게 될 때에 우리가 이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장래를 바라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비유도 그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나요? 주님께서는 그 주인은 불의한 종이 장래를 위해서 예비한 것에 대해서 잘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장래를 위하여 자신을 위한 좋은 터를 펀드를 쌓듯이 쌓아야 합니다. 이제 디모데에 대한 마지막 호소를 보게 됩니다.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디모데에게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너에게 주어져 맡겨진 것들을 잘 간직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위한 맡겨진 것입니다. 가르침에 맡겨진 것입니다. 젊은 사람 디모데에게 맡겨지고 부탁된 것입니다. 지키라고 하는 것은 보호하는 것입니다. 주의하여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해치고 빼앗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스스로 힘써서 이 진리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의해서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 중에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거짓되었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벗어난 모든 바깥쪽에 있는 거짓된 말을 말합니다. 진리를 벗어난 모든 바깥쪽에 있는 거짓된 말을 피하는 것이 이 내용입니다. 망령되고 허하다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변론이라는 것은 아무 가치없이 말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되어서 진리 바깥에 있는 것들은 망령되며 허하며 말할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듣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이 바로 여러분 자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벗어난 지혜와 지식이 여러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사람의 자연적인 지식과 능력은 믿음을 돕지 않고 믿음을 대적합니다. 여기서 20절에서 지식이라고 불려지는 것들에 대해서 피하라 주의하라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된 지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지식은 복음을 대적하며 오늘날 세상이 이것을 저희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좇는다 하고 그 사람들이 믿음에서 벗어났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것이 경건에 있어서 마무리 짓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부탁 받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벗어난 것들은 헛된 것들이고 가치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들에 대적하는 것들일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아무 지혜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말하기를 거짓된 가르침이라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버렸습니다. 사람의 지식에 관한 대적에 대해서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말할지도 모릅니다. 왜 여러분들은 모임에서 그런 자리를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 자매님들은 남자와 동등하지 않습니까?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여자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낫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지식이며 여러분들을 대적시키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며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나 여자는 진정한 진리의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참된 지식을 아는 사람은 성경을 압니다. 어제 제가 말씀드리면서 왜 자매님들이 너울을 쓰며 왜 자매님들이 잠잠하신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이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그러한 공격들은 지혜라고 말하고 지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며 참된 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제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11절입니다. 사실 이 내용은 디모데후서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이 계속 이어지면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의 사람이 일하기에 합당하겠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 집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특징지어진 집을 말합니다. 그 사람은 경건으로 특징지어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 표현이 모든 믿는 자 각자각자를 특징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이다. 정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은 그의 삶이 사업으로 지배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은 정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의 것들로부터 모든 것이 특징지어지도록 해야 됩니다. 직장이든 집이든 모임에서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취미 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세상적인 여흥에 사람들이 관심을 못 갖게 됩니다. 일에 빠져 있다고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일을 합니다. 우리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의 즐거움에 관심이 있다고 여러분들은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게 안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증거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서 내가 저 사람을 생각할 때 저 사람이나 저 여자는 항상 하나님의 것만 생각하고 있다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이러한 경건한 형제 자매님들이 봉사하고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 말을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