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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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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신자를 영접하는 일

 

하나님의 자녀를 받아들이는 일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는 매우 달콤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도의 영접과 교제를 위해서는, 그것이 합당한 것이라면,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규모있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방법이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제는 동역이다.

교제는 함께 일하는 것, 즉 동역입니다. 성도들의 모임에 받아들여진 사람은 성도들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함께 하도록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특권을 공유하는 것이고, 증거를 함께 하는 것이며, 책임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모든 것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동역은 부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역은 모든 부분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할 때 하나님과 모든 부분에서 함께 하듯이, 성도로 받아들여진 사람과 동역하는 것도 모든 부분에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교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고전 12:12~27). 몸에서는 지체간의 놀라운 협동과 밀접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 지체는 그에게 맞는 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지체는 그 몸에 반드시 필요하며, 없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지체가 함께 움직입니다. 각 지체는 몸 전체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몸 전체의 유익에 기여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기뻐합니다(고전 12:26). 모든 지체가 서로 결합되어 있고, 몸에는 분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각 지체가 머리에 의해서 통제됩니다. 그 몸이 정상적이라면, 우리 몸의 손이나 발이 우리의 뜻을 거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항상 각 지체가 우리의 뜻에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그 지체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교훈입니까!

 

축복된 교제

이와 같은 축복된 교제 가운데로 하나님의 자녀가 영접되고, 이교제가 지속되리라고 기대합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할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가려고 유대교나 혹은 다른 이방 종교를 떠났고,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 속해있던 곳에 영원한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애들이 그리스도에게 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은 성도들에게 많은 슬픔을 가져왔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교회가 유대교나 세상으로부터 완전한 분리를 추구했고, 이 때문에 그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통해 교회의 건강은 유지되었고, 교회는 주님께 진실한 믿음을 지켜나갔습니다.

성도들이 가끔씩 모여서 교제한다는 말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말일 것입니다. 게다가 주의 상으로 영접한다”(receiving to the Lord’s Table)는 말은 성경에서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 교회의 교제 가운데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떡을 떼는 일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모든 일을 함께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떻게 신자를 받아들일 것인가?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우리가 영접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우리가 영접하려고 하는 그 사람이 정말 주님의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받으셨느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접하려고 하는 그 사람이 교리상으로 근본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위의 사항에 문제가 없다면 당신은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회심 후에 이 순종의 행위가 뒤따라야만 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들은 제자들이 이 명령에 순종했음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에는 침례 받지 않은 신자들은 없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이 역설하는 바와 같이, 침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교회로 들어가는 문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2:8,9), 그리스도가 문이십니다( 10:9). 그러나 침례라는 예식은 신자의 순종에 필수적인 것이며, 그것은 회심 이후에 있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단순한 질서와 명령을 따르는 것이 지혜 있는 태도입니다. 사도행전 2 41절에는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심은 침례와 (교회에) 더해짐과 짝지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호자가 필요함

장로들은 양떼를 인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양떼를 보호합니다. 장로들은 성도들의 교회를 가만히 들어온 자들( 4)로부터 보호하고, 겉으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로부터, 삶의 간증이 악한 자들로부터 비롯되는 해악이 유입되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해야 합니다(고전 14:40).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신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충분한 시간과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그가 우리와 한 몸을 이룬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현실은 그것을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 주변의 다른 조직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하고 그들을 훨씬 좋은 곳으로 영접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중을 기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이제 막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자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평안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교회에서 천거서를 가져온 경우 역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친거서를 교회 앞에서 낭독하고, 그 성도를 반갑게 영접하면 됩니다.

 

교회의 영접

영접의 모든 절차는 장로들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장로들이 신자를 소개하고 교회는 신자를 영접합니다. 엄격하게 발하자면, 영접은 장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사람을 주의 상에 데려올 수 있는 개인적인 권리는 없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어떤 이에게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할 권리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영접하는 시간을 당분간 늦추려고 한다면, 그 영접을 반대하는 지체가 그 반대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도록 적당한 시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을 영접할 경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일관적인 규칙은 없다.

영접에 있어서,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통일된 규칙은 없습니다. 때로는 예외적인 경우들도 있어, 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제시한 것은 일반적인 경우들에 국한된 것입니다. 영접에 대한 세세한 사항들에는 많은 이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이들이 우리가 교제의 대상을 협소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이들에게 우리는 가중되는 위험을 면전에 두고 다만 더욱 신중한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접하라고 하신 이들이라면 어떤 사람도 교제에서 제외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딤전 5:22)라는 말씀을 우리는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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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