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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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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자신의 약속

 

그분이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과 그들을 위해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처음으로 분명히 주어진 장소는 11명의 참된 제자들이 그분 주위에 모여 있던 예루살렘 성의 다락방 안이었으며 이것은 요한복음 13:33부터 14:3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요한복음 전체에 제시된 대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분이 왕으로 오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인자(人子)로 오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아버님께로 가셨다가 사랑하는 자기 사람들을 아버지의 집, 곧 사랑의 처소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이 자기들을 이 어둡고 악한 세상에 남겨둔 채 곧 떠나신다고 생각했을 때 몹시 슬펐고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때에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그리고 바로 이것이 약속소망으로 칭해졌습니다(10:36, 23). 그분이 재림하시는 방법과 그것에 따라오는 것들은 성령님에 의해, 사도들을 통하여 서신서들 안에 충분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그 성격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가 다시 와서라는 달콤한 약속을 처음 받은 것은 바로 그분의 입술로부터였으며, 가장 높은 하늘에서 하신 그분의 말씀 중에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을 마지막으로 받은 것도 바로 그분의 입술로부터였습니다(22:20). 주님의 말씀이 이처럼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을 잘못 이해해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믿는 자들의 소망을 가득 채우는 대신 죽음, 예언의 성취, 세상의 구원, 과학의 발전 등등이 믿는 자들의 소망을 가득 채워 왔던 것입니다. 내가 오리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내가 가서라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로 내려왔던 하늘의 방문자들의 증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9).

제자들을 축복하신 후 그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분도 바로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사랑하시는 그분 자신이셨고, 자기 백성들을 자기의 가슴과 집으로 영접하기 위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분도 역시 그분 자신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력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주님의 재림을 일컬어 영적인 재림, 또는 마음으로 오시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으로 오셔서 그곳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3:17). 또한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로 아버님과 아드님이 오셔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시는 것도 역시 사실입니다(14:23). 그러나 이 두 경우나, 또는 땅 위의 성도들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영적인 부흥, 또는 신선함의 때가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자신이 친히 재림하시는 이 사실에 조금이라도 모자라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을 성취하거나, 믿는 자들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가르침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로 올리우신, 바로 그 동일하신 분을 기다리라고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이 동일한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1, 우리 말 성경에는 동일한이란 단어가 나와 있지 않음-역자 주).

현재 그 밝은 영광 중에 계시는 분,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높임을 받으셨고, 수많은 거룩한 존재들로 둘러싸이신 그분은 18세기가 흘러갔다고 해서 변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어린아이를 팔에 안으시고 축복하실 때, 또는 죽은 나사로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실 때와 동일하신 예수님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현재 영화롭게 되셨으며 이 땅에 계실 때처럼 종의 형체를 더 이상 입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실 때 그분의 인성(人性)도 함께 가지고 가셨으며 저기, 저 영원한 보좌의 모든 영광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에는 그분은 그와 같은 자격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그분은 저기, 저 찬란한 보좌 위에 앉으사 자신이 위하여 죽은 신부를 환영하여 영접하고 자기와 함께 영원히 있게 될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의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하늘의 찬송들 가운데서,

사막을 걸어가는 발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저기, 저 밝고 찬란한 영광의 처소에

집들이 예비되어 있다.

아버님께서 그분에게 주신 신부는

그곳에 가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

이삭과 리브가가 서로 만날 때까지, 그래서 신부가 충성스런 종에 의해 아들에게 넘겨질 때까지 이삭은 자기 집으로 올 리브가를 손꼽아 기다렸고 리브가는 리브가대로 이삭을 만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자기 신부를 기다리고 계시며 우리는 리브가처럼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사건들도 아니요, 성취된 예언들도 아니요, 영광도 아니라 바로, 그분 자신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그분이 주실 면류관이 아니라 그분의 못 박히신 손이며, 하늘이 아니라 그분의 얼굴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화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대영제국의 군인들이 승전하여 이집트에서 귀국하는 날, 런던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깃발이 여기저기서 휘날리고 군중들은 정복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공적인 연회가 베풀어졌고 대영제국의 여왕이 친히 영웅적인 행위로 무훈을 세운 사람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흥분 중에서도 기차역의 승강장에서 자신의 소망의 대상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긴 채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한 외로운 숙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어떤 군인의 신부였습니다. 깃발이나 연회보다도 그녀가 더욱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으며, 빅토리아 십자 훈장보다도 그 군인이 더욱 바라는 것은 자기 신부를 만나 그녀의 영접을 받는 기쁨이었습니다.

죤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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