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간지라 성경중의 많은 말씀을 알았고 암기도 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전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주님이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도 믿었습니다. 자. 그럼 전 구원 받은게 아닐까요? 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게 분명한 게 아닐까요?
그런데 왜 저의 마음이 불안했을까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눌 때는 기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선 저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구원을 받았느냐는 물음에 전 대답을 합니다. “네”하고요.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얹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마음이 침례를 받으면 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불안한 가운데 상담에 임했지만 그렇게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 올지는 몰랐습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전 무척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제가 원한 일이라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전 교 회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모두 다 위선에 가득찬 얼굴들이었고 그들의 교만스러움 또한 가관이었습니다. 교회의 학생들은 버릇이 없어 보였고 어쨌든 하나 하나가 싫어졌습니다. 전 교회가 싫었습니다. 전 그때부터 성도와의 거리감도 생기고 교제 또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엄마와 언니, 오빠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지만 저의 마음은 항상 딴 곳에 있었으며 예배가 끝난 후에는 전 곧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전 점점 시간이 무의미해짐을 깨달았습니다. 전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갈망 속에 전 제가 몸담고 있던 써클에 전념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진행대로 잘 되어갔습니다. 전 차츰 교회라는 곳을 잊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바쁜 나의 생활은 즐거웠습니다. 전 이세상에서 바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모 든 일은 제가 원하는 대로 잘 되었고 모두들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전 그때 저의 자리가 그곳임을 알았습니다. 점점 교만과 자만에 빠진 생활을 하였습니다. 나보다 나은 자는 없었고 있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지 않기 위하여 노력도 했습니다. 나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신념으로 모든 일에 임했습니다.
자기도취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나요? 주위에선 절 보고 자기 도취에 빠졌다고 그러더군요. 자기도취에 쓰러져 버리고 자신에게 실망을 느끼면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나 요. 전 모든 것이 우스웠습니다. 저에게는 그럴 수 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논리로서 그들을 이해시켰습니다. 전 자기 도취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나 자신과 자기도취와의 밀접한 관계 자기도취는 꼭 필요하다는 필요성의 논리를 펴놓았습니다. 그야말로 너무도 멋 있는 나 자신이었고 난 나 자신 속에 정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끔 교회에 나가자는 엄마의 권유도 뿌리쳤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가족들을 보면 혹시 하나님께 들려가지 않았나 하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두고 모두들 데리고 올라가셨다는 생각만 하면 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늦게나마 식구들이 들어오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그런 안도의 숨은 돌연 탈바꿈하여 “난 저렇게 늦게 다니는 교회는 나가지 않겠어” 했습니다. .
나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무서웁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또한 실상 저의 생활에 절제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은 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전 엄마의 보이지 앉는 지도 아래 은연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전히 나의 친구들은 나를 신임했고 난 그들의 위에 있음을 자신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발전을 위하여 노력도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난 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습니다.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바쁜 생활 중에서도 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전 언제나 아이들이 절 부러워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허공에 뜬 기분은 정말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직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의 이상이었던 그 무엇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나의 이러한 마음을 채워 주지 않았습니다. 채워주기는커녕 나의 마음은 점점 공허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점점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의 외로움 속에서도 이상을 이루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시시해졌습니다. 순간의 감정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왜 좀 더 멋있고 아름답고 무한한 자기 발전을 생각하지 않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저의 동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며 보다 멋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계에 선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왜 이상적인 생활을 위해 이상적인 연구를 하지 않는지 왜 자기의 이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지 난 자신 없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 자신도 점점 능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전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난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능력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다만 사람들이 나의 보조를 할 만큼 뛰어나고 발전성 있는 삶을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고민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전 모든 것을 다 잊고 조용한 가운데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언니의 무심코 던진 Youth Bible Camp(젊은 성경 캠프)가 나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강릉사천진리’ 나의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뒷일은 생각치도 않고 언니에게 가겠다고 했습니다. 후에 들었지만 언니는 무척 놀랐다더군요. 혹시 마음이 변할까 봐 일찌기 등록을 했었다니까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전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부딪칠 귀찮은 존재(캠프에 참석한 그리스 도인)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는 것 특히 캠프장이신 K 형제님과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 K 형제님을 무척 싫어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언니에게 만은 살짝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에게서도 해결책은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 저의 고민중에 한가지 만이라도 언니에게 이야기해둔 것으로 족해야 했습니다.
