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우리가 끊임없이 가깝게 동행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직접 사귐을 가질 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 저자의 오랜 동안의 경험이며 확신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문제는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생명에 관한 문제라고 이미 결론을 내렸지만 다시 한번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구세주와의 꾸준한 친교를 방해는 장애물들을 극복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점차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24년 동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 나의 경험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는 유선형의 비법이나 지름길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을 안지 사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나의 영적 체험은 영적 삶을 시작한 처음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주님과의 교제를 냉냉하게 내버려 두었을 때는 그의 뜻을 분간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나는 절망 가운데서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주님과의 교제 안에 거할 그 때는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린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과 동행함은 몇 시간 몇 날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몇 달 몇년이 걸리는 체험인 것이다. 성경은 되풀이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기다리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 가치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기다릴 필요도 있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린다는 것은 물론 기도와 교제와 사귐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된 햇수를 가르키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감당할 조건을 갖추어 나가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밝혀지기만 하면 즉각 실천에 옮길 수가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상한 체험(이렇게 불러도 좋다면)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이상한 체험을 중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율법의 굴레나 의무에 얽어 매어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무릎 꿇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나 여건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생활 중에 어떤 긴급한 일이 벌어지면 주님의 존전으로 뛰어가 그 발 앞에 자기 자신을 던져버리면서 이와같이 기도하려고 한다. 그런 기도를 분석해 보면 “주 예수님 나는 지금 너무 바빠 당신과 길게 얘기할 틈이 없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데 지금 나는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내일 아침 열시까지 당신의 뜻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니 주님 제발 빨리 당신의 뜻을 내게 나타내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런 식의 기도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이러한 식으로 하나님의 뜻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계속적으로 교제를 가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에는 그런 긴급한 경우 이사야 30:21의 말씀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험을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올바른 관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면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뜻과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서로서로 잘 알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 자신의 뜻을 알리는데 힘들여 장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마디의 말 심지어는 단 한번의 표정 동작으로 충분하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어머니와 자녀와의 관계도 살펴보면 자녀는 늘 어머니와 같이 살고 심부름하러 다니기 때문에 어머니의 뜻이 무엇이며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절친하게 살 때 상대방은 서로서로 상대방의 기뻐하는 것과 뜻을 알아 내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주님과의 영적 관계도 이와 꼭 같다. 그런 반면에 남편과 아내 사이가 문자 그대로 마음으로 정신적으로 분리되었다 하자. 그러면 상호간의 이해는 희미해지고 그러한 상황이 몇달이고 몇년이고 계속되면 상호간의 이해는 사라져 마침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완전히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단지 당신 영혼의 구세주일뿐이며 당신의 매일매일 생활과는 완전히 무관하다면 당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제임스 맥컨키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삶”이란 소책자에서 (클립톤 스프링즈 요양소를 세운 창시자) 하나님의 능력을 강하게 입은 헨리 포스트 박사에 관해 말하고 있다. 포스트박사는 인생의 문제점들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놀라운 투시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포스트 박사가 돌아가신 후 요양소를 찾아 오는 방문객들은 그곳 나이 많으신 외과 의사에게 늘 이렇게 묻는다. 포스트 박사의 생애의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면 그 의사는 그 방문객을 이층 포스트박사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전 사무실로 데려가더니 박사께서 늘 하나님께 무릎 꿇음으로 낡아 빠지게 된 융탄자의 두 구멍을 가리키며 “녜, 바로 이것이 헨리 포스트 박사가 하나님의 문제에서나 인간의 문제에서 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지요”라고 말해 준다.
맥컨키는 “여러분들이여 당신의 침실 융탄자가 이런 식으로 닳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을 깨닫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야말로 모 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를 지혜와 인도하심을 받는 길로 이끄는 공개된 비결이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께 구하라. 당신도 또한 자신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물어 보라. 기도 하라. 성실하고 믿는 맘으로 꾸준히 기대하면서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택하신 그 길에 당신이 있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축복의 자리까지 인도할 것이다. 맥컨키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확실히 사도 바울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동행하는 삶을 살 고 우리의 영을 늘 새롭게 하면 우리의 전체 생활이 변함은 당연하다. 산상보훈의 예수 그리스도도 “기도 할 때 얼굴 모습이 변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인간들 오늘날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도 꼭 마찬가지로 해당한다.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에서.
(198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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