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에게
당신은 어떠한 아버지십니까?
(아빠와 함께 읽는 페이지)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 78:3,4).
그리스도인 부친으로써의 더욱 중요한 책임은 가족의 영원한 행복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장들 각인의 생활 간증은 가정에 있어서 대를 물러주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충분히 가르치는 것은 부모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시편 78편을 쓴 아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들은바요 아는바요 우리 선조가 말한 바요”. 선조란 지금 살아있는 부친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죽고 만 선조는 현재의 자녀들에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삽은 계속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이틀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 ..” 만일 자녀들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자기 집에서 성경의 진리를 가르침 받지 않으면, 후에 그것을 주일학교나 교회에서 배우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이가 12살이 되면서부터 그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마치 굳어버린 콩크리트를 모형에 넣고자 하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는 것은 정말 가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에게 세속적인 성공만 구하고 그들을 영적인 고아가 되게 한다면 얼마나 더 슬픈 일이 되겠습니까? 구주되신 주님을 만나 뵐 때, 그 귀한 영혼에 대하여 깨끗할 수 있겠는지요.
누가복음 1장에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가랴는 엘리사벳과 함께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사이에는 자식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부족이라는 사고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 사람으로써는 자식을 못 낳는 것이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어,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희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긴 세월을 기다려야만 하였습니다만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즉, 구주되신 예수께서 출생하시기 바로 전에 요한은 출생하였습니다.
세례 요한과 비교하면 우리들의 인생이 그만큼 주 예수의 지상 생애와 밀접하게 맺어지지는 않았으나 호세아 6 장 3절에 기록된대로 주께서 내게 임하심은 주님 자신이 정하신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언약하셨으며, 호세아는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매일 아침 떠오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역은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한 요한은 어떠한 가정에서 출생하였는지, 그의 믿음 깊은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버지 한 쪽의 책임만은 아니며, 어머니도 기도하면서 충분히 그 책임을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198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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