캠프장 내에 들어선 전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에게서 전해지는 차가운 인상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난 그들 모두에게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마치 나에게 관심이라도 가진 듯 나를 위해서 기도 하자는 그들의 교만스러움이,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이 무척 눈에 거슬렸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얼굴들이 미소를 짓고 스쳐갈 땐 정말 불쾌했습니다. 구원이란 단어도 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난 또 다시 갈등을 느끼기 싫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전도 집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앞의 단상에는 K 형제님이 서계셨습니다. 전 쳐다보기 조차 싫었습니다. 목소리 조차 싫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묘한 계획들을 짜냈습니다. 교묘하게도 빠져나간 전 기쁨의 희열과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이제 하루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일찌기 세면을 끝낸 난 냇물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에 바로 앞에 K 형제님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피하고 싶은 생각에 슬며시 일어나 나왔습니다.
인숙아! 하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K형제님이셨습니다.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피하고 싶었지만 나의 길은 막혔습니다. 「구원의 해결을 보았냐」는 물음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전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성경을 더 읽고 싶어요」라고 이야기를 했을 땐 K 형제님의 얼굴은 성이 많이 난 얼굴이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오라」는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렸는지 전 그 말에 그만 압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전 정말 가기 싫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지고 갓을 때에는 너무도 조용히 맞이 하셨습니다. 전통 영문을 몰랐습니다. 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순간 난 똑똑하고 가장 자신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이 기회에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전 성경을 믿고 있어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해요」
「주님이 왜 돌아가셨는지도 알아요」
「부활하신 것도 알아요」 무엇이 더 필요한가요? 전 구원 받은 게 아닐까요?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왜 죽으셨을까라는 물음에 나의 죄, 인숙이의 죄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의 죄,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아니, 수없이 많은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전 저의 죄가 실감나지 않는 걸까요? 무한정한 나의 죄가 왜 무섭지 않는 걸까요? 나의 모든 죄를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이신데도 왜 실감나지 않는 걸까요? 그러고서도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K형제님의 모든 이야기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전 저 자신에게 반문하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못함이로다”
제가 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로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희는 처음부터 살인 한자요.
전 제 옆에 K 형제님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분, 그렇게 미워했던 분인 K 형제님은 저를 위하여 성경말씀을 읽어주고 계셨습니다. 가인인 형이 동생인 아벨을 미워한 나머지 살인했던 것처럼 저도 똑같이 무섭고 큰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K 형제님은 계속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시는 K형제님 아니,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 같았습니다. 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를 했는지 몰라요. 용서해 달라고요. 주님 절 용서해 달라고요. 그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주님은 너무도 놀라우신 분이셨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말씀 드릴 수 있었을까요? 저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사랑, 바로 사랑,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찾던, 제가 그렇게 갈망하던 나의 이상으로써 추구하던 그런 사랑을 주님은 전부터 저에게 베푸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K형제님은 이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이 남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곤 어디론가 가셨습니다. 전 다시한번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분명한 말씀을 해 달라고요. 제가 주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요.
주님은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분명하고 선명하신 말씀이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함이라”
주님은 저의 마음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저를 위하여 저를 너무도 사랑하사 너무도 긴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모든 걱정은 주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또 하나의 걱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을 주었고 단호한 결정들로 그들에게 전했는데 이제 가서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가서 무엇부터 어떻게 정말 염치없게 무엇이라고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전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용기를 주세요. 저의 달라짐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전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걸었습니다. 한 발자욱 한 발자욱을 주님께 의지했습니다. 내려갔을 땐 모든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주님은 저를 위하여 저의 염려를 위하여 일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K 형제님을 통해 제가 하기 어려웠던 말을 벌써 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놀라우신 분이며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까요? 저의 몸을 받쳐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저의 이 같은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 안의 참다운 멋을 지니고 싶습니다.
(198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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